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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이 Sep 05. 2023

프루스트 방식으로 세상 보기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

봄이의 귀는 삼각형 모양으로 쫑긋 서있는데 그 꼭짓점에 솜털이 아주 조금 나있다. 몇 가닥의 솜털은 적과 마주쳤을 때 몸집이 더 커 보이려는 동물적 본능인 것 같아 나는 애달프다. 제멋대로 아무렇게 난 수염은 한없이 사랑스럽다. 사열 횡대 길이 맞춰 쫙쫙 뻗어있기는커녕 들쭉날쭉 부러지고 삐쭉빼쭉한 수염. 눈썹과 더불어 꽤 멋있다. 치열한 전투 현장을 지나오느라 헝클어진 전사처럼 자신만만하다. 봄이의 눈은 크고 동그랗다. 밝은 대낮 한 줄로 그어진 눈동자는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우주의 문이고,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에는 깊은 우물이 된다. 세상의 전부를 품고 있는.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용변을 보고 나온 봄이가 나의 요가 매트 위로 걸어간다. 하얀 발자국은 식탁과 싱크대 위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어진다. 그리고 주방 후드 위로 점프. 여기까지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맞다. 괜찮다. 나의 영역과 너의 영역은 이렇게 섞여도 큰일 나지 않는다. 이 집은 인간과 고양이가 함께 사는 공간이니까, 우리는 싸우지 않는다.  


N'allez pas trop vite.

냉장고 문에 붙여놓은 문구다. 불어를 전혀 모르는 복숭아는 저 문구의 뜻을, 붙여놓은 주체가 자신의 엄마라는 근거로 짐작한다. 열세 살 아이가 '그래도 괜찮다고? 알았어, 알았어.'로 해석하는 N'allez pas trop vite.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주 "N'allez pas trop vite.(너무 빨리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한다.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선생님,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봄이가 오기 전까지 나는 주부로서 내 영역에 강박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하는 때와 장소에 원하는 자원이 공급되지 않으면 못 견뎠다. 30평짜리 집안에서 필요한 자원의 양과 종류는 방대했다. 냉장고 안 식재료를 비롯한 살림에 필요한 다양한 물건들, 집안의 위생과 청결상태, 정리정돈까지. 그것을 유지 보완 발전시키기 위한 도구들 역시 중요했다. 무언가 부족하고 필요한 상태를 참을 수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것들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나는 달렸다. 매일 청소와 빨래, 쉴 틈 없는 정리정돈, 외출 전후 내부관리... 집안 상태는 언제 누가와도 흠잡힐 데 없이 완벽했다. 어쩌면 나의 기준은 이 집에서 사는 나와 남편, 딸 우리 셋의 편안함이 아니라 팔로워가 몇 만 명쯤 있는 살림 전문 인플루언서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삶은 살림에 지쳐 아프거나 피곤해 늘어진 몸뚱이인 것은 아니었을까. 자주 발레리나 강수진을 떠올렸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이 아프지 않으면 전날 연습을 게을리했다고 생각하고 그날은 더 열심히 훈련을 했다고 한다. 나는 충분히 피곤하지 않으면 게으른 하루를 보냈다고 자책했다. 아침마다 쓰나미 같은 집안일에 맞서 싸우고 난 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거실 한가운데에 지쳐 쓰러지던 나는 어느새 늘 피곤에 쫓기는, 신경질적인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거실에 펼쳐진 건조대를 빨리 걷고 싶은데 빨래가 더디 말라 답답해 한겨울 선풍기를 돌리며 전전긍긍 짜증 내던 어느 날, 봄이가 왔다.

 

봄이는 싱크대 위에  모래가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남기고 그 앞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나를 노려본다. 축 처진 원시 포유 주머니, 탁! 탁! 바닥을 치는 꼬리. 이어 냄비를 떨어뜨리는 도움닫기와 함께 바닥으로 펄쩍 뛰어내려 질주한다. 통 3중 스테인리스 냄비가 떨어지는 통에 원목 바닥이 깊게 파였다. 빨래를 말려 걷으니 옷 더미 속으로 파고 들어가 골골거리며 졸고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렸다.


나는 하얀 수건에 젤리처럼 들러붙은 고양이의 눈곱과 코딱지를 툭툭 털어낸다. 바닥이 상하지 않도록 러그를 깔고, 구석에서 뭉쳐진 털이 모래와 함께 나오면 청소기로 그것만 쇽 흡입한다. 건조대에 널어둔 이불은 그 아래 숨은 고양이에게 적당한 그늘이 되어 주는 것을 보고 해가 긴 날이면 되도록 오랫동안 빨래를 널어놓는다. 거실이 좁아져도 괜찮다. 씻어서 체에 밭쳐놓은 부추의 끄트머리를 질겅질겅 다 씹어놓아도 괜찮고, 화장실 하수구 뚜껑을 열어젖히고 방충망을 할퀴어 찢어져도, 괜찮다. 괜찮아야 했다.


