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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갱이 Sep 18. 2023

호텔에 가다

  꼭 창문 있는 방으로 부탁합니다

지난여름,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기질상 물리적 동행이 쉽지않기에  여행 준비 과정에서 가장 마음을 썼던 것은 봄이의 거취였다.


 유튜브의 전문가들은 고양이 같은 영역동물은 웬만하면 사는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들도 근처 친척이나 친구들이 하루에 한두 번씩 집에 와서 물과 사료를 챙겨주고 화장실을 청소해 줄 것을 추천했다. 실제로 이런 아르바이트도 존재했다. 소정의 금액을 받고 집에 와서 고양이 관련 업무를 처리해 주는 것이다. 후기도 좋았다. 하지만 집 안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싫어 정수기도 자가 관리를 하는 성격이라,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것은 께름칙했다. 주변머리 없는 나의 주변에는 이런 부탁을 할만한 지인도 없다.


몇 년 전 친구가 같은 이유로 고양이를 혼자 두고 열흘 넘게 여행을 다녀왔더니 등과 배에 원형탈모가 생겨 한 달 가까이 병원에 다녔다는 얘기가 자꾸 맴돌았다. 몇 날 며칠 고민 하다 결국, 정 방법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는, 고양이 호텔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고양이 호텔은 가로세로 50cm 크기의 투명 케이지 안에 들어가 있는다는 곳부터 두 평 남짓한 공간을 독채로 쓰는 곳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물론 환경에 따라 숙박비는 2배, 4배, 8배... 기하급수로 치솟는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우리끼리 여행을 가는 것이 동거묘에게 미안하다면 분명 좋은 호텔방을 예약해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도 많은 돈이 드는데 고양이 호텔에까지 큰돈을 쓰기란 쉽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또 몇 날 며칠 전화만 돌리고 SNS에 올라오는 후기 사진만 검색하며 한숨만 쉬었다. 그러다 마침내 집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변두리의 한 호텔 방을 예약했다. 케이지도 스위트룸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방이었다. 성수기 두 달 전에 예약한 덕에 다행히 작지만 창문이 있는 방을 선택할 수 있었다.


"창문이 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얘는 창 밖을 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나는 예약확정을 받으며 세 번 네 번 창문 확인을 되풀이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여행을 안 가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나도 이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그렇게 귀찮으면 운동하지 마라 던가, 그렇게 짜증 나면 공부하지 마라 던가, 그렇게 살찌는 게 무서우면 밥 먹지 마라와 동급인 말이다. 아무리 싫어도 '그냥'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동거묘의 거취는 엄연히 여행 준비 과정에 포함되는 일이었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심지어 슬퍼도, 해야 할 일이었다.


여행 첫날 일정은 새벽 여섯 시에 시작될 계획이었다. 그러니 봄이를 전날 늦은 오후에는 호텔에 데려다줘야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과 마주칠 때마다 목젖이 뻐근해졌다. 환경이 바뀌면 고양이들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더라, 어떤 애는 한 달 넘게 집사보고 하악질을 했다더라, 집에 돌아와 아무 데나 오줌을 싼다더라.. 온갖 안 좋은 얘기만 머릿속에 탕탕 부딪쳤다. 급기야 우리가 여행 현지에서 사고사 하여 봄이가 유기묘로 처리되면 어떻게 하나, 불안과 초조에 쫓긴 나는 멀리 사는 친한 언니에게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다. 호텔 주소를 알려주며 혹시라도 나에게 변고가 생기면 우리 봄이 좀 부탁합니다. 유기묘 센터에 맡겨지는 일만큼은 없도록 언니가...


"아따메 참말로..."

가까이 있었으면 등짝을 맞았을 것이다.


남편과 딸은 가뜩이나 머리 나쁜 애가 일주일 만에 우리를 잊어버릴 염려를 했다.


호텔 체크인 1주일 전부터 괜히 (세일해서 산) 고급 습식 캔도 한 개씩 따주고, 비린내가 풀풀 나는 북어 트릿도 주고, 물어도 화내지 않고, 카샤카샤와 낚싯대도 귀찮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흔들어줬다. 그리고 오후 네 시, 이동장에 담아 호텔로 갔다.


호텔 사장은 방으로 안내했다. 사진에서 보던 대로 가로 폭 1m 남짓 세로로 4m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긴 방이었다. 안쪽에 창문이 있고 그 앞으로 작은 캣타워가 있다. 나는 창가에 봄이가 집에서 깔고 뭉개던 담요를 예쁘게 펼쳐주었다. 사장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CCTV가 달린 방을 설명했다. 하루에 한 번 거실로 나와 15분동안 대형 캣타워와 캣 휠에서 놀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사료와 화장실 모래 한 줌, 그리고 새로 만든 그릭 요거트를 건넸다.


작별 인사를 했다. 봄이는 창가에 정물처럼 앉아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집에 돌아와 나는 주인 없는 식기를 설거지하고 화장실 모래를 비운 뒤 소독했다. 봄이가 돌아왔을 때 베란다에서 잘 마른 화장실에 새 모래를 넣어주면 분명 화가 풀릴 것이다.


