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에 걸려있는 것들

by 방정민

만추에 걸려있는 것들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노오란 은행나무가 만추에 걸려있다

황홀한 이 빛깔을 담으려고 사진 찍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지금여기 흑백사진을 홀로 찍는다.

어둠이 어둠으로 일찍 쉬는 시간

바알간 단풍나무가 늦게까지 가을에 걸려있다

형용할 수 없는 이 밤풍경을 계속 찍어대는 사람들

나는 지금여기외 파노라마사진을 홀로 감는다.

어디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몇 번을 윤회해도 만날 수 없는 시간

나는 나의 공간에서 홀로 멀어지고 있다

만추에 걸려있는 나의 생이 지금여기에 없다.

우리는 어디에서 만나고 언제 헤어지는가

시간은 나와 너 사이에 비선형적이고

공간은 너와 나 사이에서 역윤회한다

만남이 없는 헤어짐, 헤어짐부터 시작하는 만남

삶의 내면이 권태롭게 산화한다.

수많은 내가 흘러 모이는 늘그막 가을

짙은 허무가 걸려있는 삶이 이글거린다

시간과 공간의 엇갈림은

내 육체와 영혼의 길항작용으로 생긴 선물

사람 그 자체가 운명인 것을

만추의 작고 짧은 미소는

내 생의 긴 여운을 입가에 머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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