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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이 Aug 30. 2023

적응을 위한 루틴

우리의 일상이 되기까지


아침에 방문을 열고 나오면 봄이는 꼬리를 한껏 치켜든 채 다가와 골골거리며 얼굴을 비빈다. 그는 매일 아침 5시 25분에서 35분 사이에 일어나는 눈치다. 내가 7시가 다 돼도 일어나지 않으니, 한 시간 넘게 방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거실에 있는 숨숨집에서 혼자 자는 봄이가 꼭두새벽에 일어난다는 사실은 굳이 문을 열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녘, 거실 한가운데서 횃대에 올라 우는 수탉처럼  "냐와아아아~!" 하고 우렁차게 소리를 질러 우리 모두를 깨우기 때문이다. 고양이 목소리가 이렇게 큰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시계를 확인해 보면 알람처럼 정확하다. (그는 시계를 읽을 줄 아는 것이 틀림없다.) 잠이 깬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한껏 몸을 웅크린다. 어렸을 때 새벽잠 없는 아버지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창문을 열고 이불을 걷어내던 일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아침 인사를 마치고 나면 사료 그릇을 확인한다. 전날 밤에 준 사료가 아직 남아있는 경우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릇을 씻어 새 사료를 담아준다. 요즘은 사료는 30g씩 세 번 중간에 간식으로 그릭 요거트를 한 스푼 주는데, 남편은 봄이의 다이어트가 걱정이다. 밤마다 함께 체중계 위에 올라가 보고 한숨을 쉬며 내려와 운동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남편의 신들린 낚싯대 솜씨 덕분에 밤마다 거실에서 고양이 널뛰기가 벌어지고.


봄이는 장난치고 싶을 때는 달려와 툭 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가거나 커튼 뒤에 숨어있다 펄쩍 점프해서 놀라게 한다. 심심한데 관심을 못 받아 심통이 나면 손이나 팔, 종아리를 살짝 물고 도망간다. 눈곱 떼는 것보다 코딱지 떼는 것을 더 싫어하지만 둘 다 적당히 참아준다. 발톱은 보름에 한 번 그래도 조금 차분한 낮에 잘라야지 야생 본능이 번뜩이는 해 질 녘에는 자를 수 없다. 집안일하는 나를 자주 쫓아다니며 내 움직임을 구경하는데, 특히 침대 위를 돌돌이로 밀 때면 번개같이 달려와 꼬리를 채찍처럼 흔들며 돌돌이와 대적한다. 성격은 털털한 편으로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싼다. 사료도 간식도 입맛에 안 맞아 거부한 적 없다.


머리는 나쁜 것 같지만 큰 일은 아니다.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고양이들처럼 눈빛을 번뜩이며 간식 찾아먹기를 좀 못해 내 속이 답답할 뿐이다. 다만 자신을 개로 착각하는 것은 조금 심각한 문제다. 내가 얘 앞에서 <개는 훌륭하다>를 너무 많이 봤을까. 내가 외출했다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집안 어딘가에 있던 봄이는 정신없이 뛰어온다. 정말 네 발 중 앞 뒤 두 발씩 짝지어 개처럼 훌쩍훌쩍 뛰어 달려오다 급 제동을 걸고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비볐다. 조금 있으면 냐냐하고 짖을 생각인가? 자존심도 없지.


우리 집에 봄이가 온 지 석 달이 넘어가던 시기이었고, 그의 나이 만 10개월일 때였다. 세 달 동안 외출하기 전 나의 루틴 외에 봄이를 위한 루틴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화장실을 치우고 물그릇에 새 물을 채워준다. 이틀에 한번 정수기 물을 갈아주는데, 이 역시 외출 후보다 외출 전에 하는 것이 내 마음이 편하다. 어쩌다 깜박하고 화장실을 안 치워주거나 물을 갈아주지 않고 나온 날은 집에 들어갈 때까지 찝찝하다. 부엌 가스불을 켜놓고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전기포트 콘센트가 꽂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리미 코드가 꽂혀 있는 것 같기도 한 것과 비슷한 불안함이 마음 한편에 엉겨 붙어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급해진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달린다.


쌀과 화장지의 재고를 파악하듯 수시로 사료와 모래 재고를 파악하여 1주일 정도 여유 있게 주문하고, 청소기는 아침저녁으로 돌린다. 그래도 한 번씩 밟히는 모래는 어쩔 수 없지 못 본 척 발로 쓱 밀어내고. 봄이는 손수건이나 앞발로 입을 가리지 않은 채 재채기를 자주 해서 쿠션과 방석, 이불, 창문에 침과 콧물 얼룩이 많이 묻는다. 1주일에 한 번은 거실의 패브릭을 빨아줘야 하는데, 따로 빨아보니 너무 비효율적이라 요즘은 우리 옷과 양말을 빨 때 함께 빤다. 수돗물의 소독 효과와 드럼 세탁기의 엔진 파워와 세제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매일 그루밍하느라 침으로 범벅된 봄이를 안고 얼굴을 비비는데 그깟 콧물쯤이야.


어느새 그의 나이 꽉 찬 두 살, 26개월에 접어드는 요즘은?


방문이 닫혀있으면 열고 들어와 귀에 대고 소리 지른다. "냐와아아아아!" 시간은 뻔뻔하게도 새벽 세 시 혹은 네 시. 안 일어나면 감겨있는 눈 주위를 툭툭 친다. 자기 전 사료를 넉넉하게 줘도 소용없다. 밥그릇에 먹을 것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 뜻대로 인간을 조종했다는 데에 무한 성취감을 느끼는,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청소기는 하루에 한 번 밀면 부지런 떠는 날이고, 방바닥 모래는 손으로 집어 다시 화장실로 골인시킨다. 아깝기 때문이다. 신장이 약한 고양이에게는 신선한 물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말에 들였던 정수기는 봄이가 예의 그 건틀렛 주먹으로 쳐서 망가졌다. 밤마다 정수기와 싸우더니 보름달이 뜬 어느 날, 퍽하는 소리와 함께 업어치기에 성공했다. 그 뒤로 정수기는커녕 뚜껑 없는 글라스락에 한 사발의 물을 제공한다. 여전히 간식은 그릭요거트 한 스푼. 병원에 갈 때마다 양치질을 잘하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면봉 같은 칫솔과 닭고기 맛 치약으로 이 닦기를 시도했다. 칫솔이 입안으로 들어오면 앞발로 칫솔을 잡고 치약을 뇸뇸 빨아먹은 뒤 도망간다.


외출 전 루틴은 같다. 화장실을 치워주고 새 물을 담아준다. 깜박하고 나간 날은 마음이 급해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달리는데, 깜박한 날이 없다. 밤마다 봄이의 체중을 재고 한숨 쉬는 남편은 '냥이콥터'라는 새로운 장난감으로 바람개비를 쏘며 논다. 매일 밤 거실에서 피슝~ 공중으로 쏘아 올려진 바람개비가 날아가는 소리와 그 뒤를 쫓는 고양이의 질주가 반복된다.


이제, 고양이와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어마어마한 일이 아니게 된 걸까. 함께 먹고 자고 숨 쉬는 동안 나의 일상과 봄이의 일상은 어느새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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