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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이 Jul 30. 2023

도로 3.

자전거 라이더의 마음으로 살아보기

이탈리아의 도로를 얘기하는 데에 자전거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꼴랑 일주일 여행하고 온 주제에 뭘 다 아는 척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나는 알 수 있었다. 자전거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정과 사랑을. 뚜르드프랑스 우승자는 유럽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스키장 주변처럼 알프스 주변에는 렌털샵이 많다. 당연히 스키를 렌털해 주고 강습해 주는 샵들인데, 여름에는 문을 닫아 적막강산이 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들의 여름은 겨울만큼 분주하다. 자전거 대여로 업종을 변환하기 때문이다.


동네 렌털 샵 앞에 서서 가만 들여다보니 MTB 자전거가 대부분이었다. 깨끗하게 세척하고 수리한 자전거들 틈에서 주인은 손님의 키에 맞게 조율하고 있었다. 안전이 중요한 서비스이니 주인의 표정은 진지하고, 들뜬 손님들은 싱글벙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물론 기차에서 자기 자전거를  팩에 싣고 온 사람도 봤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아닐까, 추측해 봤다. 인스브루크에서 돌로미티까지 차로 1시간 남짓이면 온다 하니 그쪽에서 자전거를 싣고 와서, 타고,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루트일 듯하다.


이제 쫄쫄이를 입고 자전거를 잡은 사람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꿀만 빨려고 하는 자와 꿀도 빨 계획인 자.


꿀만 빨려는 자들은 자전거를 싣고 케이블카에 오른다. 자전거나 개와 함께 케이블카를 탈 경우 1인 요금 외 5유로가 추가되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나는 세체다에 오르는 케이블카 안에서 이들을 만났다. 쫄쫄이가 익숙한지 편해 보이기는 하는데 어째 배가 조금 볼록한 것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다운 힐이라 하지만 이 높은 데서 출발하려면 보통 자전거 실력 갖고는 어려울 텐데, 저렇게 웃는 얼굴로 신나 있는 것 보면 분명 한두 번 타본 솜씨가 아닐 텐데, 그런데 어째서 배가 저렇게 볼록할까, 평소에도 꿀만 빠는 자들이기 때문인가....


자전거를 이고 지고 탄 이들 중 일부는 혼자 여행 온 여자를 꼬시는 것으로, 일부는 산장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각자의 라이딩을 시작한다. 셀카와 단체 사진을 잔뜩 찍는 것을 끝으로 휙, 휙, 각자의 자전거에 올라타 꿀 빨기 시작. 울퉁불퉁한 산길의 내리막 자전거 라이딩은 남자들의 로망인지 남편은 한없이 부러운 눈이었다. 


꿀도 빨 계획인 자들은 이들과 많이 다르다. 이들도 케이블카 주차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케이블카 입구에 줄을 설 때, 이들은 자전거에 오른다. 그리고 해발 2500m의 봉우리를 향해 툭, 툭,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물과 에너지바로 등허리는 불룩불룩 한데 반해 배는 아주 납작한, 가느다란 몸매의 소유자들이다.


 내가 케이블카를 타고 20여 분에 걸쳐 올라가는 산길을 이들은 몇 시간 동안 자전거로 올라가고 (어쩌면 중간 지점에서 밤을 맞아 잘지도 모른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올 것이다. 그렇게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달콤할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수줍은 한국 아줌마는 산장 한쪽 구석에서 와인을 마시며 속으로 이들에게 무한 파이팅을 보냈다.


꿀만 빨건, 꿀도 빨건, 당신의 화려한 젊음에 건배.


... 를 보내던 차,


으응?

눈을 부비부비.... 으응?


산장 문을 열고 들어와 숨을 헐떡이며 벗는 헬멧 아래로 반백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여자야???

얼굴이고 팔이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초로의 여자다.


"대단하네..." 그러니까, 평소에 남들 보고 어지간해서는 대단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남편의 입에서 또 한 번 나온 말이다. 나는 남편인지 남친인지 파트너와 웃으며 대화하는 여자를 넋 놓고 바라봤다. 여자의 두 눈이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호수의 윤슬도 이렇게까지 예쁘진 않겠다. 자꾸 쳐다보니 여자가 기분 나빠하는 것 같아 눈을 돌렸다. 급격히 의기소침해졌다. 저 여자는 사람이고 나는 아줌마인 것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산장을 나왔다.


아줌마인 나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자동차를 탄 채 찌지지지직 길을 두려워하며 이동하는데, 사람인 저 여자는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달려왔다. 찌지지지직 길은 커브가 심해 제한 속도가 30km, 50km 수준이다. 문제는 아무도 그 속도를 지키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한 차선 내에서 커브를 돌지 못하는 버스나 지킬까(이들은 커브길에서 맞은편 차선을 차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늦춘다), 오토바이나 승용차는 그저 직선코스인 양 레이서 빙의되어 쌩쌩 달린다. 이 정도 급 커브길이면 시야에 따라 맞은편 차선의 차도 뒤에서 오는 차도 안 보이는 경우가 잦다. 게다가 우측은 난간이 간간이 끊어진 낭떠러지.


사람들은 그 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 있는 단체 라이딩도 아니다. 혼자 혹은 둘이 전부다. (하긴 이런 라이딩을 하자 했을 때 주변에 손들어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어디서나 도라이는 외로운 법.) 그들은 한 손으로 물을 마시고 에너지 젤도 빤다. 그리고 간간이 뒤를 보며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챙기며 묵묵히 도로를 달린다. 백미러 뒤로 점이 되어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저들은 사람이고 나는 자동차라는 생각이, 한 번 더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차를 운전해서 외출을 했는데, 주차가 난감한 상황이었다. 가게 직원은 건물 뒤로 가서 직접 기계식 주차를 하란다. 기계식 주차가 뭔지 모르는 나는 딱지를 감수하고 불법 주차를 해버릴까, 갈등하며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 문득, 이 라이더들이 떠올랐다. 그런 길을 맨몸으로 달리는 사람도 있는데, 고작 이런 걸 겁낸다는 건 좀 민망하지 않습니까.


나는 파이팅을 외치며 용기를 끌어모아 기계식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설명서를 읽어봤다. 기계식 주차라는 건 자동차 엘리베이터였다. 내려가기 버튼을 누르니 입구가 열렸다. 나는 차를 운전하여 엘리베이터에 탔고, 시키는 대로 엔진을 껐고, 엔진을 끄니 창문이 내려가지 않아 지하 2층 버튼을 누를 수 없었고, 다시 엔진을 켰고, 경고음이 울렸고, 얼른 창문을 열어 지하 2층 버튼을 누르고 창문을 닫고 엔진을 껐다. 내 차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벽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문이 열리자 눈앞에 지하주차장이 펼쳐졌다. 


나는 호기로운 미소를 지으며 주차를 했는데, 이제 어떻게 내가 올라가지? 설마 저 자동차 엘리베이터를 사람인 내가 타야 하는 건가? 난 이제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되었는데?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니 다행히 사람용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왔다. 출차를 할 때는 복숭아와 함께 내려왔다. 난생처음 자동차 엘리베이터를 타 본 복숭아는 무섭다고 꽥꽥. 젊은 애가 뭐 이 정도로 무섭다고 하니, 엄마는 재밌는데. 호호...


산장에서 봤던 여자의 눈빛이 다시 생각났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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