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없는 풍경

by 방정민

풍경 없는 풍경


비가 오고 있었다

그녀가 말없이 떠났던 그때

흘렸던 슬픔이 눈물이었는지 비였는지 기억이 없다

화려한 꽃잎이 제 생을 낙화시키고 있었고

나는 그 비련의 풍경을 비를 맞으며 가슴속에 담았다

오랜 기다림

그리고 무수한 시간

멀리 왔건만 잊혀지지 않는 풍경들

기다림이 사라지던 날

이미 지워진 기억 속에서 그녀가 나에게 다가왔다

왜 오지 않나요

기다림의 시간이 상처로 싹터요

변한 것 없는 낯선 풍경 속에서

나는 또 내 기억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멀리 왔을까

그 공간만큼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제 스스로를 잃고 나를 떠났을까

떠났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 나의 기억

그리고 잊혀진 관계들

풍경 속 그녀는 지금도 나를 기다리건만

지키지 못한 약속을 오늘도 지킬 수 없는 나

상처의 싹은 기다림과 떠남으로

비와 꽃잎을 다시 피우고

이 비극적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나는 다시 그녀를 떠나보낸다

만날 수 없는 생의 결핍

풍경 없는 풍경 속에서

날 꼭 붙잡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상처 많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