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7, 그리고 그 후

- 소설 -

by 방정민

1.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랜 만이다. 현태한테 얘기는 들었어. 학교에서 나왔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은 쫓겨났습니다.”

“학교 사정은 들었어. 그러니까 줄을 잘 서야지. 괜히 한물 간 학장한테 붙어가지고. 세상살이가 알고 보면 다 줄인데… 그건 그렇고, 전화로 얘기는 대충 했지만 이건 다음 달부터 니가 우리 잡지에 연재할 소설 방향과 내용이야. 한 번 읽어보고 마감시간 절대 어기지 말고 잘 써. 니 글 솜씨는 나도 아니까 기대할게.”

“정말 고맙습니다. 선배님.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언젠간 꼭 갚겠습니다.”

“소설 잘 쓰는 게 은혜 갚는 거니까 소설만 신경 써.”

선배는 한 묶음의 서류를 던져주고는 나에게 씩 웃어 보이며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이사장의 비리 문제로 첨예하게 갈린 학교파벌싸움에서 나는 희생양이 되었다. 이사장과 맞붙은 학장 편에 섰다가 이사장의 눈 밖에 난 나는 학교강사 자리에서 해고됐다. 학장은 나에게 어떤 힘도 되어 주지 못했고 나는 완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실력과 법이나 상식이 아니라 사회의 인맥이라는 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이 사회의 부패 고리는 21세기가 지났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철옹성이다. 한 동안 폐인처럼 술만 마시며 다니던 나를 불쌍히 여긴 친구가 한 잡지사에 근무하는 선배에게 나의 사정을 말해줬고 그 선배가 최소한의 밥벌이를 나에게 마련해주었다. 소설을 쓰라는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지난 10년 사이 3․40대 미혼남녀 10배 증가,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중 1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노령화추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 4배… 등등’ 이와 관련하여 3,40년 뒤 한국의 현실, 이 속에서 한 남자의 인생이나 남녀의 사랑이야기, 일종의 가상소설을 써 보라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서른에 미혼이고 비정규직이니 위 통계사항에 해당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한테도 맞는 내용이니까 잘 써보라고 했다. 혼자서 살고 있으니 위 통계사항에 하나 더 추가다. 아니 어쩌면 위 통계사항 모두에 해당될지 모른다. 미혼이긴 하지만 출산을 안 하고 있으니까. 또한 삼사십년 뒤 나도 통계상 노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드니 완전 내 얘기를 쓰라는 것 같아 조금 씁쓸했다.


2.

갑자기 눈을 뜬 강민은 인연에게 말을 건넨다.

“지금 몇 시니?”

“조금 더 있다가 가.”

“안 돼. 지금 도망 안 가면 잡히고 말거야.”

“그래도 여기가 더 안전해. 조금 더 있어. 여기선 함부로 검은고양이들이 잡아가지 못해.”

강민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오늘도 검은 옷을 입은 행정관 - 검은 옷을 입고 미혼인 비정규직이나 하류층들(이들은 ‘쥐’로 불려진다)을 잡아간다고 해서 검은 고양이라 불린다 - 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 잡히면 강제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제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 국가에서 지명한 여자와 강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다. 의무출산은 최소 3명이다. 일명 ‘강제결혼ㆍ강제출산법’이 시행중이다.

때는 2037년. 한국은 인구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노령화가 진행되었고 출산율은 0.1명,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일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노인들은 넘쳐난다. 당연히 산업생산성이 현격히 떨어진 것은 물론 국가경쟁력이 세계에서 꼴찌다.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오로지 상류 1%, 또는 재벌들에 의지하며 근근이 국가를 경영하고 있다. 정규직과 상류층은 국가가 보호하는 구역(5구역)에서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편안한 삶을 산다. 그러나 비정규직과 일용직, 그리고 실업자 즉 하류층, 특히 미혼인 하류층들은 그들만이 사는 구역(13구역)에서 항상 행정관에게 잡힐 것을 두려워하며 쫓겨 다닌다.

21세기 중반 대한민국은 무엇이든 철저히 구분되고 차별되어 있다. 경제적 지위에 따라 사는 곳도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상류층들이 사는 곳은 마치 중세의 왕처럼 성과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곳엔 세계최고의 시설들 - 헬스장, 수영장, 골프장 등은 기본이고 열대우림 같은 산책로가 바다와 강으로 연결되어 있다 - 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하류층들이 사는 구역의 분위기는 마치 1950년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을씨년스럽고 지저분하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의 좁은 골목길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집들이 어지러이 줄지어 있다.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아 마치 암흑의 지하세계 같다. 법적인 계급은 아니지만 사실상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상류층이냐 하류층이냐에 따라 철저히 구분되고 차별되어 있다. 차별이 일상화된 나라가 21세기 중반의 대한민국이다.

