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미학

하수구가 별빛으로 빛날 때

by 고갱이

잠이 들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던 날이었다. 평소 나는 눕기만 하면 바로 곯아떨어지는데 어쩌다 한번, 아마 1년에 한두 번쯤, 밤을 꼴딱 새우다시피 한다. 누운 지 십여 분이 지나면서 머릿속이 점점 맑아오고, 나는 직감했다. 아, 오늘이 그 날이구나.


쌀쌀한 밤에 혼자 일어나 있긴 싫어 유튜브에 들어갔다. 눈이 피곤하니 화면은 끄고 소리만 듣기로 했다. 가끔씩 <책, 이게 뭐라고?>라는 방송을 듣는데, 마침 임경선 작가의 출연분이 올라와 있길래 들어보았다. 작가는 '싫어하는 일'에 대해 얘기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습니다."


정말 공감했다. 이 문장은 내가 이십 년 가까이 파 온 질문이기도 했다. 스무 살 때 만난 세상은 나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네가 좋아하는 일이 뭐야?', '네 꿈이 뭐야?' 야단치듯 질문했고, 나는 그 답을 몰랐다. 어느 날인가, 나는 왜 좋아하는 것 하나 없고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꿈 하나 없이 살고 있을까, 정말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인가 같은 자학의 늪에 빠져 중 2 소녀처럼 길거리에서 그만 엉엉... 까지는 아니고 찔끔 울었던 적도 있다. 그로부터 십수 년 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아빠에게 '난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어...)


아무튼 임경선 작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른 채 살고 있으니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대신 싫어하는 일을 꼽아보라고 말했다. 내가 하는 일 중 싫어도 꾹 참고 하는 일을 꼽아서 그 일만 제해보면 뭐 그저 그렇거나, 썩 괜찮거나, 혹은 좋아하지만 좋아하는지 몰랐던만 남을 거라나. 임경선 작가는 요리하기와 술자리에 어쩔 수 없이 앉아있기를 싫어한단다. 그리고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에 꽤 만족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일 중 싫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요리? 가끔이지만 나는 내가 장금이의 후손 같다.

술자리? 술을 주는데 왜 싫담.

청소와 빨래? 할 때는 귀찮고 힘들어도 하고 나면 개운하니 딱히 싫지는 않다.

육아? 10살이 넘은 아이니 이제 육아는 졸업했다고 봐도 된다

아... 길어지는 방학?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방학이 유례없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데, 초반 50~60일 경이 고비였지, 그 후는 상호 간의 배려와 포기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겨우 감내할만한 수준이지만 어느 정도의 사생활도 보장받게 되었다.


다행히 현재의 내가 하는 일 중 딱히 싫어하는 일은 없나 보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를까? 그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이다. 전자는 이미 하고 있고, 후자는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매일을 참고 견디는 삶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쪽에 더 가깝겠다. 그것도 무려 거의 매일.


어머나, 놀랍군요.

서른이 다 될까지 휴일 오후 놀이동산의 길바닥에서 뒹구는 솜사탕같이 살았다. 어느 아이의 손에 들렸다가 바람에 날려 떨어진 솜사탕에는 아이의 부드러운 손가락 자국과 달콤했던 침이 묻어있다. 봄날의 흩날리던 꽃잎이 묻어있다. 흙먼지가 묻어있다. 바닥을 뒹굴던 솜사탕은 내가 아이였는지, 꽃이었는지, 하늘의 구름이었는지, 언제까지 이 상태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빨리 뭔가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무서워서 울었다. 연한 분홍색이 잿빛으로 변할 때쯤 솜사탕은 눈물에 녹아 흙과 물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비록 꿈꾸던 예쁜 모습은 아니지만 무사히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렇게만, 좀 더 욕심내어 happily ever after 라면, 천만다행이지 않겠습니까.


전날이 곡우였는데 새벽까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생각났다. 싸늘한 봄 기온에 기분이 좋았다. 두 시간도 채 눈을 못 붙였지만, 빗물을 잔뜩 머금은 초록 이파리처럼 힘을 좀 내볼까.


불교에서는 청소를 중시한다. 먼지는 곧 번뇌이니, 내 주변을 깨끗이 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번뇌를 지우라 한다. 침대에 더 누워있는 대신 청소를 시작했다. 화장실, 거실, 방에 이어 부엌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싱크대 거름망을 닦고 안 쓰는 칫솔로 하수구 구석구석 락스 칠하며 닦는데 문득 "아, 거기는 더러운 게 당연한데 뭐하러 닦아?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라."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시어머니인지, 친정어머니인지... 두 분 다일 수도 있고.


어머니, 이 물 때가 저의 번뇌인가 봅니다. 이 하수구가 별빛이 되는 순간까지 닦아볼까 합니다.


나무하기 3년, 물 긷기 3년, 불때기 3년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에 피식 웃는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나를 향한 세상의 평가를 관성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비판과 비교를 그림자처럼 질질 끌고 다니며 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구름이 되지 못하고 꽃이 되지 못한 이유를 궁금해했다. 어리석은 나의 질문은 결론을 내지 못해 포기할 뻔했는데, 집안 살림 10년 만에 답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흙이 되고 물이 되었다. 앞으로 새싹을 틔우는 기름진 흙이, 윤슬이 반짝이는 맑은 물이 되면 좋겠다. 사위가 밝아오며 봄비가 그쳤다. 세상은 여전히 촉촉하고 그곳에서 나는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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