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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삶과 깊어진 마음_흔들림 속에서 마주하는 나

부족한 엄마

by 하서연

아이들 피아노 학원에서 1년 동안 배운 것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빨간색 커튼 앞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아직 서툴지만 자신들이 연습했던 곡들을 무대 위에서 연주했다. '꽃이라도 사갈까?' 싶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다이소 상품권을 준비했다. 발표회가 끝나고 나오는 아이들에게 카톡에 발표회 영상을 올려놨으니 보라고 하며 은근슬쩍 핸드폰을 보도록 유도했다.
"엄마! 이게 뭐야? 다이소 상품권은 안 된다고 하더니 사줬네! 고마워."
아이들은 상품권을 확인하고 방방 뛰며 좋아했다.

저녁은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파스타로 정했다. 치킨 샐러드, 파스타, 스튜, 음료까지 이것저것 주문했더니 8만 원이나 나왔다. 그래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둘째가 나가면서 편의점에서 젤리를 사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주문한 음식도 배불러서 남겼는데 무슨 젤리냐며 안 된다고 했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요즘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방법인데, 젤리 곰을 사이다에 넣어 불린 후 먹으려면 하루 이틀은 지나야 하니 지금 당장 사야 한다고 했다.

남편이 아프고 나서부터 나는 몸을 망가뜨리는 음식에 더 민감해졌다. 특히 밥을 먹고 난 후, 배가 부른데도 더 먹겠다는 건 더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다. 아이는 나를 원망했고, 나는 아이에게 화를 참지 못했다.

"발표회 한다고 미리 다이소 쿠폰도 준비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며 이것저것 주문했는데 뭐라고 안 했잖아. 배불러서 음식도 남겨놓고 무슨 젤리야. 그냥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집에 가면 안 돼? 젤리 때문에 이렇게 싸워야 하니? 다이소 쿠폰도, 외식도 안 하고 젤리나 사주면 됐겠네. 이제부터는 원하는 것만 해줄게. 말하는 것 외에 미리 생각해서 해주는 일은 없을 거야."

둘째는 울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엄마, 미안해. 그런 뜻은 아니었어. 그냥 편의점 있으니까 먹고 싶어서 말한 것뿐이야. 엄마가 해준 거 안 고맙다는 건 절대 아니야."

딸의 사과에도 내 분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엄마가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배부른데, 젤리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니. 그만하라고 계속 말했는데도 떼를 썼잖아. 결국 내가 소리를 질러야 끝이 나지. 그제야 미안하다고 하면, 엄마 마음이 풀리겠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겨울바람보다도 차가웠다. 거실에는 나가기전에 꺼내 놓은 크리스마스트리 용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함께 꾸미며 즐거워했을 텐데, 오늘은 침묵 속에서 트리를 꾸몄다. 트리를 다 꾸미고 조명을 켰지만,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사실 어제도 비슷한 문제로 잠들기 전 대화를 나눴었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자매들의 싸움, 안 된다고 수십 번을 말해도 계속 졸라대는 딸들 때문에 너무 지쳐서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엄마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야. 아침부터 싸우고, 밥 먹다 싸우고, 영화 보러 가는 길에도 싸우고, 돌아오면서 또 싸우고. 그만하라고 말해도 계속 그러면 엄마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낮에 너희들 친구 만난다고 나갔을 때 혼자서 펑펑 울었어. 그러니까 제발 엄마가 그만하자고 하면 그만하자."
아이들은 내 말을 듣고 같이 울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방법을 정했다.

화가 나면 잠시 떨어져 있기
저녁에 모여 속상하거나 화나는 일을 이야기하기
서로 칭찬 한 가지씩 하기
그러나 하루 만에 모든 약속이 깨졌다.

결국 내 감정 조절이 부족했던 탓이라는 걸 안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올라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딸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너무 좁아져 있다. 남편의 병간호, 육아,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이 한꺼번에 쏟아져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굴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가르친 대로 행동 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국 아이들과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오늘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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