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시 한 상자 보냈으니까 몇 개는 익혀서 홍시로 먹고 얼려놓기도 해. 나머진 말리고. 너네 집에 건조기 아직 있지? 절대 집안에서 널어놓고 말리지 마라, 그러면 감이 마르는 게 아니라 익어 버려 다 흐물흐물해진다. 아파트에서는 못 말려. 꼭 기계에 하루 저녁 넣고 말려야 해."
전날 정확한 집주소를 대라고 문자를 보내온 어머니는 잠시 후 전화를 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그리고 혹시라도 택배비 내라 하면 절대 내지 말고. 기사가 착불이라 하면 보낸 사람들한테 가 받으라 해."
또 택배비로 실랑이했나 보다. 어머니는 택배비에 어지간히 민감하다. 감 한 상자의 택배비 정도는, 그러니까 4-5천 원쯤은, 에누리 혹은 덤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판매가의 10% 정도에 해당하는 택배비는 농수산물 시장에서는 크다면 큰 금액인데도.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현관 앞에 대봉 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나는 질질 끌어 겨우 현관 안에 들여놓고 열어보았다. 50개 정도 되는 대봉 중 한 개만 깨져있을 뿐, 나머지는 상태가 괜찮았다. 다행이다. 만약 상태가 안 좋다면, 그 사실을 안 어머니는 분명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전라남도 보성시 벌교읍 벌교리 모처의 감농장 주인에게 전화해 다시 보내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것이기에, 이를 막기 위해서 나는 거짓말을 해야 했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한눈에도 색이 깊어진 감은 역시 약간이나마 말랑하다. 그런 감과 더불어 상처가 난 감을 대강 추려내니 열 개 정도 되었다. 이 만큼은 익혀서 홍시로 먹어야지.
남은 감은 흐르는 물에 잘 씻었다. 그리고 창고에서 식품 건조기를 꺼냈다. 이 식품 건조기는 딸이 아기였을 때 유기농 마트에서 말린 사과 열 쪽 남짓 든 봉지 하나에 삼사 천 원씩 하는 것을 보고 주문한 것이다.
내가 말리고 말지...
나는 서너 살짜리 아기와 둘이 앉아 사과나 고구마 같은 것을 잘라 말렸다. 내가 잘라주면 아기가 판에 너는, 어디까지나 분업의 수작업이었다. 아기는 사과 조각으로 돛단배를 만들고 고구마 스틱으로 집을 만들어서 말렸고, 다음날부터 며칠간 맛있게 부숴 먹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우리 집 창고 안 건조기를 소환하신 격이었다. 먼지가 제법 쌓여있을 거라고, 솔직히 꺼내기 전부터 심란했다. 하지만 막상 열어보니 바로 사용해도 될 만큼 깨끗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마 마지막으로 사용했을 때 세척하여 넣어뒀었나 보다.
딸과 TV를 보며 감말랭이 만들기 작업을 시작했다. 이제 아이는 커서 칼질도 제법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감 껍질을 깎아주면 딸이 적당한 크기로 잘라 씨를 빼고 건조기 판에 차곡차곡 널었다. 6단 건조기에 19개의 감이 들어갔고, 12시간 동안 말렸다. 밤새 집안에는 부우웅하며 감이 말라 가는 소리로 가득했다.
다음 날 오후, 다 마른 감말랭이는 소분하여 냉동실에 저장하고 다시 감을 깎았다. 이번에는 남은 스무 개를 전부 널었다. 나름 요령도 생겨 좀 두껍게 잘린 조각은 하단에 집중 배치하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또 전화가 왔다. 감을 어찌하고 있는지 궁금하신 것이다.
"응, 잘했네. 그렇게 말려서 겨우내 두고 간식으로 먹어. 그런데 택배비는 어찌 됐냐?"
현관 앞에 두고 가서 따로 택배비로 왈가왈부할 필요 없었다 하니, 어머니는 몹시 기뻐하셨다. 얼마 전에 전화로 물어볼 때는 5만 원이라더니 이번에 전화하니까 6만 원이라 해서 왜 가격이 전화할 때마다 달라지냐고, 거기다 6만 원이나 하는데 왜 택배비까지 내야 하냐고 실랑이를 한참 하셨단다.
"무배 몰라? 무배? 인터넷에서 뭐 살 때 만원만 해도 공짜로 배달해주는 거 아냐?"
어머니는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 사람이라고 우습게 본 것 같다고 찜찜해하셨다. 서울 사람 만만하게 본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초가을보단 물량이 다 소진돼 갈 시기이기도 해서 값이 오른 것이 아닌가 싶소, 택배비야 개인 농삿물 보내는 것에 무배 같은 것은 서비스는 있을 리 만무하고... 내가 매년 봄이면 배달해 먹는 3만 원짜리 경주 토마토도 항상 택배비는 별도로 내는걸요.
"그르냐..." 내 말에 어머니는 공감받지 못한 값 깎기가 억울하여 더 깝깝해지셨을지, 세상 물정을 모를 만큼 늙었다는 사실에 슬퍼지셨을지. 집안에 편히 앉아 대봉 한 상자를 얻어 억은 자식 입장에서 말을 너무 차갑게 했나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주말에 홍시와 감말랭이를 들고 친정에 가봐야겠다.
분리수거 쓰레기를 정리하다가 대봉 박스에 붙은 송장에 적힌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내년 가을이 시작되면 나는 직접 전화하여 감을 주문할 것이다. 뒤에서 서울 호구 취급을 받더라도 택배비도 다 내야겠다. 그리고 또 40개는 말리고 10개는 홍시로 만들어야지. 어머니가 값을 깎으려고 애쓰며 주문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그렇게 해서 갖다 드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울 내년 감을 위해서 나는 식품건조기 6판과 실리콘 패드 6장 세척부터 해야......
정말이지,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