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고자의 그림자
봉강정 마당에는 오늘도
강두석이 서지 않았다.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몇몇 노인은 나지막한 소리로 웅성였다.
“선생 말이야… 아무래도 피신한 거 아녀?”
“그려… 청년단이 여기저기 와서 쑤시고 간 날 이후로 통 못 봤어.”
누군가는 말끝을 흐렸고,
누군가는 무서워 입술을 닫았다.
마을에 다시 ‘공포의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밤례는 조용히 문고리를 감쌌다.
소리 하나 내지 않으려 조심조심 움직였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의 부재.
밤례는 밤마다 그의 자리를 만졌다.
무너진 짚자리 위,
그가 누웠던 자리.
그 냄새, 그 온기,
이제는 다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봉강정이 이리도 추운 줄 몰랐소.”
그녀는 말없이 짐을 쌌다.
흰 보자기에 몇 가지 옷가지,
남편이 쓰던 작은 책 한 권을 넣고
가만히 짚었다.
“친정으로 가자.
그가… 그곳에서라도 살고 있다면.”
새벽이 채 밝지 않은 시각,
밤례는 외양간 뒤로 돌았다.
똥뫼산 옆길로 접어들 무렵,
누군가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밤례 아닌가?”
“……영재?”
영재는 웃으며 다가왔다.
농사일을 가장한 복장이었지만,
그 눈빛은 무언가 재고 있었다.
“이 시각에 어딜 가오?”
“……친정 아버지가 위독하오. 병문안 가는 길이오.”
밤례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영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알았다.
두석이 금산 처가로 피신했을 거라는 직감,
그게 진실이리라는 걸.
“조심히 다녀오시오. 요즘 험하오.”
“……고맙소.”
둘의 대화는 짧았다.
그러나 그 말보다 더 많은 것이
눈빛 속에 오갔다.
밤례가 돌아서자,
영재는 바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옆길로 빠져 산을 내려갔다.
“형님. 확실하진 않지만…
봉강정 안사람이 오늘 새벽 금산 쪽으로 갔소.
그쪽에, 그 양반이 있다는 소문이 있던디…”
영재는 마을에서 멀찍한 주막 뒷마당,
낮은 음성으로 대한청년단 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보시오, 중요한 정보요.
이름은 강두석.
지금쯤이면… 금산 친정집 언저리쯤일 것이오.”
청년단 단장은 웃으며
“잘했어. 말은 안 해도 우리가 기억하리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영재는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뭘 한 거지…
이게 옳은 일이었을까…”
그러나 그의 양심은
이미 검은 바람에 잠식되고 있었다.
밤례가 산 너머 금산으로 향하는 그 길 위에,
이미 보이지 않는 그물이 퍼지고 있었다.
청년단과 경찰은
‘작전’을 준비했고,
그림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국을 위협하는 자, 강두석을 체포하라!”
포스터가 붙고,
수배령이 내려지고,
마을마다 ‘강두석’이라는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봉강정의 대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작가의 말
어떤 배신은
칼보다 더 날카롭고,
침묵보다 더 서늘하다.
밤례는 사랑을 따라 길을 나섰고,
영재는 두려움을 따라 입을 열었다.
그 결정적 갈림길 위,
누구는 발걸음을 옮기고
누구는 영혼을 팔아버린
역사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