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를 묻어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순간적으로 다친 날개를 치료해준 흥부에게 보석이 든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를 생각했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요행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몇날 며칠 길가에 치워줄 이 하나 없는, 즉, ‘연고자 없는 노숙자’ 같은 비둘기일지도 모르니 기대를 말자, 라며 생각하는 속물같은 나입니다. 여튼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에 웃기기도 하고 전에는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는 내 모습에 어리둥절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습니다. 죽은 비둘기를 옮겨야겠다는 나의 생각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아마도, 퇴근길에 우연히 신형철 교수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학부모독서회에서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를 읽었기 때문일까요.
1년 전쯤 어느 퇴근길,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오픈된 광장에서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평소라면 무슨 행사를 하나보다, 라고 그저 지나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우연히도 나는 한강이 누구인지 알았고 소년이 온다를 알았기에 그저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이날 강연은 한강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여 개최된 것이었고, 이날 교수님은 그리스의 비극중 하나인 ‘안티고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왜 우리가 어떤 사건을 기억해야 하고 기념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딸입니다. 나중에 어머니와 결혼한 것을 알고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떠돌이가 된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 말입니다. 안티고네는 그런 오이디푸스와 함께 고통을 함께한 딸이었습니다.
안티고네에게는 두 오빠가 있었는데, 테베의 왕위 자리를 두고 싸우다 둘 다 죽고 말았습니다. 테베는 안티고네의 삼촌이자 장래 시아버지가 될 크레온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명령합니다. ‘테베를 지키려고 한 에테오클레스는 장례를 치러주고, 테베를 공격한 폴리네이케이스는 길가에 버려두라’
왕의 명령을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안티고네만이 오빠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곧 사형에 처하게 됩니다. 안티고네를 사랑했던 약혼자 하이몬 역시 뒤따라 죽고 아들이 죽은 것에 슬퍼하다가 어머니, 곧 테베의 왕비 역시 죽고 맙니다.
‘안티고네’와 ‘동호’의 공통점은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제까지 함께 먹고 마시며 뜻을 같이 했던 이가 처참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데 그걸 그냥 보고 지나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눈앞에 두려운 명령이, 나와 가족을 해칠 수도 있는 무력과 통제와 감시가 있는 것입니다.
동호와 안티고네는 시신을 수습할 때 내 생명도 함께 위험할 수도 있기에 쉽지 않은 결정, 아니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결심을 했습니다. 누군가 등떠밀어 시켜서 한 일도 아니며 단지 마음속의 소리를 듣고서 행동했습니다.
누가 나에게 안티고네와 동호처럼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인간의 존엄을 기념하는 행위를 하라고 한다면 대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도 안돌아보고 달음박질 할 것입니다. 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다를 때가 많고, 요행이나 바라는 속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마음’을 지켜내지 않으면 인간과 동물이 얇은 종이 한 장 차이와 같음을.
수감되어 극심한 배고픔 속에서, 함께 정의롭게 싸우자고 맹세했던 사람들끼리 콩나물 한 줄기를 더 뺏어 먹기 위해 싸웁니다.
무력으로 고문을 받을 때 너무도 고통스러워 ‘내’가 살기 위해 무고한 아무 사람의 이름을 끌어들입니다.
‘내’가 더 잘 살기 위해, ‘내’가 높아지기 위해 ‘약하다고 생각되는 이’의 위에 군림하며 자원을 쟁취합니다.
이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것들이 한꺼풀 벗겨지는 때,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 안에서 나 이외에 다른 생명체에 눈길이 가는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지구별에 함께 공존해야 하는 다른 ‘생명’이 있음을 아는 마음입니다. 그게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래서 내 안에 이 마음이 생긴 것이 무척 반갑습니다. 나는 이 마음을 지켜나가고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씁니다.
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에, 사람뿐 아니라 비둘기들이 먹을 것을 찾아 뒤뚱거리며 걷고 , 개들이 주인과 함께 산책 나와 기분이 좋아 장난치며 겅중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생명들이 뒤섞여 어울리는 모습이 그저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