인연이 강민을 찾아온 것은 서 너 달 전이다. 10년 전 열렬히 사랑하던 강민을 떠나 안정적이고 연봉 높은 공기업에 다니던 남자에게 시집을 간 인연은 그 사이 남편과 사이가 시들해졌는지, 강민이 그리웠는지 그를 찾아와 다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자신이 사는 구역에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강민을 숨겨두며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편 몰래도 아니었다. 남편도 바람을 피고 있던 터라 거리낌은 없었다. 외도에 대한 선입견은 물론 법적인 제제도 없고 제도상, 법적으로만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시대다.

강민은 일어나서 샤워실로 향한다. 인연은 강민이 샤워를 하는 사이 간단히 먹을 음식을 준비하면서 TV를 켰다.

「결혼의 양극화가 악화일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나 재벌 등 일부 상류층은 자녀를 4명이상 두는 반면 출산은커녕 결혼도 하지 못하고 있는 하류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미혼자의 급증으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자 급기야 국회에서는 ‘근친결혼허용법’을 제정했는데, ‘강제결혼ㆍ강제출산법’에 이어 엄청난 사회적 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가 어디까지 미칠지 겁이 나.”

인연이 말을 하자 샤워를 마친 강민이 말한다.

“그래도 인연이 넌 선택을 잘 했잖아. 나를 버리고 지금의 남편을 택해서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말이야. 그 덕택에 나도 숨어 살고.”

“그래도 근친결혼이 뭐야? 미친 짓이지.”

“사회가 미친 지 오래되었는데 그까짓 게 뭐라고. 결혼도 국가가 관리한 지 10년이 넘었지, 근친결혼으로 발생하는 유전적인 문제는 현재 과학으로 다 해결된다니 뭐가 문제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둘의 시니컬한 대화가 길지도 않았는데 밖이 약간 소란스럽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강민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본다. 한 남자가 검은고양이한테 잡혀 끌려가고 있고 또 다른 검은고양이 둘이 강민이 있는 오피스텔로 들어오고 있다. 급해진 강민은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도망간다.

“이놈들, 냄새 기막히게 맡네. 너 이름대로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간다. 그동안 고마웠어.”

강민이 인연에게 가볍게 키스한다.

“강민 씨! 몸조심 해. 만약 안 잡히면 내가 거기로 갈게. 우리 그때 첫사랑과 끝사랑을 나누었던 곳 있지? 그곳으로 갈게. 그리고 이거 가지고 가.”

인연은 지갑에서 돈 뭉치를 꺼내 강민에게 건넨다. 순간 사진 하나가 지갑에서 떨어진다.

“니 딸이니? 예쁘네! 너 닮아서 예뻐. 돈 고마워.”

강민은 사진을 주워 인연에게 건네며 인연이 주는 돈을 받아 얼른 문 밖을 나간다. 인연은 강민이 나간 곳을 한참 바라보며 혼잣말로 속삭인다.

‘그 얘가 누구를 닮았는데 안 이쁘겠어…’

3.


낮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삐죽삐죽 땀이 흐를 정도로 늦더위가 남아 있지만 하늘은 높아졌고 푸르러졌다. 정말 아름다운 가을하늘이다. 이렇게 맑은 가을하늘을 강민은 참 오랜 만에 올려다본다. ‘벌써 10년이 지났구나. 지금이 2047년인가. 세월 참…’ 강민의 나이도 벌써 사십대 후반, 옛날 같으면 중년이라 할 수 있지만 현재는 50이 되지 않은 미혼 남자를 중년이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30대를 젊은이라 하면 젊은이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10% 정도 밖에 안 돼 사회적으로 50대까지를 젊은이라 칭하게 되었다. 그만큼 인구의 노령화문제는 이제 사회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문제가 되었다.

