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52화
사랑은 꽃이 아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시들지 않고,
열매를 맺지 않아도 뿌리로 남는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사라진다 해도,
그 재는 마음 어딘가에서 여전히 온기를 품는다.
사랑은 과연 유통기한이 있는 감정일까?
프랑스의 생물학자 헬렌 피셔는 "사랑은 4년이면 끝난다"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녀는 사랑을 생물학적 반응으로 설명한다. 도파민,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같은 호르몬이 일정한 시간 후 감소하면서, 사랑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사그라든다는 것이다.
사랑은 결국 신경전달물질의 유희에 불과한 걸까? 그렇게 간단히 소진되는 감정이라면, 왜 우리는 끝없이 사랑을 갈망하고, 이별에 아파하며, 누군가를 그리워할까?
사랑은 호르몬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감정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단순한 설렘이나 욕망 이상의 무언가로 기억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처럼, 한때 뜨겁게 사랑했지만 끝내 함께하지 못한 기억은 시간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추억이 되고, 흔적이 되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어떤 기점이 된다.
문학도 사랑의 유한성과 지속성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김훈의 『남한산성』속 인물들은 전쟁 속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사랑이 깨지기도 하지만, 그 상처마저 삶의 일부로 껴안는다.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다.
격렬한 사랑은 언젠가 잔잔해진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뒤 고요하게 잔잔해진 호수처럼. 하지만 그 고요 속에도 여전히 물결은 존재한다.
연애 초기에 느끼는 강렬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함으로 바뀐다.
그 순간 우리는 착각한다. 사랑이 끝났다고. 그러나 사실 그것은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가 던진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질문은 그 본질을 찌른다. 사랑은 변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 아닌 태도로 바뀌고, 설렘이 아닌 책임으로 이어지며, 결국 함께 살아내는 ‘기술’이 된다.
그렇다면 사랑의 수명은 정해져 있을까?
어쩌면 사랑이 유한하다는 믿음은, 우리가 영원한 감정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오래도록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다. 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설렘을 유지한다는 것, 오해를 넘어 이해로 다가간다는 것,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노력’과 ‘의지’의 문제다.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의 한 장면에서는, 고요한 일상에서도 사랑이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말보다 행동으로, 설렘보다 침묵으로, 사랑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사랑의 수명은 그 관계를 얼마나 섬세하게 돌보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사랑은 끝나고, 어떤 사랑은 이어진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그 자체로 유효하다. 짧았든, 길었든, 진심이었던 순간들이 있었다면, 그 사랑은 여전히 우리를 만든다.
사랑은 생물학을 넘어선다.
기억 속에 살아 있고, 습관처럼 스며있고, 때로는 오래된 노래 한 곡 속에서 되살아난다. 4년이 지나도, 40년이 지나도, 사랑은 그 이름을 바꾸며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