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지서 취조실에서
금당지서에 끌려온 강두석.
그가 앉은 취조실 탁자 위에 붉은 표지의 두꺼운 서류가 놓였다.
경찰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여순사건, 들었지?”
“이제 그건 단순 반란이 아니야. 이승만 각하를 겨눈 빨갱이들의 반역이었지.”
“그리고, 자네가… 그 배후 중 하나라더군.”
두석은 말없이 형사의 눈을 바라봤다.
눈 속에 분노와 슬픔, 그리고 냉소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내가 여수를 떠난 지는 오래요.
그날의 진실을 알지도, 따르지도 않았소.”
“허나, 자네는 그 전부터 ‘봉강정’이라는 가명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설파했고”
“백성들의 의식을 각성시킨 건 죄가 아니오.”
형사는 탁자를 내리쳤다.
“입 닥쳐! 여순 반란 주동자 강두석!
자네가 금당도에서 가르치고 설파한,
그게 바로 반란의 씨앗이었단 말이다!”
형사는 다른 서류를 꺼냈다.
익명의 밀고문, 금당도에서 적발된 문서, 수상한 왕래자 명단.
“여기엔 자네가 야학을 빌미로 청년들을 모으고,
사상을 주입하고,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도 있어.”
“무릇 글을 가르친 것이오. 말과 글을 깨우치게 한 것이오.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묻게 한 것이지.
폭력과 반역을 가르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소.”
형사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입은 그렇게 말하겠지.
그러나 위는 다르게 판단했어.
자네는 이승만 정권을 위협하는 잠재적 반역자,
여순 반란의 배후이자,
한반도 질서 교란을 꾀한 자로 보고 있어.”
그날 밤,
두석은 손과 발이 묶인 채 지서 뒤편 독방에 유치되었다.
벽에 낙서처럼 써진 글귀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반공이 신앙이다.
빨갱이는 죽여야 한다.”
두석은 무심히 중얼거렸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만
믿음이 되는 시대라면…
이 나라의 내일은… 어디 있는가…”
며칠 뒤,
전남도청 소속의 특별 심문관이 금당지서로 파견되었다.
군복 차림의 중년 남자는
두석의 앞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네에게 이승만 정권의 '대적자'라는 정식 혐의를 통보하러 왔다.
전향서를 쓰고,
과거의 행적을 자백하면 살 길은 열릴 것이다.”
두석은 웃었다.
“전향서?
내 사상의 축은 한 줄도 기울인 적이 없소.”
“허나, 그건 이 나라가 아직 제 자리에 서지 못한 까닭이지…
내 탓이 아니오.”
심문관의 눈에 짧은 당혹감이 비쳤다.
하지만 곧 사무적으로 말했다.
“이 문서에 도장만 찍으면 모든 것이 끝날 걸세.
자네 가족도 무사하고,
자네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
두석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글자마다 칼날이 서 있었다.
‘본인은 종래의 공산주의적 사고와 불온 사상을 모두 부인하며…’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 손으론,
거짓을 찍지 않겠소.”
#작가의 말
하나의 이름은 역사에 남는다.
강두석
그는 ‘주동자’도, ‘대적자’도 아니었다.
단지,
말과 글로 민중의 눈을 뜨게 했을 뿐.
하지만 그 말이 칼보다 두려운 시대,
그는 권력의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적(敵)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