국가는 가임 가능한 남녀를 어떻게든 강제로 결혼시켜 아이를 낳게 할 궁리만 할 뿐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 비정규직 차별문제, 소득격차문제, 양극화 문제, 주택문제 등-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사태의 원인을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남녀의 이기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라고만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선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원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정부는 오로지 재벌이나 상류층만을 위한 정책을 펼쳐 그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였다. 그들 덕분에 그나마 국가가 성장, 유지된다는 논리에 갇혀있었다. 정부는 철저히 상류층의 편에만 서 있는데, 이런 정부의 과오를 바로 잡을 생각을 국민들이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선거 때만 되면 친재벌, 친상류층의 정치인들이 나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 국민들은 언제나 그 말을 믿고 그들을 당선시켜 주었다. 속고 또 속아도 의식 없는 국민들은 언제나 자신들을 속이는 정치인들을 또 뽑아주는 것이다. 조삼모사의 원숭이마냥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그들을 비참한 하류층으로 내모는 정치인들을 뿌리 뽑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주화를 열망하며 목숨 바쳐 시위하던 때가 있었는지, 그것은 역사책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바로 이런 것이 21세기 중반, 대한민국 비극의 진짜 원인이었다.

강민은 인연과 두 번째 헤어진 후 십년 동안 지방대에서 강의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한 지방대 철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하였지만 철학과 자체가 없어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나마 유학을 다녀온 과 동문들은 간혹 철학과나 다른 과 교수로 임용되기도 하였지만, 강민은 대학 졸업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유학을 가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에게 기다린 것은 사귀던 여자에게 이별통보를 받는 것이었고 국가로부터 강제결혼과 강제출산을 강요받는 것이었다.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은 이 때부터였다. 그러나 강사로서나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면 국가에서 강제결혼을 유예해주었다. 강의가 끊겨 못하게 되면 바로 도망자 신세가 되는 것이다.

강민은 또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알고 지내던 한 교수가 강민을 가엾게 여겨 그가 다니던 대학에서 몇 강좌 강의를 주었는데 그가 이번에 정년퇴임을 한 것이다. 줄이나 백 같은 파벌이 없는 강민이 대학에서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힘든 것이 현실이다. 전혀 어떤 혜택-가령 보너스나 연금, 4대 보험 같은-도 없이 대기업 초임 연봉의 오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 강사인 강민에게 결혼과 출산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강민은 십년 전 인연의 집에서 도망갈 때 인연이 말한 것을 떠올렸다. ‘우리 그때 첫사랑과 끝사랑을 나누었던 곳 있지?’ 이십 대, 말 그대로 찬란한 청춘이었던 시절 인연과 처음으로 여행을 갔었다. 동해 어느 바닷가에서 유치한 사랑놀이를 해가며 뜨겁게 사랑했던 바닷가였다. 이 바닷가는 그 몇 년 후 인연이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다고 마지막으로 여행하자며 갔던, 즉 이별여행을 한 곳이기도 하다. 추억의 처음과 마지막이 공존하는 바닷가! 한 여자와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랑을 했던 곳, 그러나 그 사랑만큼 아픔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곳이 바로 동해 바닷가였다.

강민은 그 바닷가로 향했다. 높고 맑은 하늘만큼이나 가을 바다는 청초하고 아름다웠다. 바다와 하늘이 정말 하나의 색과 빛으로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운 여름 북적였던 사람들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조금 쓸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가을바다는 가을하늘과 닮았다. 불과 몇 주 전까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바글바글, 으르렁으르렁, 온갖 사건과 추태가 오고가던 곳이 밀물 빠져나가듯 언제 그랬냐며 한산해 진다. 마치 사랑처럼.

강민과 인연의 사랑이 그랬다. 둘은 낭만적 사랑의 전형 그대로 열렬히 사랑했다. 바닷가에서 손을 잡고 거닐며 사진도 찍고 뜨거운 키스도 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바닷가에서 둘은 영화의 주인공마냥 서로 열심히 애무했다. 해변에서도 민박집에서도 화장실에서조차 둘은 손을 놓지 않았다. 껴안고 보듬고 쓰다듬었다. 그리고 마음껏 섹스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무리 뜨겁고 열렬한 낭만적 사랑이라도 현실에선 무기력했다. 인연은 남자 구실 할 수 없는 비정규직 대학강사와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현실 앞에 사랑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가을바다처럼. 그러나 바다를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 또한 포기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었다. 버림을 받든 현실 앞에 무기력하든 사람은 또 사랑을 찾아 나선다. 내년에 다시 바다를 찾는 것처럼.

