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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영 Aug 23. 2024

우리아이 첫 학원 라이딩 3개월 째에 어미의 마음 변화

무용학원, 한국무용




남편 직장 동료분께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입지 않은 옷들을 계절별로 물려주시는데,

옷이 담겨진 보따리 속에 연분홍색과 연보라색에 레이스와 보석이 달린 발레복이 있었다.

첫 눈에 딸 아이는 발레복에 반해서 옷을 갈아입고 팔을 좌우로 뻗고 발꿈치를 높이 들어가며 춤을 췄다.

그렇게 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첫 아이 4살 때였다.


아이는 시간이 날 때면 옷장을 뒤져 발레복과 발레슈즈를 신고 연신 빙글빙글 돌기도하고,

"엄마~ 발레 가르쳐줘~" 하며 나를 졸랐다.

다행인지 당시 우리집에는 발레책이 3권 있었다.

Ballet kitty ballet class, Ballet kitty, Balleria by Peter Sis


책 속의 귀여운 일러스트를 통해 발레타이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집근처 오프라인 발레복 가게를 찾아가서 발레타이즈도 사보고,

일러스트 동작을 따라 first position, second position을 따라하며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었는데, 아이는 매일 새로운 것! 새로운 춤! 새로운 자세!를 요구했다.

"엄마 그거 발레 아니잖아." "엄마, 그거 요가잖아."


내 안에 있는 것으로 해결이 안되서, 집 근처 학원에 전화를 해서 4살은 안 받아주신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제발 하루만 수업을 듣게해달라고 부탁해서 5살, 6살 언니들과 발레수업도 들었다.

오른쪽 왼쪽도 헷갈리는 4살 아이가 언니들과 50분 수업을 쫓아다려니 버거웠는지 그 뒤로는 발레 학원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아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주기적으로 춤을 배우고 싶다고 나를 졸랐다.

밤에 아이가 잠들면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유튜브로 발레스트레칭이나 방송댄스를 따라하며 

내일 알려줘야지 하고 잠이들곤 했는데,

나에게는 춤과 관련된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았는지 며칠 지속하기도 벅찼다.

깜깜한 밤에 아이들 깰까봐 소리도 틀지 못한채 안무만 보고 연습하는 시간이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지도 않았고.


아이가 6살이 되던 해 아이가 원하는 무용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다찾다 지쳐서, 춤은 엄마표에서 손을 떼자고 다짐하며 집 근처 무용학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발레나 댄스 학원 중에 유독 눈에 띈 학원은 학원 정기 공연도 하고 6살 아이 콩쿨도 내보낸 학원이었다.

이왕이면 배워서 공연도 하고 콩쿨도 나가면 얼마나 보람찰까 하는 마음이었다.

원장님께서는 한국무용을 전공하신 분이고 우리아이도 유연성이 좋지 않아서 재미있게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한국무용을 체험해보기로 했고, 아이와 손을 잡고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학원을 방문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은 선생님께서 우리아이를 보자마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구부려 키를 맞춰주셨고,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를 해주시는 그 순간부터 아이의 마음을 무용학원에 뺏겼다.


선생님께서 빌려주신 한국무용 옷을 입고 집중해서 수업을 듣는 우리 아이의 모습. 

선생님의 말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선생님께 눈을 떼지 않고 손과 발을 열심히 움직이는 아이.

함께 수업 듣는 친구들이 어색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무용을 함께 한다는 마음에 머쩍게라도 웃어주는 얼굴.

수업 끝나고 집에 가기 싫다고 1시간을 더 있던 시간.

고학년 언니들의 수업을 지켜보며 열심히 따라하는 열정.

집에와서 수업 중 배운 자세를 뽐내는 자신감.


그렇게 나는 매주 화요일 아이와 함께 4시 40분 수업을 다녔는데, 첫 한 달은 그럭저럭 열정을 가지고 임했다.

수업 전에 한국무용 전공했을 때 전망은 어떤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일찍가서 스트레칭을 좀 더 한다거나 수업장소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수업 중에 나는 열심히 동작을 따라적으며 집에서 복습하기 위한 전략도 짜고,

수업 끝나고는 지치고 배고플 아이를 위해 탄단지로 구성된 도시락도 싸가고,


두 달째되니 수업 시간에는 내 일을 더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화요일마다 낮부터 저녁도시락을 싸야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여보, 나 학원 가기 싫어." 말하는 날도 있었고,

"여보, 학원 그만 다닐거야!" 한 날도 있었더랬다.

