언젠가 소설, <스토너>를 읽으며 마음을 이끌던 구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조들에게서 혈연을 통해 물려받은 것에 대한 지식이 의식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라는 문장입니다. ‘나’란 존재가 ‘수백년전 이 땅 위에 걸어다녔을 조상들과 같은 DNA를 공유한 사람’이란 것에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고질적인 습관, 생각의 방식, 기질들이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와 공유한 기억이라는 생각에 오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은 온전히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사람 안에는 수많은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최근 조셉 머피, 데이비드 호킨스 등을 통해 ‘무의식’에 대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내가 그토록 예민하게 굴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과일칼을 아슬아슬하게 식탁위에 걸쳐져 놓는다거나,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무렵 주방식칼이 들어있는 싱크대 문을 열었을 때라든가. 그런 상황들 속에서 나의 목소리는 매우 날카로웠고 불안해했습니다. 어쩌면 그다지 열정적으로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도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은 상상도 하기 싫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돌도 안될 무렵, 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시골 도랑에 쳐박혀 죽을 뻔했다고 합니다. 내 무의식 속 어딘가에 그 때 기억이 분명 새겨져 있나 봅니다.
작년에 말도 안되는 주장을 가지고 타협을 도저히 할 수 없고 ‘억지로 부린다’ 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 단체와 만났습니다. 나중에 몇 차례 회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산을 지원해 달라고 주장했던 사업은 사실 그들의 오래된 ‘숙원 사업’이었던 것입니다.
몇 년전 공모사업에 당선되어 한참 논의중이었고, 그들은 그들의 소망이 이뤄질 거라 철썩같이 믿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일은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가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였을 겁니다. 그들의 주장이 나나 팀장님 귀에 잘 들리지 않았던 이유가요. 그들은 마치... 한이 풀리지 않으니 부임하는 사또들에게 밤마다 찾아가 하소연 했던 한국 처녀 귀신들처럼 말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후에 나는 ‘아, 나는 저 사람을 도저히 이해 못하겠어’ 라는 말도 내뱉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나는 그 사람이 태어나 자란 환경과 배경을 모릅니다. 나는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내가 차마 알 수 없다거나. 심지어 내 몸속에는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역사와 피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아직 말하지 않은’ 혹은 ‘말할 수 없는’ 어떠한 것이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 윌리엄 스토너는 젊은 동료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와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가 분빌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낸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무명의 존재로서 근면하고 금욕적으로 살다 간 선조들에게서 혈연을 통해 물려받은 것에 대한 지식이 항상 의식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선조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을 향해 무표정하고 단단하고 황량한 얼굴을 보여주자는 공통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존 윌리암의 소설, 『스토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