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가득한 월요일 아침,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다. 의사 입에서 대상포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욱하는 짜증이 치솟았다. 내가 미취학 아동을 둘 혹은 셋쯤 키워내고 있는 아기 엄마라거나 밥벌이를 위해 종일 구두굽이 닳도록 뛰어다니는 직장인 혹은 <한국기행>이나 <인간극장>같은 프로그램에 종종 출연하는 한복입은 종갓집 며느리라면 얼씨구나, 딱 걸렸네, 이것봐라,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고 큰 소리한번 쳐 볼 일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외동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의 하루 노동량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의사로부터 '요즘 많이 힘드신가 봐요.'라는 말을 들을 만큼은 아니지 않나. 인간관계가 좁아 딱히 주변에 보깨는 사람도 없다. 아무리 따져봐도 대한민국 40대 평균 노동량과 비교해보건데 정신적 육체적 모두 한가로운 편인 것 같다. ('인 것 같다'인 이유는 대한민국 40대 평균 노동량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자꾸 내 몸뚱이는 삑삑 경고음을 내는 걸까. 무조건 잘 먹고 잠 많이 자고 푹 쉬라는 의사에게 '저도 염치라는 게 있습니다. 이 이상 어떻게 더 잡니까?'라고 물을 뻔했다. 2주치 항바이러스 약은 비싸기까지 했다.
툴툴거리며 집에 돌아와 깜박 잠이 들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정색하도록 억울했지만 어쨌든 병을 진단받고 나니 왠지 피곤한 것 같고 기운 없는 것 같고 누워야 할 것 같고... 만사가 귀찮았다. 딱 10분만 누워있야지 했는데 눈을 떠보니 이미 복숭아의 하교 시간이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 놀이터에 가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뒹굴거리던 딸이 심심하다고 징징거린다.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오면 좋을 텐데. 우리 때는 아무 친구 집에 가서 하염없이 놀다 오고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은 엄마끼리 먼저 약속 잡고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노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게 아니라해도 모두 학원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여있다.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만날 수 없다. 또래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할 수 없이 또 만만한 내가 친구로 변신, 미술학원 놀이를 했다.
미술 도구를 다 꺼내놓고 원하는 재료로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 오늘은 각자 두툼한 그림용 종이 위에 수채화를 그리기로 했다. 내가 책장 위에 있는 아이비 화분을 그리겠다고 하자 따라쟁이 복숭아는 얼마 전 싹이 튼 아보카도 화분을 그리겠단다. 함께 뭐라 뭐라 수다도 떨고 노래도 부르며 20~30분 그렸다. 이 아이가 다섯 살쯤이었을 때가 생각났다. 당시 하루는 지금보다 더 길고 지루했다. 그저 오늘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랬던 날들이었다. 그 날도 시간 보낼 요량으로 만다라 색칠을 시작했다. 머리를 맞대고 앉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는 오직 유려한 만다라 곡선만을 따라가는 데에 빠져들었다. 귀에는 오직 종이 위에서 색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렸고, 주홍빛 저녁노을이 거실 안으로 길게 밀고 들어와 아기의 머리카락과 목을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그 시간이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확실히 수채화를 그리면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수채화 역시 '괜찮다'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색이 번져도 괜찮아요,
너무 연하거나 진하게 나와도 괜찮아요,
색을 잘못 써도 괜찮아요.
아침에 나에게 치솟았던 화나 짜증스러웠던 약봉지들도, 복숭아의 징징댐도 모두 받아들이게 됐다. 해녀들의 숨 길이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해녀학교에서는 '자기 숨의 길이'를 가르친다고 한다. 이는, '내가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안다'라는 것과 엄연히 다른 뜻이다.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안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부정적으로 정의하고, 남들과 비교하여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나의 숨 길이를 안다'는 말은 비교와 극복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내가 그동안 몰랐던 나를 안다는 데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숨 길이를 알면 내가 나를 돌볼 수 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다. 이기려고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 자기를 파괴하지 않을 수 있다.
일상에서 내 숨 길이는 남들에 비해 짧은 편인 것이다, 그러니 이 숨 길이에 맞춰 생활하면 된다, 욕심내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 된다, 나를 더 몰아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만하면 충분히 괜찮다. 옛 말에 건들건들하고 비리비리한 사람이 오래 산다 하지 않았던가. 나는 120살까지 살려고 이런가 보다. 가늘고 길게 살아야지. 앞으로 80년이나 남았다. 그럼 그때까지 언젠가는 전업주부의 대상포진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비 이파리들을 마저 색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