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의 그림자
완도 금당도의 달빛 바닷가에 선 사내
청년 의회는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자(字)
"양순(良淳)"은 ‘어질고 순박한 사람’, ‘진실한 선함을 품은 인물’을 뜻하며, 그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서도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고,
그 속엔 진실한 삶을 살려는 고요한 결기가 흐릅니다.
그의 호는 관해당(觀海堂).
‘바다를 보는 집’이라는 뜻은 단순한 전망이 아닌, 격랑 속에서 진실을 꿰뚫고자 한 의회의 정체성이었다.
“바다란 말이야, 고요해 보여도 속엔 언제나 흐름이 있지. 그걸 보는 눈이 있어야 하네.”
그는 늘 말하곤 했다.
그는 강물처럼 유장한 기품을 지닌 사내였다.
그날도 그는 혼인식에 나서는 길에 바다를 잠시 바라보다 갔다.
봄날 신부를 맞이하던 날, 붉은 홍단령을 걸친 그는 단정히 초례잔을 들었다. 신부 박씨는 조용한 미소로 눈을 내리깔았고, 그 미소엔 사계절을 품은 평온이 담겨 있었다.
"평생을 함께하리다."
그들은 굳은 맹세를 했다.
그 말이 바람에 실려 강물 위를 흘러갔다.
부인 박씨는 속이 깊고 말수가 적은 여인이었다.
혼인 후 겨우 여덟 달, 박씨 부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누워버렸다.
한의사도, 당골레도, 약장수도 그 병명을 짚지 못했다.
밤마다 의회는 약탕관 앞에 앉아 찜약을 올리고, 박씨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좋은 바람 불어오겠지요. 마님.”
그러나 봄비처럼 떨리던 그녀의 손은 어느 날 싸늘하게 식었다.
그해 장독대에 소금꽃이 핀 날, 의회는 처음으로 눈물에 젖은 흙을 입에 넣었다.
“소금도 사람의 피눈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는 그렇게 ‘관해당’의 침묵 속에 첫 번째 상실을 묻었다.
해가 두 번 바뀐 뒤, 중매쟁이가 찾아왔다.
"평강 채씨, 채문서 댁 따님이오. 심성이 곱고 손맛이 좋다 하더이다."
채근임.
머릿결에 가을볕이 드리운 듯 따뜻한 여인이었다.
근임은 소박하고 다정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봄이 올 때마다 감국차를 달여주었고, 겨울이면 장독대 옆에 정한수를 올렸다.
의회는 그런 근임을 내심 존경했다.
혼례를 치르고 첫 딸을 낳은 날, 그는 염전에서 뛰어와 갓난아이의 손을 펴보며 웃었다.
"이 손에, 소금 결정이 맺힐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근임의 자궁은 아들을 거부하듯 자꾸만 딸을 내보냈다.
첫째 딸, 둘째 딸, 셋째 딸,
집안 어른들 사이에선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수군거림이 돌았다.
근임은 웃었다.
그 웃음은 초겨울의 살얼음처럼 얇고 투명했다.
밤이면 장독대 앞에 정한수를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장독대신님, 소금처럼 반짝이는 아들 하나, 부디…"
때론 아들 인형을 껴안고 밤새도록 흔들며 노래했다.
"얘야, 얘야… 이 어미 뱃속에서 놀다 오렴…"
넷째 딸 다섯째 딸 여섯째 딸,
"세상이 내 편이 아니구나…"
그의 눈동자에 소금결정이 어른거렸다.
딸이 태어날 때마다 근임은 혼자 장독대에 무릎 꿇고 소원을 빌었다.
“이 정한수 위에 아들의 별이 떠오르기를…”
그녀는 황토를 빚어 남자아이 인형을 만들고, 매일 밤마다 그 품에 안겨 울었다.
때론 아궁이 앞에 납작 엎드려 흙벽에 그린 아들 그림자에 기도했다.
그 모습에 의회도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일곱째 딸이 태어나던 날, 의회는 염전의 소금언덕에 앉아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45세가 되던 해까지, 그는 침묵을 삼켰다.