다음 날부터 매일 호텔 사장은 내 동거묘의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적응을 잘하고 있다, 창밖을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사료를 먹었고 똥을 쌌다, 호기심이 많다, 잘 논다... 모두 좋은 코멘트만 적혀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3일, 4일, 5일이 지나도록 꼬리가 축 쳐져 좀처럼 올라오지 못하는 것만 봐도 봄이가 얼마나 불편해하고 있는지.


집에서는 항상 꼿꼿이 세워져 있었는 걸.   


정 그렇게 신경 쓰이면 틈틈이 CCTV를 봐.


 나는 처음 테스트 할 때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CCTV를 보지 못했다. 사진과 CCTV 화면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장이 고객에게 보여 줄 요량으로 사진을 찍을 때는 조명이나 각도 등을 적당하게 잡는다. 인위적으로 투숙묘가 잘 지내고 있다는 느낌이 나게 연출한다는 뜻이다. 사장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당사자는 말 못 하는 짐승이니, 그런 소소한 노력으로 타지의 고객은 안심할 수 있고 사장은 사업을 번창시킬 홍보용 사진을 얻을 수 있다면 말 그대로 마당쓸고 동전줍고, 일타쌍피 아닌가. (물론 날카로운 내 눈빛은 꼬리의 각도를 놓치지 않았지만.)


하지만 CCTV는... 맙. 소. 사.

천장 모서리에 매달린 카메라는 그 각도부터 인간의 불안과 의심을 극대화시킨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다 함은 그저 겁에 질린 채 가만 앉아있는 작은 고양이의 뒤통수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집 안 식탁 위에 앉아있는 뒤통수만 해도 애잔한데 호텔방에 들어앉은 봄이의 뒷모습이라니. 심지어 흑백이라니. 첫날과 다름없는 위치에서 다름없는 자세로, 정말 정물처럼, 몇 날 며칠 가만있다가 불이 다 꺼진 밤이 돼서야 도저히 못 참겠으면 살그머니 내려와 화장실에 가고 사료를 먹을 것이다. 다시 구석으로 들어가 몸을 낮추고 선잠을 자겠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그 뿌옇고 어두운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은 고문이었다.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것이다. 매우 궁금하지만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고양이 호텔 CCTV 앱.

그저 사장의 메시지에 꼬박꼬박 감사한다는 인사와 잘 부탁드린다는 굽신거림만 보낼 뿐인 나는 영락없이 아이를 맡겨둔 엄마 같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트렁크를 던져놓고 차 키를 챙겨 호텔로 달려갔다. 꼬박 9박 10일 만의 상봉이었다. 호텔 문을 여니 봄이는 놀란 듯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다 이내 다가와 골골거리며 다리 사이로 파고 들어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조금도 지체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짐을 챙겼다. 그 마음이 익숙한 사장은 미리 봄이의 짐을 다 싸두었다.


집에서라면 석 달은 족히 먹을 간식 봉지를 일주일 만에 깨부수고 나온 봄이는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시간 내내 뻬옹거렸다. 시차 적응도 안 되는 판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냅둬. 얼마나 할 말이 많겠어.

그래도 우리를 잊어버린 것 같진 않아 다행이야.

탈모증상은 안 보이지?

 

"나를!!! 그렇게 오래!!! 혼자 놔두고!!!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야!!!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 줄 알아!!!"

뻬옹뻬옹은 이틀 동안 계속되었다.

목이 쉬어서야 잠잠해졌다.


봄이는 무탈하게 고양이 호텔을 이용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 후기처럼 스트레스성이든 전염성이든 어떠한 질병도 얻어오지 않았고, 돌아와서도 하악질이나 스프레이 등 이상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동거묘의 무사는 곧 어렵게 준비했던 우리 여행의 성공 요인으로 연결되는 셈이니, 천만다행이었다.


고양이와 함께 여행 다니는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을 볼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호텔 숙박비 같은 필요악의 지출도 없을 것이며 동거묘를 당사자와 사전에 충분한 합의없이 타인에게 보냈다는 죄책감이나 불안감에도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함께 좋은 곳을 여행하며 추억을 쌓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이지, 이보다 더 부러울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최선이고 나의 최선은 이것이다. 그 고양이들은 그들의 팔자대로 살고 우리와 사는 봄이는 또 봄이의 팔자대로 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봄이가 인스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족은 행복과 불행을 함께 하는 사이다. 다만 그 형태는 각기 다르다. 여행하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인플루언서의 가족은 그들 나름의 즐거움과 고충이 있을 테고, 우리 가족은 이렇게 우리의 모습으로 산다. 어떤 형태든 중요한 것은 걱정하고 한숨 쉬고 불안하고 미안하고 화나고 감정을 서로 '교감'하는 것이 아닐까. 이 교감이야말로 가족이니까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반갑고 안심하고 대견하고 뿌듯하고 꼬리는 다시 위풍당당 하늘 높은 지 모르고 치솟는다.

우리 집에 돌아왔으니까.    

우리가 함께 사는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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