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핀 동백 9

서로 다른 말

by 강순흠


해는 아직도 차가웠다. 바람은 겨울을 놓지 못한 듯 삭막했고, 사람들의 옷깃은 여전히 여며져 있었다. 그해 삼월, 해방된 조국에서는 둘로 갈라진 혀처럼 서로 다른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완도 금당의 늦겨울 언덕에도 그 소식은 파도처럼 번져왔다. ‘단일 3.1절 기념행사 실패’, ‘좌익은 신탁 찬성’, ‘우익은 신탁반대’. 경성에서는 벌써 피가 튀고 있었다. 갈라진 깃발은 서로의 구호를 적으로 삼았고, 해방된 광장은 도리어 전장의 사지가 되었다.

“선생님, 우리도 해야지요. 그냥 이대로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서중현의 눈빛은 결연했다. 그는 과거 항일청년회 활동으로 두석과 함께 투옥된 적도 있었다.
두석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해야지. 하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3.1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나라는 아직도 반쪽짜리 해방이야.”
벽에는 민족대표의 초상과 태극기가 붙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조용히 걸린 글귀가 있었다.
‘기미년 정신은 아직 살아 있다.’
하지만 거리로 나서면, 그 정신은 붉고 푸른 피로 나뉘어 있었다. 경찰서 앞에는 전향한 친일 순사들이 다시 군홧발을 내딛고 있었고, 읍내 청년단은 친일 유지의 아들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 섬에서라도, 제대로 된 3.1절을 해보자고요. 단정 반대! 신탁 반대! 친일청산! 이 셋을 외칠 수 있는 날이 오긴 하겠습니까?”
중현의 말에 동네 주민들과 청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석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면, 우리가 시작하자. 좌도 우도 아닌 민중의 입장에서.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주자.”

민족은 하나인데, 왜 기념일이 둘이란 말인가…”
그는 좌우 공동 기념행사를 간절히 원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땀이 서린 3.1 운동 정신이 이데올로기의 칼날 아래 찢기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완강했다.
청년단 소속 우익 인사들은 단호히 말했다.
“좌익과 함께 행진을? 빨갱이들과? 그럴 수 없습니다, 선생님.”
반면 조선청년동맹과 농민조합 측 인사들은 이렇게 반격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미제의 자유입니다. 일제의 개들이 이제는 성조기를 들었소.”
그 사이에서 두석은 끊임없이 회유하고 설득했다. 어느 밤, 그는 읍사무소 지하 회의실에서 양측 대표들과 마주 앉았다. 모두의 눈은 날카로웠고, 말은 돌처럼 무거웠다.
“오늘 우리가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내일의 조선은 찢긴 채 태어납니다.”
그의 말은 메아리쳤으나, 이념의 벽은 너무 두꺼웠다.

3.1절 행사는 금당도 너럭바위 앞 큰 마당에서 열렸다. 태극기와 조선독립만세의 현수막이 걸렸고, 아이들은 가슴에 하얀 리본을 달았다. 소녀들은 동백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노래를 준비했다.
3월 1일 오전 11시. 종이 울렸다.

첫 번째 연설자는 금당 출신 교사 신진용.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해방은, 사라진 일제 대신 미국이 지배하는 해방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친일파가 다시 똬리를 틀고, 미국은 그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군중 사이에서 환호와 불안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어 무대에 선 이는 두석이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 맨발의 아이 한 명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아이에게 여러분은 무엇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총칼 없는 조국입니까? 이름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땅입니까? 좌도, 우도 다 좋습니다. 하지만 민중이 굶고, 친일이 웃고, 경찰이 다시 짓밟는 이 현실에 우리는 어느 쪽의 편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양심입니다.”
그때, 멀리서 싸이렌 소리와 함께 한 무리가 들이닥쳤다. 마을 지서장이 이끄는 우익 청년단이었다.
“이거 불온집회야! 다 해산해! 공산당 빨갱이들 모였다고 신고 들어왔어!”
군중이 술렁였다.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고, 여자들은 태극기를 움켜쥐었다.
두석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너희들이 이렇게 덮어씌운다고 역사의 진실이 바뀌지는 않아. 이 섬의 민심이 두렵냐?”
지서장은 눈을 부라리며 포승줄을 들었다.
“다음번엔 너 먼저 잡는다, 강두석. 조심해라. 그 입 닫지 않으면!”

행사 다음 날, 거리엔 찢긴 포스터가 나부꼈다. 누가 붙였는지 알 수 없는 글귀가 담벼락에 쓰여 있었다.
“친일은 살아남았고, 독립운동은 잡혀간다.”
두석은 이 문구를 보며 오래도록 서 있었다. 광복은 누구에게 왔고, 누구에겐 아직 오지 않았는가?



#작가의 말
1947년 3.1절, 해방된 조국은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한 날, 같은 하늘 아래서도 서로 다른 구호가 울려 퍼졌습니다. 단일행사조차 실패한 이 현실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해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좌우 모두 '조선'을 말했지만, 서로가 말하는 조선은 달랐다. 민족의 이름으로 싸우는 이념들, 그 사이에서 진실과 상식과 신념은 파묻히고 있었다.

소설 속 두석은, 수많은 이름 없는 민초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가 외친 ‘나는 조선 사람이다’라는 한마디는 그 시대를 꿰뚫는 선언입니다. 좌도 우도 아닌, 민중의 편.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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