이젠 ‘대를 잇는다’는 양반가의 의무와 조상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근임의 그 정성에 하늘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움직여야 할까...."
바닷가의 고요, 그리고 마음의 물결
염전 일이 끝난 어느 날 해 질 녘, 의회는 금당도 뒷포구 바닷가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바다는 말없이 출렁였고, 그는 모래밭에 소금기를 뱉는 파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늘은 내게 등을 돌렸는가… 대를 잇지 못한 업장을 안겨주는가…”
그때였다.
생선 비린내를 품은 바람 사이로, 짧은 숨소리와 함께 복례가 나타났다. 바닷물에 손을 씻으며 조용히 물었다.
“의회 나으리… 소금바다를 보며 무슨 근심을 하십니까?”
의회는 그녀를 힐끗 보았다. 생선을 담은 망태를 메고, 손등에는 얇은 칼자국이 몇 개 그어져 있었다.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하다더니, 왜 점점 더 무거워지는지 모르겠소.”
복례가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는… 가진 자에게는 소금이고, 못 가진 자에겐 눈물이지요.”
그 말에 의회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복례는 생선을 내려놓고 앉았다.
“사실 저도 양반댁 딸이었습니다. 송명기의 막내딸이지요. 예전엔 부잣집 딸이라 불렸지만, 이젠 생선을 팔러 다니는 처지… 아버지 병을 고칠 길도, 어머니 수의를 마련할 돈도 없어요.”
그녀의 말은 조용했지만, 등 뒤의 바람처럼 아릿하게 스며들었다.
“남들은 날 팔려가는 계집이라 손가락질하지만…
저는… 이 생선처럼 버려진 채 썩는 것보다, 누군가의 밥상이 되고 싶었습니다.”
의회의 눈빛이 흔들렸다.
“복례 아씨, … 자네 눈은 파도와 같소. 부서지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 물결… 나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소.”
복례는 말없이 웃었다. 햇살은 지고 있었고, 바닷물은 붉게 물들었다.
의회는 그녀의 손등에 묻은 피자국을 조심히 씻어주었다.
“살아온 길이 진흙이라 해도… 그 속에 피는 연꽃도 있소.
나와 함께… 이 염전의 소금꽃을 피워주겠소?”
복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말, 잊지 않겠습니다. 나으리…”
# 작가의 말
자(字) "양순(良淳)"’처럼 어질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호(號) ‘관해당(觀海堂)’처럼 격랑의 시대에도 멀리 바라보며 고요히 견뎠던 사내였습니다. 그는 부인의 죽음 앞에 침묵했고, 후사를 잇지 못하는 고통 앞에서 내면을 태웠으며, 가문의 체면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진정 바라본 인물은 ‘복례’입니다.
복례는 가난한 현실과 무너진 신분, 병든 부모와 굶주림 사이에서도 끝내 자신의 선택을 통해 삶을 붙든 여인이었습니다. 단지 ‘첩’이 아니라, 몰락한 양반가의 마지막 딸로서 자존과 체면을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또 사랑받기 위해 바다를 바라보았던 인물입니다.
그녀의 말
<“이 생선처럼 버려지기보단, 누군가의 밥상이 되고 싶었습니다.” >
는 가슴을 울립니다.
그 말은 오늘날 우리가 잊고 사는 수많은 ‘이름 없는 삶들’의 진실입니다.
복례는 의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머리를 숙인 게 아니라, 자신의 슬픔을 나누며 의회의 고독과 손을 맞잡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난 건 단지 후사를 위한 결합이 아닌, 상처 입은 두 영혼이 서로를 껴안은 온기였습니다.
두석은 단지 대를 잇는 존재가 아니라, 소금꽃 같은 인내와 바다 같은 시선을 품은 부모의 사랑이 낳은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름을 잃고도 품위를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잊히지 않을 한 여인의 뜨거운 목소리를 담은 기록입니다.
고요한 염전 위에, 아무도 몰래, 바람에 실려서.
그렇게
노란 개나리는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