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맺힌 사랑

<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48화

by 양창식


투명한 유리 위, 수많은 작은 물방울들이

서로 다른 온도를 안고 춤춘다.

서로 다른 세계를 건너온 두 마음이

만나, 어루만지고, 사라질 듯 또렷한 흔적을 남긴 채.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맺혔다.


겨울밤,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봅니다.

차가운 바깥 공기와 따뜻한 실내 공기가 만나는 유리창에는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 있어요. 손끝으로 조심스레 닦아내면서 문득 당신과 나의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우리가 만나, 차가움과 따뜻함이 뒤섞이며 남긴 사랑의 흔적처럼.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처럼 투명하지만 뚜렷한 기억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도 기억나요?

한 북적이는 카페,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오후였죠. 창문 너머로 흐르는 빗물 사이로 당신이 들어왔고, 우산을 접으며 살짝 미소 짓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해요. 그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설렘이 밀려왔어요. 사랑이 시작될 때의 묘한 떨림이었겠죠.

그때 당신도 느꼈나요?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만, 함께하면서 조금씩 닮아갔어요. 당신은 감성적이고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었지만, 김광석 노래를 함께 부르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당신도 읽기 시작했죠. 은희경의 『새의 선물』 속 주인공들처럼, 서로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배우며 우리는 조금씩 하나가 되어갔답니다.

하지만 사랑은 항상 따뜻한 온기만 품고 있지 않았죠.

차갑고 아픈 순간도 분명히 있었어요. 당신이 제주로 떠난다고 했던 날,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겨울비가 내리던 그날, 카페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처럼 우리의 사랑도 가느다랗게 맺혀 있었고, 그 물방울을 손끝으로 만지면 사라질 듯 불안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붙잡지 못했고, 말없이 커피잔만 바라보았죠.

그 후에도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이어갔어요.

서울과 제주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유리창에 남은 물방울처럼 우리의 사랑은 희미해졌다가도 다시 또렷해졌습니다. 당신이 보내준 엽서를 창가에 두고 바라본 적 있어요. ‘제주의 겨울 바다를 보며 너를 생각해’라는 짧은 문장 속에 깊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죠. 유리창 너머로 비친 내 모습과 함께, 나는 당신의 흔적을 마음에 새겼어요.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 같아요.

손끝으로 닦아내면 사라질 듯하지만, 그 자리에 남은 미세한 온기가 오래도록 기억되듯, 우리의 흔적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때론 거센 비바람에 씻겨 사라지기도 했지만, 어느 햇살 좋은 날 반짝이며 빛나기도 했죠.

가끔은 그때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요.

당신을 붙잡았더라면, 내 손을 조금 더 꼭 잡아주었더라면 사랑이 달라졌을까요? 하지만 사랑은 그런 가정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법이란 걸 이제는 압니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닦아내면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남는 온기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그랬던 거겠죠.

이제 나는 다시 창가에 앉아 우리의 기억을 되짚습니다.

당신이 한 번 말했죠.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진짜 얼굴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함께 본 풍경만큼은 진짜야.”

맞아요. 우리는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계절을 함께 지나왔어요. 그 기억은 우리 안에 남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 같은 사랑으로 자리 잡았죠.

만약 이 편지를 당신이 읽고 있다면, 창가에 앉아 유리창을 바라봐 주세요.

그 위에 당신의 손길을 남겨 주세요.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 손길이 우리의 사랑을 기억하는 소중한 흔적이 될 테니까요.


사랑을 담아,

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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