강민은 인연과 추억이 많은 바닷가에서 한참을 혼자 거닐다 한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또 어떻게 도망 다닐지 앞날이 깜깜했다. 걱정을 하며 한숨을 쉬고 있는데 좀 전 바닷가에서 봤던 여자가 옆방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 여자도 무슨 사연이 있는지 혼자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여대생으로 보이는 묘령의 여인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여자가 혼자 민박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도 하류층만 다니는 이런 구역의 민박집에서.

며칠이 지났다. 그녀는 밥을 사먹는 것도 지쳤는지, 돈이 없는지 민박집에서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민박집에 갖춰져 있는 가스레인지와 전기밥솥으로 밥과 반찬, 국을 하는데 영 서툴다. 보다 못한 강민이 도와준다. 혼자 산 세월 탓인지 강민은 가정주부 못지않게 밥과 음식을 잘 한다.

“저, 제가 도와 드릴까요?”

“네? 고맙습니다.”

그녀는 살짝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강민은 능숙한 솜씨로 그녀를 돕는다.

“그런데 여기서 오래 있을 거예요?”

“그건 아닌데, 어디로 갈지도 모르겠고…”

“대학생 같은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저…”

그녀가 망설이자 강민은 그녀를 안심시킨다.

“안심하세요. 저는 검은고양이가 아니니까. 저도 실은 도망 다니는 신세거든요.”

“아, 네. 그렇게 안 뵈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따로 있나요? 한 순간에 도망자신세가 되잖아요.”

“그렇죠. 저도 제가 도망자신세가 될지 꿈에도 몰랐어요. 4년 전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해서 이렇게… 그 전에는 정말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요. 5구역에서 공주처럼 살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지 모른 채 살았던 철없던 시절이었어요. 5구역에서 쫓겨난 후 어렵게 살다가 겨우 대학생이 되어 알바하면서 힘들게 대학생활했어요. 근데 얼마 전 남동생이 20살이 되면서 근친결혼을 강제하잖아요. 근친결혼이 작년부터 시행중이잖아요. 그래서 도망 다니게 됐어요. 그쪽은 요?”

“전 옛날부터 6구역에서 살았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이렇게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사회가 아니었으니까. 그냥 평범했고… 대학 졸업하고 강사하면서 사회가 급변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나도 이렇게 도망자 신세가 된 거죠. 이 시대의 불가촉천민 강사… 하하!”

강민의 웃음에는 세상의 비루함이 묻어 있다. 자신의 못난 탓과 함께 사회에 대한 강한 거부반응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행동으로 저항할 의지는 없는 나약한 샌님이다. 이러한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단순히 도망자 신세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웃음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한계, 또는 삶에 대한 포기가 뒤엉킨 삶의 비루함이 함께 묻어 있는 것이다.

“근데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가늠이 안 돼서요.”

“제 나이 알면 까무러칠 텐데. 우리나이로 마흔 아홉 됐네요.”

“우와. 그렇게 안 보여요. 우리 엄마랑 자치동갑인데 엄마보다 훨씬 동안이에요. 전 삼십대인 줄 알았어요. 요즘은 정말 젊게 사시는 분들이 넘 많은 것 같아요. 나이는 진짜 숫자에 불과하네요. 히히.”

“그런가요? 좋게 봐줘서 고맙습니다. 아무튼 우리 같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봐요. 이렇게라도 살아남으면 언젠간 좋은 날이 오겠죠.”

강민과 은이는 점점 가까워졌다.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어가지고 도와주면서 둘 사이 감정도 싹터갔다. 이 감정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둘은 애써 외면했다. 평생을 혼자 산 강민에게 은이는 신선하면서 동시에 향기 같은 여인이었다. 가르치던 여제자와는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은이도 지금 자기를 지켜줄 남자라는 안도감으로 강민에게 부지불식간 의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둘은 또 언제 도망가야할지 모르는 도망자 신세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각별한 연대의식을 품게 되었다.

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9월 중순인데 비가 이렇게 많이 오다니, 세상이 미치더니 날씨도 따라 미치는구먼.’ 강민이 속삭였다. 해변 민박집에서 바라보는 9월의 거센 비는 마치 강민 자신의 처지 같았다. 여름뿐만 아니라 가을이건 겨울이건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폭우처럼 세상은 극히 일부의 사람만 제외하고 대다수의 국민을 거세게 몰아세우며 때리고 있었다. 강한 비를 맞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는 서민의 처지는 그야말로 비참 그 자체였다.

