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까지 이어지는 긴 척추의 2/3 정도 되는 지점과 뒷다리 대퇴골이 만나는 지점, 그러니까 고양이가 앞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엎드려 열심히 식빵을 굽고 있을 때 여실히 드러나는 그 질펀한 엉덩이에 얼굴을 묻어본 적이 있는가.
달라붙은 털로 한동안 얼굴이 간지럽고 재채기가 나고 입안이 칼칼해지지만, 이를 감수하고 등과 배와 엉덩이 그 언저리에 코를 갖다 대면 햇빛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따뜻한 햇살에 바삭하게 마른 빨래 냄새. 무명의 씨실과 날실 사이를 시원하게 통과하는, 순수한 바람의 냄새다. 항상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다. 가을 아침에는 서늘한 새벽의 냄새도 나고, 환기를 게을리한 겨울의 어느 오후에는 따끈하게 삶아진 고구마 냄새도 난다.
신기하다. 입에서는 분명 닭고기 사료 냄새가 나는데. (자고 있는데 한 번씩 와서 얼굴을 코앞에 들이대며 냐냐~ 거리면 그 소리보다 입냄새에 놀라 눈이 번쩍 뜨인다.)
봄이는 양치질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저 입으로 온몸을 핥고 빠는데, 닭고기 냄새는커녕 이렇게 깨끗하다니, 신기하다.
봄이는 입으로 모래가 묻은 발을 닦는다. 발가락을 쫙 벌려 사이사이 잘 닦는다. 그 발로 세수를 하고 다시 입으로 닦는다. 집 안의 구석을 드나들고 창틀에 오르내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먼지와 얼룩이 범벅되어 나타나는데, 순식간에 흔적도 찾아볼 수 없도록 깨끗이 닦아낸다. 헝클어진 털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저 멀리 뻗어있는 긴 꼬리 끝까지 터럭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는 모습에 정성이 가득하다. 그 모습에 반한 나는 한 번 따라 해 볼까. 귀찮은 마음 대신 정성껏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고.
봄이는 하루에 한두 번 똥꼬도 닦는다. 똥꼬 그루밍을 할 때 표정과 자세는 정말 혼자 보기 아깝다. 똥꼬 냄새가 궁금해 한 번은 코를 대봤다. 고약한 냄새가 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또 햇빛 냄새가 났다. 똥에서는 똥 냄새가 나는데.
몸 안에 동그랗고 작은 해를 온전히 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날마다 창가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해를 통째로 흡수해 버린 것이다. (실제로 봄이가 무릎 위에 올라오면 뜨거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체내 동화작용으로 엽록체 성분이 녹아있는 침을 생성한다. 그래서 그루밍을 하면 침과 햇빛이 반응해 산소가 발생하고, 그렇게 싱그러운 냄새가 나는 것이다. 아, 그럼 이제 곧 우리 봄이 몸에서 새싹이 나겠네. 등에서 꼬리에서 다리에서 정수리에서 초록의 잎이 삐용삐용... 예쁘겠다.
고양이에게선 햇빛 냄새가 난다.
잘 마른 빨래 냄새이기도 하고 온화한 바람 냄새도 닮은, 계절의 냄새다.
등과 엉덩이 사이에 코를 가까이 대보면 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