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글로벌 거지 부부'라는 유튜버를 알게 되었다. 미니멀리스트인 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부인이 돈 버는 족족 여행하며 사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영상을 몇 번 보다가 책까지 읽게 되었다.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가 대만을 도보로 여행하던 중 신발이 망가졌다. 아직 600km나 남아있어 제대로 된 기능성 신발을 사고 싶었는데, 주변은 기능성은커녕 아예 신발을 파는 가게조차 없는 깡촌 마을이었다. 난감해하던 중 머릿속에 원로 여행자의 명언이 떠오르더란다.
"옛날 사람들은 발힘으로 걸었지만, 현대인은 신발에 의지해 걸으려 한다."
<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p.172>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마친 작가는 철물점에서 파는 장화를 구입하여 여행을 계속했고, 한 달 넘도록 발에는 아무 문제 없었다. 여행 간간이 무료 온천을 이용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들은 수영복이 아닌 속옷... 혹은 그조차 안 입은 것처럼 보였다. 아마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수영복 같은 것은 갖고 다니지 않은 것 같다.
이 부부의 생활방식이나 여행 스타일이 부럽지는 않다.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본인들도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딱히 자아성찰을 이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힘들어 죽을 것 같으니 당장 그만 둘 핑계가 어디 없을까만 생각하며 매일 30~40km씩 걸을 뿐이었다. 여행 중에 드라마틱한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은 오늘 같을 그런 단순 행위였다. 그저 계속 걷기위해 동정을 동경이라 착각하고 그 순간에 감사하며 위로받기위해 노력했다. 70일 동안 걸은 이들에게 일어난 가장 감동적인 일은 중간에 수레로 사용하기 위해 망가진 자전거를 공짜로 얻었었는데, 부인이 밤마다 체인을 청소하고 관리했더니, 여행 마지막 날 기적처럼 톱니가 맞물려 굴러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한국에 갖고 올 수 있었다.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이 접이식 자전거는 브롬톤 보급형인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더 정성껏 닦았을지도;)
별일 없이 사는 나도 70일에 한 번쯤은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일이 생길 것이니, 이렇게 이상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매일도 지루하긴 마찬가지란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생활 반경이 넓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이 하루 종일 반경 2km를 벗어나지 않고 사는 나의 짐의 1/10도 채 안 된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대가가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넓은 빈 공간'과 교환되는 것은 단순히 '많은 물건들'이 아니다. 한 사람의 오롯한 '노동'과 공간을 공유하는 가족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교환되는 것이다. '미니멀리스트가 되면서 더 부지런해졌어요.'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솔직히 나는 이 말을 한 사람들 중 몇이나 일 년 이상 미니멀리스트로 사는지 모르겠다. 노동(=돈, 시간)과 미니멀리즘 지속기간 사이 상관관계에 대한 통계표를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렇게 적은 물건으로 사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외식과 약간의... 더러움. 이들은 외식을 즐기고 빨래를 비롯한 씻기를 잘 하지 않는다. 먹기와 씻기만 안 해도 우리에게는 정말 많은 물건과 노동에너지가 필요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복숭아의 폼클렌징이 다 떨어져간다는 말에 핸드폰을 붙들고 앉아있었다. 혹시 여드름에 더 좋은 효과가 있는 클렌징은 없을까, 성분이 더 좋은 클렌징은 없을까 서칭을 하다 결국 기존에 쓰던 것과 같은 것을 주문하고 하는 김에 샴푸 같은 생필품을 좀 더 주문했다. 쇼핑몰에 접속했으니 이런저런 물건을 구경하며 장바구니 놀이를 하는 데 한두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후 택배사 파업 때문인지 배송 지연을 이유로 취소당했다. 2022년 2월 4일 오전 시간이 그냥 증발해버린 기분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한 일없이 어영부영 시간이 또, 가버렸다. 한없이 우울해지는 타이밍이었지만 마침 밥때가 되었다고 꾸역꾸역 끼니를 만들어 먹었다. 소화가 안됐다.
이 타이밍에, 샴푸도 클렌징도 심지어 치약조차 안 쓴다는 이 사람들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들의 삶은 어지간하면 없고 안 하는, 無로 채워진 삶인건가.
"이곳의 사람들은 어떤 신념 없이 그저 내일을 믿었다. 그들은 이 마을의 끝을 상상하지 않았다. 한 달 뒤의 창고 보수 일정을, 다음 해 작물 재배 계획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지구 끝의 온실, p.299>
어제 읽은 <지구 끝의 온실>에 나온 문장이 떠올랐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현관 앞에서 문득 올해가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 작년과 다름없이 여전히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매일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집안일을 조금 하고 점심을 먹고 책을 읽다가 저녁을 먹는 단순한 삶을 살고 있는데, 문득 이것이 참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늘도 나는 집안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휴지통을 비우고 쓰레기를 양손에 든 채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먹거리를 하나 가득 사들고 돌아왔다. 내일은 또다시 이것들이 남긴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겠지. 나는 뭐, 이 집에 쓰레기를 만들고 처리하는 존재인 걸까, 설마 정말 그런 걸까,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침에 밥 먹고 한 일의 결과가 쓰레기 치운 것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혹은 해야 하는 걸까... 하다 보니 산다는 건 망가진 창문을 고치고 당장 먹을 채소를 재배하는 것이라는, 저 문장이 떠올랐다. 달리 이보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 있겠는가, 대단해 보일지라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자고 먹고 싸거나 혹은 자고 먹고 싸기 위한 돈을 버는 일일 것이다. 글로벌 거지 부부는 여기에 걷기를 추가한 사람들이고, 나는 자고 먹고 싸는 데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을 한다. 이제 집에 올라가 장본 것을 정리하고 저녁 준비를 해서 먹고 치우면 내일이 올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시간이 있는 삶을 살고 있으매 새삼 감사했다. 만약 나를 괴롭히는 어떤 것(분명 돈이나 건강일 것이다)이 있다면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것이고 그 시간에 나는 감사가 아닌 원망이나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살고 있는 시간을 보냄에 괴롭지 않아 다행이다. 그 복받은 시간을 필요 없는 욕심으로 채우려 들지 말아야겠다. 스스로 가치를 느낄만한 것으로 채울 능력이 없다면 당장의 끼니를 때우는 앞가림으로 채우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아니면 저들 부부처럼 텅 비우고 걷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