강민이 휘몰아치는 해변의 비를 보며 잠시 생각에 젖고 있는데, 그의 눈에 희뿌연 거품을 내 뿜는 바다로 한 여인이 뛰어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만 보니 은이였다. 놀란 강민은 재빨리 바다로 뛰쳐나가 바닷물에 반쯤 잠긴 은이를 가까스로 붙잡았다.

“왜 이래요? 무슨 일인데 이래요?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아저씨가 뭔데 이래요? 절 가만히 놔두세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강민은 은이를 진정시켜 민박집으로 데려왔다. 젖은 옷을 닦아주고 이불을 덮어주며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따뜻한 커피 마셔요. 진정이 조금 될 겁니다. 그리고 어깨 빌려줄 테니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좀 전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가… 윽 윽!”

강민은 은이의 등을 살며시 두드려준다. 은이는 강민의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기 시작한다.

“무슨 말도 위로가 안 될 줄 알아요. 그래도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나도 죽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은이는 강민에게 안겼다. 강민의 품에서 한 동안 마음껏 울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에 슬프고 가슴 아파 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자신의 앞일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캄캄한 지하세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에 서럽고 두려웠다. 조금만 버티면 될 거라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펑펑 울고 나자 은이의 옷은 바닷물에, 강민의 옷은 은이가 흘린 눈물에 젖었다.

“다 울었어요? 옷이 젖어 감기에 걸리겠네.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요.”

은이는 실컷 울고 나서 갑자기 딴 사람이 된 듯 강민을 쳐다봤다. 조금 전 슬피 울던 가냘픈 여자의 눈은 어디 갔는지 강민을 뚫어지듯 쳐다보았다. 은이에게 강민이 남자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외로움, 슬픔, 서러움, 두려움 등의 감정이 성욕을 일으키기도 하는 걸까. 은이는 순간 강민을 강렬히 원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같이 샤워해요.”

강민은 은이를 달래듯 살포시 안으며 샤워실에 들어가 그녀의 옷을 한 꺼풀씩 벗겼다. 이십년 전 인연에게 그랬듯 은이의 이마에 먼저 입술을 맞추고 그녀의 코와 볼에 키스했다. 다음으로 은이의 입술을 부드럽게 터치했다. 마지막으로 삼킬 듯이 그녀의 혀를 강하게 그의 입술로 움켜쥐었다. 마치 남자의 성기를 흡입하듯 그녀의 혀를 빨아들였다. 그러자 곧바로 은이는 뱀의 혀처럼 그녀의 혀를 날름거리며 강민의 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 옛날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듯.

강민과 은이는 그날 이후 애인이 되었다. 아주 가까운 애인이 되었다. 같은 입장, 같은 처지여서라기보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낸 사회적 운명이었다. 인연과 틀어진 강민과의 운명이 그녀의 딸 은이로 이어져 강민과 은이는 연인사이가 된 것이다. 인연이 강민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이유, 강민이 미혼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강민과 은이가 도망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 그래서 둘의 운명은 필연적이었다. 사회의 부조리가 만들어 낸 필연적 운명.


4.


이십년 전 쯤 인연은 우리나라 최고의 공기업에 다니던 남자, 병하를 선택해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 병하는 그야말로 잘 나갔다. 그러나 승진이 빠르면 빠를수록 퇴직도 빨랐다. 임원이 못 될 바에야 퇴직해서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병하는 다니던 공기업을 그만 두고 관련 하청업체 사장이 되었다. 처음엔 소위 잘 나갔고 이 일도 굉장히 좋았다. 그래도 명색이 사장인데다가 공기업 직원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손에 쥐었다. 그가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업을 도와주던 파트너가 바로 전직 직장 상사였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전직 직장 상사는 물심양면으로 병하를 도와주었다.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병하를 도와주던 공기업 부장인 친구는 사실 그의 대학동기였다.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기업 임원과 그 하청업체 사장은 온갖 불법과 탈법으로 서로 도와주며, 친구끼리 잘 해쳐먹고 있었다.

