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통증, 나는 마취제 없이 산다

<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51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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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때로 칼날이다.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며,

생의 안쪽 깊은 곳을 슬쩍 베고 간다.

기쁨보다 더 선명한 건,

그 상처가 남긴 통증이다.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고 황홀한 감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기쁨이면서도 동시에 통증이다. 누군가는 사랑의 끝자락에서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누군가는 찢긴 편지 조각을 가슴에 품은 채 밤새도록 깨어 있다. 누군가는 사진 속 한 장면을 바라보며 오래된 통증을 되새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가다가도 익숙한 향기나 멜로디에 무너져 내린다.


사랑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고 하지만, 그 끝이 남긴 통증은 끝이 없다.

마치 마취 없이 수술대 위에 누운 것처럼, 우리는 온몸으로 그 통증을 겪는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통증은 흉터로 남아 일상 속 작은 순간마다 우리를 덮친다.


한국의 영화와 문학은 이러한 사랑의 고통을 유독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멜로>는 그 대표적인 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처도 함께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 결국 사랑은 우리를 살게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천천히 무너뜨리기도 한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에서도, 사랑은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라지고, 남겨진 이는 그 틈에서 고통을 감당한다. 누군가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은 끝내 한 사람의 생을 따라다닌다.


사랑은 왜 이렇게 아플까?

우리는 왜 매번 그 아픔을 알면서도 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그 고통조차도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처를 입고도 다시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 그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감정이 아닐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정원은 죽음을 앞두고도 사랑을 피하지 않는다.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사진을 찍고, 조심스레 마음을 건넨다. 그는 끝까지 사랑을 기억하려 한다. 비록 오래 가지 못할 사랑이라 해도, 그것이 ‘지금’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남겨진 사람에게 통증의 형태로 깊이 각인된다.


누군가는 사랑의 통증을 피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닫는다.

아예 사랑하지 않거나, 스스로에게 감정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하지만 정말로 마취가 가능한 걸까? 이별 후에도 상대의 말투가 귀에 맴돌고, 함께 걷던 거리의 풍경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사랑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통증을 피하는 것보다,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지 모른다.

사랑의 상처는 우리를 때로는 무너뜨리지만, 그 아픔 속에서 우리는 점점 단단해지고, 동시에 더 섬세한 사람이 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가 던진 그 유명한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이별이 남긴 통증의 본질을 단 한 문장에 담는다. 사랑은 변하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사랑의 아픔을 감당해 내는 또 다른 방식은,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문학, 영화, 음악, 미술, 그리고 글쓰기는 사랑의 통증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의 고백이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 시인은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그 아픔마저도 별처럼 세어본다. 슬픔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그 마음은, 사랑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인간적인 흔적이다.


사랑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첫사랑의 상처, 이루지 못한 감정, 너무 늦게 깨달은 마음… 그것들은 우리 안에 새로운 감각을 만든다.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주인공처럼, 우리는 아픔을 겪으며 조금씩 성숙해진다. 사랑이 남긴 흔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지만, 그것이 우리를 조금 더 따뜻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는 마취제 없이 사랑을 겪는다.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통증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사랑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통증 없는 사랑은 없다. 하지만 그 통증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진짜 사랑에 가까워지는 길 아닐까.


사랑이 없다면 아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삶엔 깊은 기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마취제 없이, 사랑이라는 고통을 껴안는다.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 더 깊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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