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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이 Jul 30. 2023

도로 1.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동차 창문을 열고 달리는 이유 


이탈리아는 20년 전 배낭여행 도중 2-3일간 들렀던 경험이 전부인 나라다. 당시 유레일패스를 이용하여 기차 타고 로마 인 베니스 인웃을 했으니, 공항도 자동차가 돌아다니는 도로도 이번에 처음 경험했다.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오는 도시답게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의 규모는 꽤 컸다. 군더더기 없이 비행기 이착륙과 이에 따른 입출국 처리 기능에만 중점을 둔, 실용적인 공항이었다.


비행기는 연착되었다. 무슨 이유인지 한시간 늦게 출발한 탓에 도착 시간도 늦어졌다. 우리는 공항에서 숙소까지 데려다줄 현지 택시 서비스를 예약했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렀다. 택시 기사가 기다리다 가버렸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화장실도 양치도 패스하고 뛰었다. 14시간의 비행은 인간의 위생 본능에 경고음을 울리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한 시간 정도는 더 참을 수 있다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택시 예약도 약속은 약속이고, 기사는 운전을 해서 번 42유로를 회사와 나눠갖기 위해 일요일 오후에 공항에 나와있는데, 내가 약속을 지켜야 기사는 계획대로 일을 마치고 다시 집에 가서 쉬던가 계획했던 다른 일을 더하던가 할 것이다. 게다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다른 팀과 합승 가능성도 있었다.


공항 출구에서 이름표를 들고 있는 기사를 만났다. 배가 한껏 나온 60대 아저씨는 예상대로 우리에게 합승할 것이니 다른 팀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알겠다고 했다. 서두른 것이 무색하게 30분을 기다렸다. 연착에 러시아 전쟁 때문에 로마까지 오는 비행거리가 더 길어져 여기까지 열네 시간이 걸렸다. 비행기에서 내린 몸은 물먹은 솜보다 무겁고 피곤해 합승 팀을 한 번 노려본 뒤 말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택시는 9인승 승합차였는데 다행히 창가 쪽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저녁 8시가 다 돼가는 시간에도 사위가 대낮처럼 밝은 유럽이었다. 악명 높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운전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했다. 날이 더운 탓인지 운전자들은 모두 창문을 열고 달린다. 대부분 세단인 우리나라와 달리 해치백이 많이 보였다. 소박하고 작은 자동차들은 승차감이나 하차감 같은 감정의 만족보다 경제적 실용성에 중점을 두었음이 한눈에 보였다. 언젠가 프랑스는 범퍼를 소모품으로 보기 때문에 골목 일렬 주차를 다닥다닥 붙여서 한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차들 상태를 보니 이탈리아도 그와 비슷한 것 같았다.


경차를 타고 에어컨을 키는 대신 창문을 열고 달리는 이탈리아 운전자들. 에어컨을 트는 게 연비가 더 좋다던데 왜 열고 달릴까. 왼팔을 걸치기 위해서다. 이들의 운전하는 모습은 하나같이 똑같다. 선글라스를 끼고 왼팔은 창가에 걸친다. 그리고 그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다. 오른손은 핸들을 잡고 있거나, 안 잡고 있거나. 왼손에 든 폰은 스피커폰 모드로 해놓고 전화 통화를 한다. 오른손은 대화하는데 필요한 감정 표현을 하느라 바빠 핸들을 잡을 수 없다.


오호... 대단한걸.


물론 왼손에 폰을 들고 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때 왼손은 상대편 운전자에게 일명 '만두 날리기'라는 욕을 하기 위해 준비 모드 상태이다. 그래도 이 경우 오른손은 핸들을 잡고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랄까.


며칠 후, 이탈리아는 남부와 북부의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탓에 손으로 하는 언어가 발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의 손짓 몇 가지와 칭찬인지 욕인지 경고인지 그 의미를 배웠다.


방향표시등는 뉘 집 애 이름인가 차선 변경은 칼치기가 기본인 이탈리아 고속도로. 깜빡이와 에어컨대신 욕을 장착한 흙탕물 범벅의 차들 사이로 내가 탄 택시가 지나간다. 여행와서 좋다고 그저 해맑게 웃는 외국 관광객들을 곱게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 나의 택시 기사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천천히 운전했다. 하지만 우리가 내리는 동시에 그는 창문을 내릴 것이다.


이틀 후 렌터카 운전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자전거에 대한 이들의 진심이었다.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며 칼치기를 하는 자동차 옆으로 에너지 젤을 빨아먹는 자전거가 나란히 달리는 상황 같은 것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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