공기업 부장 명근은 엄친아의 전형이었다. 대학 시절 수시로 해외로 어학연수를 갔다 오더니 박사 학위도 없이 전임강사로 발령받아 교수생활을 몇 년 하였다. 국내파 출신의 실력파 강민에겐 그 어떤 길도 열려 있지 않던 교수의 길이 명근에겐 너무나 쉬웠다. 그러나 그의 교수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래 공부에 흥미를 별로 느끼지 않았던 그였기에 교수직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러자 공기업 사장이었던 그의 아버지의 현명한 부름을 받고 그는 바로 교수직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다니던 공기업의 한 부서 과장으로 특별채용되었다. 차장을 거쳐 부장으로의 승진도 몇 년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엄친아의 길은 이랬다. 그야말로 그칠 것이 없었다. 그가 가는 길에 어떤 제약도, 어떤 험난함도 없었다. 법과 원칙도 필요 없었다. 마치 중세 고귀한 혈통의 귀족처럼. 음서제는 실질적으로 21세기 중반에도 엄연히 통용되고 있었다.

병하와 명근은 처음에 죽이 잘 맞았다. 병하는 계속해서 명근에게 뇌물과 술과 여자를 갖다 바쳤고 명근은 그에 비례하여 병하에게 온갖 특혜를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가면 갈수록 명근에게 바치는 뇌물과 술과 여자가 많아져야 했고 그럴수록 병하의 이윤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조금씩 그들의 사이가 벌어질 쯤 일이 터졌다. 5년 전 몇 십 년 전부터 시도하려던 전기, 수도, 난방가스, 심지어 의료보험까지 모두 민영화되었다. 만성적자를 줄이고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민영화를 시도한 것이다. 공기업의 부조리와 부패와 불법을 묵인한 채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한 민영화는 말 그대로 서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속화시켰다.

정부의 이 조치로 병하와 명근 사이에서도 언쟁이 벌어졌다. 바로 병하가 하던 일이 공기업 하청 가스 사업이었다. 거기다가 전기, 수도까지 하청을 받으려고 사업을 확장하던 차에 일이 터진 것이다. 정부의 방침으로 대기업에 이 모든 사업이 넘어간 것이다. 명근의 온갖 보살핌과 혜택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던 병하에겐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사업은 불과 일 년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고 병하의 집안은 졸지에 상류층에서 하류층으로 떨어졌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5구역에서 더럽고 불결한 13구역으로 쫓겨났다. 병하는 명근을 여러 번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병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병하는 여기 저기 떠돌아다녔다. 병하는 몇 년 동안 자신을 피하던 명근을 그의 집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려 어렵게 만났다. 명근이 차에서 내리자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명근아!”

차에서 내리던 명근은 언젠간 한 번은 부딪쳐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병하에게 자기 차에 타라고 했다. 그리고 친했을 때 같이 자주 가던 고급 단란주점으로 향했다. 먼저 말을 꺼냈다.

“니도 알다시피 어쩔 수가 없었어. 아무리 아버지가 사장이고 내가 부장이었지만 정부 방침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니까 S기업 김 부장에게 잘 좀 하지. 그 사람에게만 잘 보였어도 이번 사업 니가 재하청 딸 수도 있었는데.”

“누굴 바보로 알아? 그 김 부장에게 내가 얼마나 아부 많이 했는데. 김 부장 후배에게 넘어가기로 처음부터 되어있었다는 거 모를 줄 알아? 이 사업 건 애초에 나한테는 국물도 없었어. 나한테는 어떤 떡고물도 떨어지지 않게 되어 있었잖아.”

병하의 말이 끝나자 명근은 눈을 치켜뜨며 ‘그래서 어쩔 건데?’ 하는 심보로 병하를 쳐다본다.

“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니가 그 동안 누구 덕에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이번 한 번으로 인생 끝나는 거 아니잖아?”

“내 인생, 우리 가족 인생 이 일로 완전 끝났단 말이야. 13구역으로 쫓겨난 거 몰라서 그래? 명근아,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나 좀 살려주라. 내가 니한테 그 동안 잘 해줬잖아. 우리 사이도 좋았고.”

그러자 명근은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다.

“야! 입은 삐 뚫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니가 나한테 잘해 준 게 날 위해서냐? 다 널 위해서지. 그리고 너랑 나랑 근본적으로 신분이 달라. 넌 나 같은 고귀한 신분하고 어울려야 그나마 사회에서 대접받는 거고, 나는 원래 태생적으로 고귀한 신분이야 임마. 왜 그걸 몰라! 내가 좀 놀아줬다고 나를 너와 같은 부류로 취급하지 마라. 기분 더러워지려고 하니까.”

