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의 달빛 아래, 인연이 번지다
의회는 염전 끝자락 갈대숲을 지나다가 멈춰 섰다.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갈대 사이로, 복례가 엎드린 채 소금을 고르고 있었다.
땀이 흘러내린 목덜미엔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손등엔 굳은살과 함께 날 선 칼자국이 몇 줄 남아 있었다.
“소금보다 더 짜구려… 네 삶이 그런가…”
의회는 중얼이며 다가섰다.
복례는 고개를 들었다. 낯익은 눈빛, 바다처럼 깊고 조용한 그 사람.
“나으리…”
그 한 마디에, 바람이 갈대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날 해 질 녘, 의회는 소반에 소금죽 한 그릇을 담아 복례의 굴막으로 갔다.
“염전에서 태어난 이는 소금으로 배를 채우는 법이오.”
복례는 어색한 듯 미소 지었다.
“나으리는 왜… 이런 사람에게 소반을 주십니까?”
의회는 조용히 말했다.
“자네를 처음 본 날부터… 마음속에 그늘진 등불 하나가 켜졌소.”
말은 짧았지만, 바람보다 따뜻했다.
복례는 그날 밤 어머니의 병든 다리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내 삶에도… 등불이 생긴 걸까요…”
다음날 밤,
보름달이 바다 위에 출렁거렸다
바람 한 줄기가 염전 끝자락 갈대숲을 헤치고 지나갔다.
달빛은 바다보다 먼저 복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의회는 갈대 사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물동이를 들고 염수 통에 소금을 붓고 있었다. 소매가 젖어 팔목이 드러났다. 소금기가 눅눅히 말라붙은 살결 위로 달빛이 내려앉자, 의회는 숨을 삼켰다.
복례가 고개를 돌렸다.
“이 밤에… 나으리가 왜 이곳에…”
“자네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서.”
“…”
복례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운 목덜미가 드러났다.
“이 손, 물기 말리고 가시오.”
의회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소금물에 절인 손등은 뜨겁고 거칠었지만, 그의 손끝에선 바람보다 부드러웠다.
그는 천천히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고단했을 거요.”
복례는 눈을 감았다.
“이런 손으로라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전, 이 삶이 싫진 않아요.”
의회가 가까이 다가섰다. 숨결과 숨결 사이, 갈대가 흔들렸다.
복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동자에 자신이 담겨 있었다.
말없이, 아주 천천히 입술이 닿았다.
짠 소금향 속, 물비린내와 흙냄새가 묻은 짧은 입맞춤이었다.
복례는 떨리는 숨을 토했다.
“나으리… 이 키스, 후회하실지도 모르오.”
“그대가 나를 피하지 않으면, 난 후회하지 않을 것이오.”
의회는 다시 그녀를 껴안았다.
밤의 바람은 갈대숲을 지나 바다로 향했고, 두 그림자는 하나로 겹쳐졌다.
복례가 의회댁으로 들어간 날, 하늘엔 장대비가 내렸다.
근임은 조용히 고추장을 젓다 말고, 복례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무거운 숨결, 눌려 있는 말들… 그러나 그녀는 말없이 상을 차렸다.
그날 밤, 의회는 복례를 데리고 똥뫼산 진진으로 갔다.
“이 나무 아래서, 우리가 하나 되었음을 맹세합시다.”
팽나무 아래 무릎 꿇은 두 사람.
복례는 떨리는 손으로 의회의 손등을 덮었다.
“제가 살아온 날이, 이제부터 살아질 날이 되길 바랍니다.”
의회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제 그대의 눈물이, 내 기도이오.”
그 껴안은 두 그림자가 빗물 속에 번졌다.
선창가.
두 사람은 달걀껍데기 안에 심지를 넣고 불을 붙였다.
“이 불빛이 꺼지지 않기를.”
의회의 손등이 복례의 손등을 감쌌다.
두 개의 달걀불이 물 위를 타고 흘러갔다.
서로의 체온이 손끝에서 전해졌고, 그들은 숨소리 없이 기도했다.
“아들이 태어나면… 그는 물 위에 뜬 별이 될 것이오.”
그로부터 열 달 뒤, 복례의 품에서 강두석이 태어났다.
그 울음은 소금벌의 바람처럼 퍼져 나갔고,
그 울음은 곧, 두 사람의 사랑이 피운 첫 번째 꽃이었다.
작가의 말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소금죽 한 그릇, 손끝의 따뜻함, 갈대숲의 침묵 속에 피어납니다.
의회와 복례는 신분과 체면을 넘어, 서로의 고독과 상처를 껴안았습니다.
그 껴안음은 단지 육신이 아닌, 마음의 사무침을 안은 것이었습니다.
두석은 그런 사랑의 열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