ㅠ<죽여주는 여자>
OECD 국가 중 나쁜 것으로 최고인 것이 어디 한둘이겠냐 마는 노인빈곤율 역시 세계 최고다. 노인이 살아가기는 지옥과도 같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하긴 중고등학생, 대학생도 살아가기엔 정말 힘든 나라이니 어쩌면 전 세대가 살기 힘든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이 나라가 헬조선이랴! 이 나라를 등지고 이민 가고 싶다고 말한 사람의 비율 역시 30%가 넘는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그 중에서 이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에 집중하고 있는 영화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결코 희망의 100세 시대가 아닌 절망의 100세 시대를 진지하게 묻고 있는 영화다.
소영(윤여정)은 종로 일대에서 ‘박카스 할머니’로 불리며 남자 노인들을 대상으로 윤락을 하는 여자다. 일명 ‘죽여주는 여자’로 소문이 자자하다. 윤락 일을 하던 중 성병에 걸려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서 필리핀 여자가 의사(필리핀 여자 아이의 아버지)를 가위로 찌르는 사건을 목격한다. 가위에 찔린 한국 의사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이 민호(최현준)는 순간 방치된다. 이때 소영은 민호를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옛날 자기가 버린 자기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소영은 위층의 트랜스젠더 티나(안아주)와 옆방에 한쪽 다리가 잘린 장애인 피겨작가 도훈(윤계상)과 함께 산다. 민호는 이 사람들의 보호 아래 이 집에서 잠시 머문다. 그러던 중 소영은 과거 알고 지내던 송 노인(전무송)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그의 친구 집을 방문하게 된다. 송 노인의 친구는 혼자 사는 치매노인이다. 이 노인으로부터 죽여 달라는 부탁을 간곡히 받는다. 처음에는 거절하다 어쩔 수 없이 소영은 그 부탁을 들어준다. 그 이후 차례로 병에 걸린 노인들의 소원인 죽음을 그녀가 대신 실행해 준다. 그러다 경찰에 잡혀가게 되고 그녀 또한 교도소에서…
영화는 얼핏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건드린다. 소수자의 문제, 노인의 성 문제, 혼혈아 문제, 고아 수출 문제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는 노인의 죽음 문제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다. 단순히 존엄사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병든 노인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강하게 던진다. 노인복지는커녕 병든 노인들의 치료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과연 노인들은 살고 싶을까? 80이 된 우리 어머니도 하루 빨리 죽고 싶다고 하니 노인 문제는 결코 허공에 떠도는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나이 들수록 살고 싶어진다고 하지만 내 주위 노인들을 보거나 우리 어머니를 보면 꼭 그렇지 않다. 지루하고 무료한, 그리고 병든 몸을 가지고 무어 그리 살고 싶을까 싶다. 나라도 죽고 싶을 것 같다. 영화 속 소영은 이런 노인들의 어쩌면 간절한 바람을 대신 해주고 있는 숭고(?)한 여자인 것이다.
사람에게 태어날 권리는 없다. 어쩌다보니 태어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겐 죽을 권리도 없다. 권리로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 또한 권리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한 번 태어났으면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운명이고 의무이다. 많은 종교에서 자살을 최고의 죄악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로 이런 맥락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수명은 늘어났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행복한 일인지 아니면 불행의 씨앗인지는 모르겠다. 건강하게, 의미 있게 오래 살아야지 무료하면서 외롭게 병들어 사는 것이 사는 것이겠는가. 인생은 고해라지만 정말 병들어 무료하게 오래 사는 것이야말로 고통 중의 고통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같이 노인복지가 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서는 차라리 소영 같은 할머니 한 명 쯤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천벌 받을까…
영화는 진지하게 이 질문을 끝없이 던진다. 죽을 권리, 특히 외롭게 병든 노인의 죽을 권리는 가능한가? 영화 속 제발 죽여 달라는 병든 노인들의 간절한 부탁이 아직은 젊은 내 가슴을 세차게 때린다. 내가 벌써 나이를 먹는 것인가. 그 노인들의 들어줄 수 없는 간절함이 헛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20년 뒤 내 모습이여서는 아닌 것 같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유에는 어떤 슬픔과 안타까움이 있어서는 아닐까… 그것이 인생이라는… 바로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실존적인 불안… 그래서 더 슬프고 아프다. 영화가, 인생이!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거냐?” 치매 걸린 노인의 이 한 마디가 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종종 되새기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벌써 40대 중반이 되었는지, 이러다 70이 금방 되는 건 아닌지… 영화는 이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면서 아주 덤덤하게 과하지고 덜하지도 않게 보여주고 있다. 윤여정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과 연기가 돋보인다. 또한 큰 주제를 작은 주제들이 잘 받쳐주고 있으며 둘 사이의 앙상블이 뛰어나다. 거창한 거대 서사보다 이런 잔잔하면서 우리 실생활의 문제를 다룬 작은 영화가 때론 더 돋보일 때가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개인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