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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이 Jul 30. 2023

로마

체감온도 39도의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 


이탈리아 여행을 처음 마음먹게 된 계기는 복숭아의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친구가 큰 아이의 졸업을 기념하여 유럽여행을 계획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었었다. 이제는 학교 때문에 가기 힘들어졌다며 아직 갈 수 있을 때 가라고 말해준 것이 결정타였다. 나는 6학년 겨울방학 동안 복숭아와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종단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복숭아가 이탈리아를 콕 집었다.


"이탈리아 가서 뭐 하게?"


바티칸이랑 콜로세움이랑 피사의 사탑을 보고 싶어. 폼페이도.

바티칸, 콜로세움, 피사, 폼페이. 전부 대학교 때 배낭여행으로 갔던 곳이다. 그런 데는 한 달 동안 배낭 메고 다니면서 찍고 찍고 다니는 것이라 해봤지만 막무가내다. 무조건 이탈리아만 가고 싶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이탈리아 여행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1년 후 그 여행을 실현했다.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긴 시간 준비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르긴 했다.)


계획을 세우다 보니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나도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이탈리아의 알프스가 보고 싶었다. 여행 계획 초안에는 베니스에서 당일치기로 여행사를 따라 돌로미티에 다녀오는 코스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꽤나 이기적이었던 모양이다. 이탈리아의 알프스, 돌로미티를 알면 알수록 일정은 점점 늘어났다. 제일 먼저 폼페이가 빠지고 그다음 피사도 은근슬쩍 뺐다. 앞으로 너는 가볼 날이 새털같이 많지만 나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가 복숭아의 반발에 대한 무기였다.


바티칸과 콜로세움, 달랑 두 개 남았다. 이곳의 일정 잡기가 마지막까지 골치였다. 우리가 로마에 머무는 날은 도착한 날 포함해서 2박뿐이다. 보통 하루에 한 개의 일정을 소화하는데, 우리는 둘 다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숙소를 콜로세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잡았다. 로마에 도착한 날, 콜로세움 야경을 보며 파이팅을 외쳤다. 내일 일정을 무사히 다 소화할 수 있기를.


한낮 기온 36도의 로마 아침이 밝았다. 바티칸은 여행사의 투어 상품을 예약했다. 바티칸 박물관 내에 작품이 워낙 방대한 데다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어 가이드가 필요했다. 가이드에게 6시 50분까지 바티칸 지하철역 앞으로 모이라고 연락이 왔다. 생수와 양산을 꼭 챙기세요.


바티칸 담벼락. 이 벽을 넘기 위해  3시간 넘게 기다렸다.


7시에 바티칸 담벼락에 줄을 섰고, 10시 반에 입장할 수 있었다. 가이드 말이,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면 한국 사람들에게도 서양인의 땀 냄새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란다. 가이드는 한국에 있을 때 에버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에버랜드와 바티칸을 비교해 보면, 


에버랜드에 3만 명이 온 날 T 익스프레스 등 인기 놀이 기구 3대의 대기 시간이 180분을 넘어가요. 그런데 바티칸은 에버랜드의 1/12 면적에 하루 관광객 5만 명이 오고 있습니다.

에버랜드에 5만 명이 오면 모든 어트랙션 대기 줄의 끝과 끝이 만난다나? 땅바닥에 앉아 가이드의 강의를 들었다. 미켈란젤로의 서사를 어찌나 재미있게 얘기해 주던지 기다리는 3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입장 후 사람들에게 휩쓸려 떠밀려 다니다 보니 4시간 투어도 금방 끝났다. 그림, 뭐 그거 봐도 뭔지 잘 모르겠네 는 20년 전과 마찬가지였지만,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그 역동적인 입체감에 또 봐도 감동적이었다. 가이드가 알려준 종교화 보는 팁 몇 개도 역시 흥미로웠다. 2시 반에 투어가 끝나자 우리는 곧장 성 베드로 대성당에 피에타 상을 보러 갔다. 이상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눈앞의 피에타를 보자마자 눈물이 글썽 고이고 목이 메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어째 먼지가 쌓인 채로 째깐해져서 저기 멀리 구석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루브르 모나리자 같다. 누군가 망치로 내리치는 테러를 저질렀다더니, 그 뒤로 저렇게 갇혀버린 걸까.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그 위에 예약제로 바뀌면서 입장료를 받기 시작해 일정에서 제외시킨 판테온과 똑같은 원형 돔 천장이 있어 오래도록 올려다봤다. 대리 만족을 할 수 있었다.