아이보다 엄마가 더 먼저 지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10번째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아이가 한국 무용 가기 싫다고 한다.

11번째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도 어김없이 한국 무용 그만하고 싶다고 한다.

집에서 동생과 노는 시간이 더 좋은가?

여름이라 날이 더워서 그런가?

수업 끝나고 배고픈데 도시락이 부실했나?


가기 싫은 학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남편을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디서 들었는데 학원은 최소 6개월은 다녀야 한다는데, 6개월 까지 채우고 그만둘까?"

"하기 싫다는데 6개월이 다 무슨 소용이야?"

"뭘 해도 3개월 하면 하기 싫다고 할 텐데, 좀 더 해보라고 해야할까?"

"힘들어도 계속해야 늘지 않을까?"

"학원 끊는다고 말하는거 못하겠어."

"발레로 바꿔볼까?"

"나도 사실 힘들어."

"어리니까 학원은 쉬고 공연을 보러 다닐까?"

"동생을 할머니께 맡기고 다니는 것도 신경 쓰여."

"학원은 제발로 찾아가는게 학원인 것 같아. 엄마가 데려다주는 건 안 할래."


그렇게 고민하다가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죄송하지만 아이가 힘들어하여 몇 달 쉬어야겠다고 말씀 드리고

지난 화요일 마지막 수업을 다녀왔다.


가기 전에도 아이는 힘들다고 입술을 삐죽 내밀길래,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오늘까지만 하자. 유종의 미를 거두자. 엄마도 힘든데 갔다와보자." 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잠이 들어 정신 못차리는 아이를 안고, 가방을 메고, 찌는 듯한 주차장을 빠져나와 학원으로 향했다.


처음과 같은 미소로 우리아이를 받아주시는 선생님. 감사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까지다 하고 마지막 수업을 보냈고, 나는 50분이 어서 지나기를 기다리며 내 할 일을 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나오자마자 아이가 나에게 하는 말이

"엄마 나 한국무용 계속 다닐거야."

"또 올거야."


선생님은 바로 다음 수업 결제해주시겠다고 하고, 나는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 다음에 결제하기로 했다.

집에가서 남편이랑 이야기해야지 하고 "이제 집에 가자~ 옷 갈아입고 갈래?" 묻는데,

"엄마 나 집에 안갈래, 더 있을래."


아이는 30분 정도 더 머물며 초등학교 6학년 언니의 개인수업 시간을 문 밖에서 지켜보았고,

한국 무용에 대한 열정을 다시 보여주었다.

수업 중 특별히 다른 것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무슨 바람이 든 것일까.

겸사겸사 엄마도 좀 쉬려고 했더니, 쿵짝이 안 맞는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다가

"한국무용 계속 다니고 싶어?"

"몰라"

"엄마 힘들어~ 쉬어~"

"왜?"

"엄마 힘들어~"

했는데...


밤에 갑자기 유치원에서 들은 산도깨비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더니,

노래에 맞춰 그동안 배운 모든 동작들을 엄마아빠 앞에서 선보인다.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양 팔을 앞뒤로 번갈아가며 흔들고,

가슴 앞에 손을 모았다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

다리를 넓게 벌렸다가 오므렸다가.


남편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


"여보, 내가 졌어. 한국무용 보내야지. 그렇지?" 하며 나도 함께 아이의 공연을 감상했다.


그리고 그 동안 학원 라이딩 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수 많은 엄마들...

아이 돌보는 것이 귀찮고 힘들어서 학원으로 돌린다고만 생각했던 지난 날들...

당연히 가정보육 하거나 엄마표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고,

학원 기다리면서 재미있는 책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차에서 기다리더라도 혼자 시간 생기니 얼마나 좋아? 했는데...


시간 맞춰 차 태워 운전하는 것도 에너지.

학원 대기실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가 어려움.

오며가며 엄마들과의 소모적인 대화.

차에 오래 앉아있으면 이제는 무릎이 쑤시는 나이.

아이 간식도 필요하지만 내 간식도 필요한데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나의 양심과 죄의식의 크기


학원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찾아 시간 맞춰 보내는 노력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부모라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고 하지만, 스스로 자란 아이는 참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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