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아래 숨은 봄
아버지께.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저는 뒷산에 올라 하늘을 봅니다.
혹시라도 그 산 너머 어딘가,
아버지가 살아계시진 않을까,
그 생각 하나로 버팁니다.
저는 군수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 그 이름보다 더 무거운 건
‘강두석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당신이 모든 것을 지우고 숨었다는 걸 압니다.
이 세상 어느 바위 틈에 계시든,
부디 살아만 계십시오.
그리운 날들 속에서도
당신이 손에 쥐어주셨던 글, 말씀, 마음…
모두 아직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꼭 다시 만날 날을 위해,
저도 견디겠습니다.
– 군수 드림.
두석은 금산에서도 벗어난
산 깊은 곳, 옛날 벌목꾼들이 쓰던 움막에 숨어 있었다.
움막이라 해도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나무껍질로 위장을 했고,
지붕 대신 풀을 덮었다.
내부는 허리도 펴지 못할 정도로 낮고 습기찼으며,
좁은 입구는 자갈과 흙덩이로 덮어 숨겼다.
햇빛은 그의 하루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두석은 몸을 움츠린 채
마치 들쥐처럼 낮을 보냈다.
숨소리조차 죽이며, 땀에 젖은 몸을
움막 한구석에 묻듯 기댔다.
날이 저물면, 달빛이 어슴푸레 비칠 즈음
그는 조심스레 기어 나왔다.
근처 개울가로 내려가
누런 물에 손을 씻고,
풀숲에 숨겨둔 감자 몇 알, 마른 보리떡,
밤례가 싸 준 묵은 장아찌를 조금씩 꺼내 먹었다.
한입 베어물 때마다 그는
"살겠다…"
며 중얼이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말마저, 들킬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날 밤, 처남이 몰래 들고 온 조그만 봉투.
아들 군수가 금산 근처 지인에게 몰래 부탁해 전달한 것이었다.
두석은 횃불도 켜지 못한 채
달빛에 눈을 의지해 그 편지를 펼쳤다.
편지를 다 읽고,
그는 움막 입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숨을 터트리듯 울었다.
소리는 내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은 채, 어깨만 들썩였다.
이 작은 땅속 구멍 안에서
세상 그 어떤 호통도,
그 어떤 연설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들의 글 몇 줄은
그에게 다시 ‘사람’이 되게 했다.
“…살아 있겠다.
언젠가는, 다시 나가겠다.”
그는 편지를 꺼내 가슴팍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움막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밤이 깊었다.
바다 건너 대한청년단의 수색 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숨는다는 것은 단지 몸을 감추는 일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저항이 있고,
사랑을 지키려는 선택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하루하루 숨죽이며 견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안에서
아들이 남긴 단어 하나하나가
작은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습니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움막 안에서
다시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