괜찮은 것 밖에 달리 방도가 없으니까.

 

처음에는 낯선 고양이의 본능적인 행태에 많이 놀랐다. 뻔뻔하고 염치없으며 안하무인으로 하는 행동에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후회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가족이 되었는데 괜찮지 않으면. 봄이의 등장은 단순히 집안에 고양이 한 마리를 들이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었고,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상황은 바꿀 수 없었다. 한번 집에 들인 고양이는 전적으로 나의 받아들임, 섭수(攝手)의 대상이다.  


고양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고양이로 인해 내 일상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 그냥, 괜찮아야 되는 것이다. 다이소에 가서 방충망 보수 테이프라는 것을 사 와 붙이고 '참으로 요긴한 물건이로군.'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 하수구 거름망이 거실에서 굴러다녀도 괜찮을 만큼 평소에 깨끗하게 닦아놓는 일. 씹어놓은 부추를 가위로 대강 다듬은 뒤 부침개를 부치며 "옛말에 콩 한쪽도 나눠먹으라 했는데 동거묘와 부추를 나눠 먹으니 한결 맛있지 않은가."라고 중얼거리는 일이었고, 발바닥 모양으로 찍힌 얼룩이 귀엽다고 사진으로 남기는 일이었다. 싱크대건 식탁이건 레인지 후드 위건 어디건 얼룩이 있으면 행주로 슥슥 닦고 앉아 밥을 먹어도 괜찮았고(괜찮아야 했고), 나른한 오후 지친 몸을 소파에 뉘었다 일어나 거울을 봤을 때 얼굴에 화장실 모래가 붙어있어도 괜찮았다(괜찮아야 했다).


이것이 고양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자포자기가 아니다. 완벽했던 내 공간이 더럽고 불결해져서 나의 생활이 퇴락한 것이 아니다. 사람끼리만 살던 공간에서 사람과 고양이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한 것이고 나는 그 안에서 산다. 그렇게 3년째 살고 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더럽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더럽지 않았고, 성가셔했던 모든 것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으며, 없으면 큰일이다 여겼던 것의 대부분은 대체품이 쉽게 나왔다. 지레 겁먹고 두려워했던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딱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받아들임 후 시간의 흐름도 바뀌었다.

전에는 등교 전, 외출 전, 하교 전, 퇴근 전, 자기 전... 해야 할 일이 순서대로 머릿속에 쌓여있었다. 나는 정해진 시간 내에 퀘스트를 수행하듯 기계적으로 일을 해치웠다. 나의 체력과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었기 때문에 소파건 식탁이건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들었다. 무언가에게 쫓기는 기분이었지만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아 시간만 빠르게 흘러갔고 그 한가운데의 나는 그저 지금이 어서 지나가기만 바랐다. 하지만 고양이를 받아들인 후 이 모든 것들이 멈췄다. 나를 쫓던 것이 사라지니 생존에 절대적이고 중요하다 여겼던 것들이 그다지 필요 없게 되었다.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시간이 공간과 함께 생겼다.


이제는 머리카락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대신 바닥에 떨어진 모래를 눈으로 좇으며 화장실에서 나온 봄이가 어느 방향으로 갔나 상상해 본다. 식사 준비를 할 때만 행주로 싱크대 위에 찍힌 발자국을 쓱 닦고, 식탁도 쓱 닦는다. 행주야 삶으면 되고, 고양이는 깨끗해진 식탁 위로 올라와 제일 먼저 턱 하니 자리 잡고 앉으니, 우리 봄이 배고프니 밥 줄까. 예전에는 집안의 위생 상태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고양이가 들어가기에 적당한 크기의 재활용 종이 박스를 구하는 문제가 더 중요해졌다.   


이제, 나는 이 모든 것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박스 냄새를 맡으며 조심스레 접근하는 봄이, 안으로 들어가 자세를 잡는 봄이, 눈을 감는 봄이.

뻬옹뻬옹 떠들면서 똥을 싸는 봄이, 냄새를 풍기고 모래를 뿌리며 소파 위로 점프하는 봄이, 거실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봄이, 그 발로 차려 놓은 밥상에 올라 숟가락이니 젓가락이니 전부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즐거워하는 봄이.         

설거지를 하는 나와 눈을 마주치는 봄이, 그 안에 검은 우주가 있다, 설거지의 마무리를 확인하고 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싱크대에서 내려가는 봄이의 뒷모습, 남겨진 발자국에는 동그라미가 네 개씩.


너의 묘생을 자세하게 설명해 줘. 너무 빨리 가지 마. N'allez pas trop vite.  


함수가 어렵고 여드름이 괴로워도, 매일 출퇴근길이 멀고 힘들어도, 내 시간이 무용한 노동에 소비될지라도, 우리가 그 시간을 좀 더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만 가질 수 있다면, 괜찮다.


고양이와 함께 프루스트의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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