말을 듣던 순간 병하는 얼음이 된 듯 꼼짝 할 수 없었다. 찬, 아주 냉한 분노가 일었다. 참기 어려운 분노가 폭발한 것은 명근의 그 다음 말이었다.

“근데 말이야…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

병하는 말이 없었다. 그러자 명근이 계속 말을 내뱉는다.

“니 와이프 인연이 말이야. 나한테 넘겨. 원래 학교 때부터 내가 찍어두었던 여잔데. 그 무능하고 멍청한 강민이만 나이었으면… 니도 알잖아. 인연이 나한테 올 뻔했다는 거. 거두절미하고 인연이만 넘기면 내가 니 사업 보장한다. 어때?”

명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병하는 분노를 폭발시켰다. 몰래 감추고 왔던 칼로 명근을 찌르고 또 찔렀다.

“뭐 이 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해! 나도 깨끗한 놈은 아니지만 정말 넌 쓰레기만도 못한 놈이야. 너 같은 놈을 만들어 낸 사회가 원망스럽지만 사회를 죽일 수는 없고 대신 널 죽여주마. 지옥에 가서도 편히 살지는 마라. 이 더러운 놈아!”

단란주점 안은 온통 피로 얼룩졌다. 순식간에 수없이 칼에 찔린 명근은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푹 쓰러져 죽었다. 이리 저리 튄 피에 병하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지독한 피냄새가 그 이전 그토록 단란했던 공간을 수놓았다. 예쁜 여자를 끼고 맛있는 안주에 흥청망청 퍼마시던 술냄새는 이렇게 역겨운 피냄새를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에 취했는지 피에 취했는지 한번 피맛을 본 병하는 주저 없이 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피홍수를 이루었다. 피가 흥건해질수록 병하는 숨을 가삐 쉬었다. 그리곤 곧 숨을 멈추었다. 숨을 멈추기 직전 오십 가까운 자신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잘 살았을까? 잘못 살았을까? 잘 살 수는 없었을까?’ 피가 병하를 삼켰다. 병하는 피에 용해되어 사라졌다. 피를 부를 수밖에 없는 사회가 명근을 죽이고 병하를 삼켜버렸다.

5.

“은이야! 빨리 빨리, 서둘러. 놈들이 오고 있어!”

“아저씨. 이제 저 도망 안 갈래요. 아니 우리 도망가지 마요. 아저씨만 괜찮다면 이 아이 낳을 거예요. 그러니 이제 도망갈 필요 없잖아요.”

“정말 괜찮겠어? 나랑?”

“네. 사실 도망가기도 지쳤고 아저씨가 워낙 동안이어서 남들 보기도 괜찮고, 무엇보다 아저씨가 좋아요.”

은이의 배가 조금씩 불러왔다. 삶에 지쳤는지 도망에 지쳤는지 은이는 현실을 빨리 받아들였다. 강민도 싫지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오가는 사이 곧이어 검은고양이들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둘은 이제 당당했다. 하지만 이 당당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검은고양이와 함께 은이의 엄마이자 강민의 첫사랑 인연이 온 것이다. 순간 놀란 은이가 엄마를 보고 반갑게 소리쳤다.

“엄마!”

………

필름이 끊겼다.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최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고 기억에 도움 될 만한 장소에도 가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마치 연출된 영화 촬영장마냥 깨끗했고 황량했다. 그 어떤 장소에도 기억에 도움 될 만한 것들은 없었다. 그러자 동행했던 제자이자 출판사 사장이 말했다.

“그럼 시점을 30여 년 전으로 하죠, 선생님. 삼십 여 년 전에 선생님 같은 대학강사가 있었다면서요.”

“근데 말이야, 은이와 인연은 어디로 갔을까? 은이 배속에 든 아이는 태어났을까?”

“찾아서 뭐하게요? 그래도 굳이 찾겠다면, 지금은 선생님이 유명작가니까 그녀들이 살아 있으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소설만 완성하면 제가 그녀들 찾는데 적극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옛날 지저분하고 역겨운 13구역에서 나와 5구역에서 살고 있다. 그것도 5구역에서도 제일 노른자에서. 이렇게 화려하고 안락한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어떻게 얻은 것인데. 그때 인연과 은이는, 그리고 은이의 아이, 아니 내 아이이자 손자는 누가 어떻게 했을까? 내 기억을 누가 지웠을까?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기억을 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끝까지 살아남았다. 2047년 그리고 그 후, 현재 5구역에서 나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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