오후 3시, 집에서 나온 지 9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더웠다. 배도 안고팠다. 그래도 남편이 로마에 왔으니 3대 젤라또와 티라미수 케이크를 먹어야 한다며 좀비가 된 여자 둘을 끌고 <Old Bridge>라는 젤라또 가게로 갔다.


얼마짜리 줄까요?

Two euros with a cup.

무슨 맛?

strawberry...

그리고?

and riso.

쌀 맛은 없어요.

umm strawberry and pistachio... please.

하나 더?


가만 보자... 여기가 이탈리아 아닌가. 지금 이탈리아 사람은 한국말을 하고 한국 사람은 영어를 하고...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멍한 상태로 젤라또를 받아 들고 나왔다. 말없이 퍼먹다가 옆에 있는 남편과 복숭아에게 아까 직원이 한국말을 한 게 맞냐고 물었다. 직원 둘 중 한 사람이 그렇게 한국말을 했다 한다. 대단하다.... 대한민국.


젤라또로 기운을 차려 <Pompi>라는 티라미수 가게에 가서 티라미수 세 조각을 포장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서 1.2리터 생수 세 병을 사서 한 병을 그 자리에서 다 마셔버렸다. 기진맥진 손가락 하나 들 힘이 없어 티라미수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잠들었다. 콜로세움 예약은 5시 반이었다.


"옛날에는 이런 거 예약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온다 하니 어쩔 수 없지 뭐..."


하나마나하는 말을 구시렁거리며 예약시간에 맞춰 다시 집을 나섰다. 어제 야경 보러 갈 때 만났던 고양이가 그늘에 배 깔고 드러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다. 네가 이 구역의 위너다.


쾌걸 조로 고양이


서머타임 때문에 유럽의 낮은 10시까지 계속된다. 그 말은 늦게까지 돌아다니기 좋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늦게까지 덥다는 뜻도 된다. 6시, 콜로세움 안으로 장렬한 태양빛이 내리쬐었다. 그래도 복숭아는 노래 부르던 장소에 와봐서 좋은지 신났다. 젊어서 집에서 쉬는 동안 컨디션을 빨리 회복했기도 했고. 장단 맞춰 입으로는 신기하다, 대단하다... 하면서도 내 눈은 자꾸 그늘진 구석으로만 향했는데, 거기마다마다마다.... 사람들이 넋 나간 얼굴로 앉아있었다.


7월 오후 6시 콜로세움


콜로세움 티켓은 그 옆의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을 묶어서 세트 판매한다. 돈이 아까우니까 포로 로마노로 향했다. 포로 로마노는 서울로 치면 옛날 종로거리 같은 곳이다. 흔적이 제법 남아있어 자세히 보면 오밀조밀 재미있을 것 같은데... 뜨겁다. 길가의 가로수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너는 참 좋겠다, 이렇게 작고 가볍고 바삭하게 생겨서 이런 바람에도 시원할 수 있구나...


로마에서 본 것 중 가장 예쁘고 감동적이었던 올리브나무


  

자세히 보니 올리브나무다. 맞다. 여기는 이탈리아지.

살랑이는 올리브 나무를 보며 결국 층계에 주저앉았다. 7시 10분이었다.


"아이고, 나는 도저히 더 이상 못다니것네. 여보가 복숭아 데리고 한 바퀴 돌고 오시게."


어차피 8시에 식당을 예약해두기도 해서 그만 보고 버스를 타러 나왔다. 구글 맵에는 포로 로마노에서 나보나 광장의 식당까지 도어 투 도어로 20분이면 간다고 나와있는데, 50분이 넘게 걸렸다. 어떤 사람이 비가 오는 날 버스가 한 시간이 넘도록 안 와서 화가 났단다. 맞은편에 같은 번호 버스가 도착한 것을 보고, 그 비를 맞으며 기어코 뛰어 건너가 애꿎은 운전기사에게 만두 수십 개를 날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만큼 이탈리아에서는 대중교통 특히 버스는 시간 맞춰 이용하기가 힘들다는 뜻이었고, 아아, 이게 그런 상황인가 보구나...


그래도 곡기가 들어가니 다시 기운이 났다. 해도 져서 더 이상 뜨겁지도 않았다. 우리는 나보나 광장에서 트레비 분수까지, 거기서 다시 콜로세움까지 걸으며 로마의 야경을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26,000보를 기록했다. 한국에 돌아온 다음 날, 로마 기온이 41도가 넘었다는 기사가 떴다. 36도만 돼도 힘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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