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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나리 5

두 영혼, 하나의 땅에서 갈라지다

by 강순흠

새벽의 갈림길

단풍잎이 마당을 덮은 날, 두석과 순형은 교실 뒤편에서 일본 지도집 표지의 철도 노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도쿄엔 전차가 밤새 달리고, 전깃불이 밤새도록 켜진다.

그런 기술을 배워야 조선도 발전할 텐데…"

"이게 진짜 무기야. 사상이 없으면 기술은 칼날이 될 뿐이지."

두석은 손톱으로 지도 위 조선 반도를 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의 사상이 백성의 고픈 배를 채울 수 있겠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야. 일본이 준 문명이라는 게 독이 될지도 모른다."

전차 바퀴가 돌아갈수록 조선 땅의 쇠사슬이 죄어온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1925년 3월, 도쿄 시부야 역.

전차 종소리에 깜짝 놀란 순형의 어깨를 두석이 탁 치며 웃었다. 시부야 역 전차 종소리에 그는 갑자기 어린 시절 함께 타던 소달구지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이런 소음이 조선의 밤을 밝힐 수 있을까?'

"우리도 이런 걸 조선에 도입해야 할 텐데!

밤마다 그들은 산업혁명 서적을 나누어 읽었다. 순형이 휘파람으로 부른 '애국가' 그 선율에 두석이 화답하며 함박웃음으로 어깨동무하던 그 날들.


어느 봄날, 순형이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쇼우와 제철소 견학 갔을 때 봤어. 일본 군함 제조 공정."

군함 강철…

그걸 막을 총알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

두석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웃었다.

"총알보다 먼저 필요한 건 마음의 방패다. 교육과 훈련으로."

순형은 손바닥의 굳은살을 쥐어짜며 속으로 고민했다.

'마음의 방패'

그것이 굶주린 아이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을까?'


유리창 너머로 번쩍이는 강철을 보며 그는 처음으로 전율을 느꼈다.

"이 힘을…

우리가 당해낼 수 있을까?"



1926년, 홋카이도.

실습으로 간 크로마이트 광산에서 두 사람은 조선인 노동자들을 만났다.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 순형의 손을 잡았다.

"학생님, 내 아들도 도쿄 유학 갔었는데…

작년에 치안유지법으로 그만 흐흑 …"


그날 밤, 노숙자 쉼터에서 순형이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총독부 통계 조사팀에 합격했어. 경찰간부 후보생."

두석의 숨소리가 잠긴다.

"네가 일본을 위해 일한다고?"

"아니야!" 순형이 소리쳤다.

"체제 안에서라도 억울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네 순혈주의가 백성에게 닿을 수 있겠냐?"


순형이 결심한 듯 소리쳤다.

"나는 경찰간부가 될 거야."

"그게 네가 말하던 구원이냐?"

두석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 이젠 인정할 거는 인정해야지, 힘이 있어야 사람도 세상도 구할 수 있어"

"체제의 개가 되어 뼈를 주는 자가 진짜 구원자인가?"

두석이 소리치자 순형은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 서린 달빛이 어릴 적 함께 넘보던 학교 담장의 유리 조각을 떠오르게 했다.



1931년, 만주사변 소식이 심장을 뒤흔든 겨울.

순형은 경찰 계급장을 달고 두석을 만났다. 커피찌꺼기로 얼룩진 유리잔 사이로 말했다.

"순천에서 독립운동가 30명이 체포됐다.

순형이 계급장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30명 체포 명단… 내가 서류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살인자의 손에 피 묻은 구명줄을 던지려는 거냐?"

두석은 모포 속에서 손가락이 얼어붙은 아이들의 이야기, 지난주 지리산 산골에서 한 소녀가…..."

"그런 개별 구제로 어떻게 나라를 구한단 말인가"

"나라가 바로 그 개별의 삶 아닌가?"

두석이 일어서며 소리쳤다.

순형은 그의 눈에서 10년 전 밤마다 조국의 미래를 바라보며 어깨동무하던 열혈 청년의 그림자를 보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두석은 야간 강의를 하러 다녔다. '농촌 계몽학교 설계안'이라는 제목의 노트를 순형에게 던지며 말했다.

"문맹 퇴치율 3% 상승이면 10년 후엔 우리도 부국강병이 …"

순형이 노트를 밟으며 울먹였다.

"10년?

일본군이 중국 본토를 삼킬 그 시간을!!!"




1935년 봄, 광주 경찰서.

순형이 서류철을 펼친 손이 떨렸다. 체포 명단 첫 장에 '강두석'이 있었다. 밤새 담뱃재로 가득 찬 화재실에서 그는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동시에 두석은 농민들과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체포당했다.

고문실 천장에 매달린 채 웃음을 터뜨렸다.


순형이 창살 너머로 두석을 보았다. 태형 50대를 맞고 피를 토하는 친구에게 그는 속삭였다.

"자수하라. 내가 살릴 수 있다…"

두석이 피 묻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 신주쿠에서 네가 준 커피잔안에서 네 영혼은 이미 죽었다."

두석이 토방에 피를 뿜으며 웃자, 순형은 갑자기 광산 노인이 준 호루라기 조각이 주머니에서 달그락거리는 것을 느꼈다.

순형은 그날 저녁, 치안부 기록보관소에서 '농촌 계몽학교 설계안' 원고를 불살랐다.

그 밤, '농촌 계몽학교 설계안' 원고를 태우던 순형은 마지막 장의 낙서를 보았다.

'순형이와 함께 가르치리라 - 1926년 봄'

종이 재가 흩어지는 창밖으로 노란 개나리가 피어나고 있었다.




# 작가의 말

순형의 선택은 '현실적 구원'이라는 이름의 자기기만입니다. 그는 매 순간 타협의 논리를 발견했지만, 결국 체제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잠식했습니다. 두석의 고집은 무모해 보이지만, 그가 남긴 노란 개나리 씨앗들은 해방 후 전국 민족학교에 뿌려졌습니다. 이 글은 시대의 칼날에 휘둘린 모든 '순형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너의 현실주의가 진정 누구의 현실을 위한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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