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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나리 6

땅의 슬픔

by 강순흠



1912년 봄, 벚꽃 잎이 피로 물든 눈물처럼 흩날리는 길을 병섭이는 달렸다. 주먹밥을 쥔 손아귀에서 찐득한 땀이 스며 나와 종이를 적셨다. 허리띠에 꽂힌 '토지신고 안내문'은 바람에 펄럭이며 할아버지의 밭두둑을 삼킨 악마의 혀처럼 보였다.

"의회 삼촌!"
초가집 담장 너머 논둑에서 허리를 숙인 중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호미 끝에서 떨어진 진흙 방울이 병섭이의 발밑으로 굴렀다. 의회의 등골은 얇은 저고리 아래로 척추가 우묵 패인 골짜기를 이루며 떨고 있었다.

"또 무슨 재앙이냐?"
병섭이가 내민 종이 위로 의회의 거친 손가락이 훑고 지나갔다.

'소유자 성명', '경작 기간'

글자들이 해 질 녘 볕에 번져 피멍 든 상처처럼 퍼졌다. 의회는 입술을 깨물었다. 병섭이 할아버지가 손수 일군 논이 갑자기 '미등기 땅'이 되다니.

"내일 새벽에 군청으로 가보자고. 작년에 주덕이네 땅이 어떻게 됐는지 보았을 텐데…."
의회의 목소리가 갑자기 죽었다. 주덕이의 절반 땅이 사라진 후, 그는 아내의 묘비까지 팔아야 했다. 그녀의 무덤은 '일본식 묘지 이전령'으로 허물어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날 밤, 병섭이는 어머니가 전해준 편지를 펼쳤다. 동생이 여수 광양만항 건설 현장에서 돌덩이에 깔려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종이 끝에 남겨진 '강제 노역'이라는 단어 위로 동생의 손바닥 자국이 검붉게 묻어 나와 있었다.

이튿날 새벽, 군청 앞 행렬은 땅을 잃은 자들의 그림자로 길어졌다. 삐쩍 마른 노인이 땅문서를 펼치다 기침을 토해내자, 그 위로 헌병의 장화 소리가 메아리쳤다.
"다음!"
병섭이의 차례가 왔을 때, 창구 너머 행정관의 금테안경은 얼음 조각처럼 반짝였다.
"서류 불충분. 다음."
"저, 글을 못 읽어서…."
"법을 모르면 죄요!"
행정관이 도장을 내리찍는 순간, 종이 위에 핏빛으로 번진 '공용지' 글자 사이로 아버지가 죽기 전 남긴 밭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땅 지키는 게 왜 죄요?"
병섭이가 터진 목소리로 외쳤다.
"법을 어긴 자는 적이다!"
헌병이 군도를 뽑으며 포효했다.
군도 자루가 병섭이의 정강이를 내리쳤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흩뭉친 할머니의 삿갓 조각 위로 헌병의 웃음이 떨어졌다.


1918년 봄, 병섭이는 철조망 너머 자신의 논둑에 서 있었다. 일본인 지주의 오동나무가 뿌리를 내린 땅 위로, 철조망이 울부짖듯 삐걱거렸다. 허리에 찬 주먹밥은 이제 흙으로 돌아간 아버지의 뼈처럼 차가웠다.
"아버지… 이게 다 법이라는 겁니까?"
바람이 일며 철조망이 울부짖는 소리 속에서 그는 낫을 들어 올렸다.


그날 밤, 마을을 휩쓴 불길 속에서 헌병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병섭이의 몸은 불타는 논바닥에 쓰러졌고, 재가 된 손아귀에는 할머니의 삿갓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태워진 땅에서 스며오르는 슬픔은 여전히 하늘을 적시며, 조선의 땅덩이를 삼킨 침략자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작가의 말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기를 배경으로, 토지조사사업과 태형령 부활이 조선 민중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늘날 '공공성'과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과거와 닮았습니다. 병섭이가 마지막까지 쥐었던 낫은 단순한 농기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억압에 맞선 정신의 상징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인권의 칼날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때만, 그 반복은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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