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통해 인생 음미하기

by 방정민

【대학】 공자의 가르침 중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내용만 추려 모아놓은 책입니다. 아주 짧아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원래 <예기>의 한 편이었던 것이 독립해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 대학이라는 이름을 찾아야 할 때


- 大學章句(대학장구) 1 장, 4장 -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脩其身;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 선치기국; 욕치기국자, 선재기가; 욕제기가자, 선수기신;

欲脩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욕수기신자, 선정기심; 욕정기심자, 선성기의; 욕성기의자, 선치기지; 치지재격물.)

대학의 도는 명덕(明德)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고, 至善(지선)에 머무르는 데 있다.

옛날 명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다스렸고, 그 집안을 바로 잡으려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았다. 또한 몸을 닦으려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했고,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했는데, 앎을 지극히 함은 사물을 구명(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듦)하는 데 있다.



흔히 말해 대학 강령과 8조목이라는 겁니다. 고등학교 때 한 번쯤은 들어보고 공부해봤을 겁니다. 저는 여기서 거창한 말보다는 ‘대학(大學)’이라는 말의 본뜻을 다시 한 번 주장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대학이 고대 그리스(상아탑)와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 기원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동양에도 대학이라는 의미와 이 의미를 가르치는 기관이 있었기에 동양의 것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 8조목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큰 학문’이라는 뜻의 대학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의 대학은 전혀 그렇지 않죠. 마치 공장에서 뽑아내는 고급 물건처럼 스펙 좋은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대학이 그 본래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산업일군양성소로서의 기능만 계속 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대학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 대학교가 살고 대한민국이 살 수 있습니다.

◆ 홀로 있음을 삼가야 한다 - 신독(愼獨)


- 大學章句(대학장구) 6 장 -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소위성기의자: 무자기야, 여오악취, 여호호색, 차지위자겸, 고군자필신기독야!)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소인한거위불선, 무소부지, 견군자이후염연, 엄기불선, 이저기선. 인지시기,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여견기폐간연, 즉하익의. 차위성어중, 형어외, 고군자필신기독야.)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는 것과 같이 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호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자겸(스스로 만족함)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

소인이 한가로이 거할 때 불선한 짓을 하되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가, 군자를 본 뒤 겸연쩍게 그 불선함을 가리고 선함을 드러내나니, 남들이 자기를 보기를 자신의 폐간을 보듯이 할 것이니, 그렇다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것을 일러 ‘중심에 성실하면 외면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는 삼가는 것이다.



제가 중학교 때 도덕교과서에도 신독(愼獨)이 나왔는데요, 그때는 사춘기라 그 뜻을 과도하게 성(性)적으로 빠지지 않도록, 또는 잡념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홀로 있음을 삼가’는 것이 좋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나이가 드니 그 의미가 더 크게 마음속에 다가옵니다.

아무리 의지가 굳센 사람이라 할지라도 혼자 있으면 나태해지기 마련입니다. 위에서도 나오지만 성실하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인데, 혼자 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한 치의 흩트려짐도 없이 성실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사실 약간의 흩트려짐도 있어야 인간적이긴 하죠). 어쨌든 군자는 스스로에게 당당하기위해, 성실하기 위해 홀로 있음을 삼갔다고 하니 우리도 이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봐야겠습니다. 성실하게 산 흔적은 나이가 들면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얼굴은 자신의 삶의 거울이죠. 내면의 거울에 신경 쓸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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