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by 방정민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


러시아의 정치가. 사회주의 사상가. 실천가의 정형적인 인물이라 할 레닌은 세계사에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유럽의 후진국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직접 유물론 철학을 기초하기도 했다.


-약한 고리: 세계대전을 내전으로 전환하자


1914년의 러시아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연합국측의 일원으로 참전한 러시아는 다른 열강들과는 달리 침략전쟁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전쟁이었으므로 정의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국민인 레닌은 조국의 참전을 반대하고 애국적인 방어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한다.


더러운 전쟁

19세기는 제국주의의 시대였다. 유럽의 열강들은 앞을 다투어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자본주의가 독점단계로 접어들면서 생겨난 막대한 잉여생산물을 이윤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시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오늘날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경선이 자로 잰 듯 바른 이유는 당시 유럽 국가들이 편의상 위도와 경도에 따라 서로의 식민지를 구분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은 산업생산력에서는 영국을 제치고 선두였으나 시장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따라서 방법은 식민지뿐이었는데 뒤늦게 제국주의적 식민지 쟁탈을 위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독일의 상대인 연합국측 나라들 역시 제국주의 열강이기는 마찬가지여서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 벌어진 영토재편성을 위한 전쟁이 된다. 레닌이 러시아의 참전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제정러시아는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동시에 가장 후진국이라는 것도 이유가 된다. 즉, 도덕적으로 부정한 전쟁인데다가 실익도 보장받지 못하는 소모적인 전쟁인 것이다.

레닌이 전쟁에 동조하지 않은 이유는 첫째, 정의를 부정하는 전쟁이라는 점, 둘째, 후진국으로서 참전의 실익이 없다는 것, 셋째, 차르왕조의 탄압적인 정치체제를 지지하지 않으려는 의지 등으로 볼 수 있다.

사슬의 약한 고리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가 최고도로 발전한 단계로 파악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도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면 최고도로 성숙하게 된다고 본다. 생산은 사회적인데 소유는 사적이라는 모순, 즉 생산기술이 발달하고 분업이 도입되면서 생산방식은 집단적이고 사회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소유는 개별화된 상태로 남아 있고 오히려 점점 독점 자본가에게 집중된다. 이러한 모순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원인이 된다. 현상적으로 보면 이 전쟁은 식민지 쟁탈전이라는 정치적 양상을 띠지만 본질적으로는 경제적인 원인인 것이다. 소유가 독점화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장이 힘을 잃게 됨으로써 자본가들은 해외시장의 개척 즉,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유도한 것이다.

제국주의 단계를 자본주의 최고이자 최후의 단계로 규정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은 자본가들의 반발을 제압해야 하고 혁명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사회주의의 일반론이다. 마르크스의 시대에는 부르주아 시민혁명을 거쳐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게 되므로 선진자본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혁명은 제국주의라는 쇠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이루는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러시아는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혁명에 필요한 만큼) 발달해있고 차르체제의 가혹한 억압이 있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계급과 그 당, 즉 혁명의 주체세력이 존재했다. 혁명의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레닌은 혁명의 객관적인 조건보다 혁명의 주체요인을 부각시켰다. 마르크스가 혁명의 경제적 배경을 강조한 데 비해 레닌은 주체를 강조함으로써 보다 실천적인 혁명을 주장한 것이다.


혁명과 건설의 차이


제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17년, 제정러시아는 무너지고 러시아에는 사상최초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정권이 등장했다. 그러나 레닌의 혁명이론은 혁명의 객관적 조건보다 혁명 주체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던 점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는 계급이 중시되고 국가는 그다지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혁명은 계급보다는 국가를 우선시하는 일국의 혁명일 뿐이었다.

혁명의 성공 이후 소련은 제3 인터네셔널 코민테른을 결성하고 동유럽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함으로써 국제주의 원칙을 지키려 했지만 레닌의 의도와는 달리 동유럽의 각국과는 형제국이 아니라 주종국 관계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후진 자본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숙성하기도 전에 사회주의를 선택함으로써 생산력이 뒤처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70년 뒤, 사회주의를 사실상 포기하게 되는 상황은 시작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할 수 있다.

혁명은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건설은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 혁명 직후 레닌은 건설이 곧 혁명의 완수라고 선언하며 혁명과 건설의 일체를 꽤했지만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된다. 그의 후임은 스탈린이었는데 레닌이 후계자로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모든 반대파를 힘으로 물리치고 권력을 장악한다. 스탈린의 주도 하에 소련의 건설은 진행되는데 그 결과는 정치적으로는 철저한 유혈숙청이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신생국 소련을 계속 ‘약한 고리’로 남겨두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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