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구스타프 융

by 방정민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스위스의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했다면 융은 정신분석학적 개념인 무의식을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프로이트와 더불어 현대 심리학을 발전시키는 데 주요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만년에는 연금술과 동양적 신비주의로 기운 인물이다.

-집단 무의식: 내 안에 전체가 있다

세계 어느 민족이나 신화가 있는데 기본구조와 등장인물이 일치한다. 종교에 있어서도 발상지는 다르지만 구세주에 대한 기다림 등 비슷한 요소가 많다. 심지어 중국의 강시와 서양의 좀비, 그리고 우리나라의 도깨비도 발상이 비슷하다. 이처럼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이 공통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융은 심리학적적으로 접근해 ‘집단 무의식’이라 명명한다.


사본이 있는 것은 원본이 있기 때문


프로이트는 꿈이 무의식의 발현이며 나름대로 엄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융도 마찬가지다. 정신과 의사였던 융은 환자들의 꿈을 통해, 각기 살아온 배경과 처한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영혼, 귀신들림, 악마, 대지, 야만인, 성자 등 공통적인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꿈에 나타나는 환자들의 환상이나 상징은 고대의 설화나 신화와도 비슷했다. 융은 공간과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이미지가 반복된다는 것은 배후에 뭔가 근원적인 요소 즉, 원형(archetype)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 역시 사물에 존재하는 본질 즉, 이데아를 주장하지만 융의 원형은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이데아와는 달리 인간 각 개인의 심리 안에 내재하는 역사적이고 집합적인 기억의 본질을 말한다. 따라서 원형은 인간심리의 본성을 규정하는 초인간적인 심리 구조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인간 개인으로서는 거부할 수도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다. 융은 인간의 원형이 동물에게 나타나는 본능과 비슷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차이점은 동물의 본능처럼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문화와 역사로부터 물려받는다. 그리고 이 원형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은 물론 모든 인간은 원형이 규정하는 범위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한다. 뿐만 아니라 원형은 개인이 처한 문화나 시대와는 무관하게 심리의 본성을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원형이 인간을 통제하고 있다 해서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로 볼 이유는 없다. 원형 구조는 역동적인 구성을 취하며 심리 에너지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원형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형과 자아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원형에서 더욱 큰 에너지를 얻는다.

개별 무의식에서 집단 무의식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이 유아기에 경험했던 내용이 의식에 의해 억압되어 형성된 것이었다면 융의 원형은 개인의 경험보다 앞서 존재하는 초인격적 본질이다. 모든 개체 안에 내재하고 있지만 동시에 개체를 넘어서는 무의식, 그래서 융은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조상이 경험한 집단적 기억이나 이미지들이 원형으로 보존되어 집단무의식이 형성되고 이것이 각 개인에게 투과되어 개인의 무의식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의 무의식이 프로이트의 주장대로 꿈이나 농담, 실언 등에서 징후를 드러낸다면 집단무의식은 꿈을 비롯해 신화와 종교는 물론 심지어 과학까지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된다. 따라서 융은 계시, 기도, 신 따위의 종교적 현상과 과학적 진리가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인간 경험은 집단무의식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경험을 자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집단무의식이므로 과학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꿈은, 그 꿈을 꾸는 사람은 물론 그가 속한 전체 사회에 대해서도 함축된 의미를 지닌다는 식의 해석은 다소 신비주의로 흐르는 느낌도 없지 않다.


삶도 학문도 신비 속에서


융은 무의식적인 원형도 역시 자아라는 주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좌표 상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즉 무의식적인 원형이 의식에 도입되기 위한 계기가 바로 자아라는 것이다. 결국 원형과 집단 무의식은 자아(또는 자아의 의식)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융은 중세에 크게 유행했던 연금술을 연구하면서 영혼의 의미를 발전시킨다. 연금술에서 금속이 변화하는 과정은 무의식의 자기실현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연금술사들은 스스로의 영혼을 변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연금술은 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영혼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의식적 주체 : 무의식적 주체) 그런데 변화라는 것은 곧 무엇을 무엇으로 바꾸는 것이므로 적어도 두 개의 항이 필요해진다. 이것이 바로 융이 발하는 ‘대립물의 쌍’이다. 즉,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의 이미지, 감정, 관점이 있을 때 중요한 것은 대립관계의 어느 한쪽도 무의식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하면서 자아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것이 곧 대립물의 진정한 통일이라고 설명한다.

융은 이렇게 분열과 통합을 주장함으로써 일단 주체의 문제는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융의 집단무의식은 너무 총체적인 의미를 띠고 있어 구체적인 방법론이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자칫하면 신비주의로 흐를 소지가 다분한데 융이 만년에 연금술이나 동양 종교의 신비주의에 몰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융의 심리학이 다른 학자들로부터 과학적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너무 ‘문학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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