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깃발 아래
장마가 오기 전, 뙤약볕이 풀도 사람도 숨 막히게 눌러 앉히던 때였다.
그러나 눅눅한 공기 속에서도 마을 회관은 연일 들썩였다. 깃발이 다시 펄럭이고 있었다.
서중현.
그는 더 이상 익명의 청년이 아니었다.
금당 관내 육동리, 마을 주민들 사이에선 ‘서동지’라 불리며 좌익의 대변자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친일파 청산 없이 무슨 나라냐!
보라, 독립운동 한 자들은 지금도 굶고,
왜놈 밥그릇 핥던 자들은 면서기, 지서장, 군수 돼 있지 않은가!”
서중현의 언변은 불길 같았다.
3월 1일에 이어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 그리고 이제는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까지 좌익의 조직적 준비는 치밀했고, 군중은 날로 커져갔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분노했고, 환호했고, 또 휘둘렸다.
두석은 그 군중 속에 섞여,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더는 단상 위에 있지 않았다.
그날 3.1절 행사에서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었다.
조국이 해방되자마자 다시 갈라졌다. 이념이라는 말로, 민족이 다시 찢기고 있었다.
“두석 형님. 이래선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말려야지요.”
젊은 교사였던 김세훈이 밤중에 그를 찾아왔다.
“서동지는 너무 빠릅니다. 구호는 날로 격해지고, 청년단도 무장하려 합니다.”
두석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대답은 없었다.
서중현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방법이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육동리 마을회관, 어느 밤.
붉은 천막 아래 촛불이 백여 개가 타올랐다.
서중현은 중앙에서 종이를 흔들었다.
“미군정은 우리를 식민지로 삼으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인민위원회로 다시 서야 한다!
친일파 처단과 단정 반대를 선언하자!”
회관 밖, 동네 어른 박노인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놈의 세상, 다시 뒤엎겠다는 거구먼...”
그날, 좌익 청년단은 각 마을로 지침을 나눴고, 마을 곳곳에서 찬반이 격돌하기 시작했다.
인민위원회 재구성 찬반 서명은, 곧 가족과 이웃의 편 가르기가 되었고, 같은 고향, 같은 피붙이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두석은 밤례와 밤늦게 마당에 나와 앉았다.
어린 재수와 영단은 방 안에서 자고 있었고, 멀리서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점점 무서워져요, 서방님.
어느 집은 좌익 서명 안 했다고 야밤에 돌이 날아들었대요.”
두석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 틀렸다. 해방이 오면 다 나아질 줄 알았는데,
계속 이념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진짜 무서운 전쟁은 이제부터야.”
그날 밤, 서중현은 두석을 조용히 불렀다.
그는 흰 셔츠 안쪽에 총알자국처럼 붉게 물든 '인민의 결의안'이라는 종이를 내밀었다.
“형님은 왜 아직도 망설이십니까.
형님이 앞장서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형님을 믿습니다.”
두석은 그 종이를 받아 들고,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러나, 결국 그 종이를 불 속에 던졌다.
#작가의 말
역사의 어느 순간은, 한 사람의 결단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갈등과 침묵으로 쓰인다.
서중현은 역사의 격류 속에 부상한 얼굴이었고, 두석은 그 물살을 가로지르려 한 인간이었다.
이념은 해방보다 빨리 사람의 가슴을 갈라놓았고, 동백꽃은 다시 피었으나, 그 붉음은 더 이상 봄의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