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담론

by 방정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허구’>


오늘은 한 영화를 깊이 있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일반적 성격에 대해 간단히 말해보고자 한다.

‘태초에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라는 말이 있다. 서사 장르에 대한 쉬운 명제다. 서사란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는 장르는 정말 태초부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장르로 분류하고 문학으로 그 위상을 끌어올린 것은 근대 이후지만 그 근본적 성격은 인간이 말을 하고 사색하기 시작하여 사회를 형성한 이후부터 이야기라는 것을 인간이 아주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때 이야기는 학교에서 배운 ‘허구’다. 허구는 한 마디로 거짓이지만 개연성 있는 거짓이다. 이 개연성 있는 거짓이야말로 인간의 본질, 특히 인간사회나 인간관계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기에 중요한 것이다. 쉽게 말해 한 사람이 생활하는 한 달간의 일상을 녹화해서 편집없이 보여준다면 이 영상에서 무슨 인간의 본성, 또는 인간사회나 인간관계의 본질을 느낄 수 있겠는가! 최소한 이 영상을 찍은 사람, 즉 감독이 그의 의도대로 편집을 해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것이 제일 중요한데, 바로 허구다. 한 달, 또는 일 년간 생활하는 모습을 2시간으로 편집한다고 해서 이 영상(영화)을 보고 누가 인생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을까. 한 달간 어마한 일(인생에서 서너 번 발생할 뻔한 일)이 발생했다면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허구는 사람이 하늘을 나는 그런 거짓말이 아니라 인생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거짓으로 내 인생에서는 경험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반드시(또는 거의) 경험할 수 있는 거짓이다. 이런 허구를 2시간 안에 잘 편집을 해야 그것을 보는 관객이 감동을 받고 인생에 대해 성찰하고 관계(인간관계, 사회관계)에 대해 사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허구가 서사장르의 기본 중의 기본인 것이다. 최근에는 감동(울림)을 독특한 방식으로 주기 위해‘판타지 리얼리티’라는 개념으로 ‘영화적 허구’ 또는 ‘영화적 사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런 시도도 오래 되기는 했지만. 아무튼 ‘허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패, 또는 작품의 깊이가 결정되는 것이다.


위의 정의로 영화 세 편을 간단히 비평하고자 한다. 영화 전문 비평가와는 다른 일반 영화비평으로. (나도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기에 준전문가라 할 수 있을지도)

영화 <듄: 파트 2>는 영화 전문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장르와 이미지들이다. 원작소설을 보지 않았으므로 전문적으로 비평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영화만 보면 실망 그 자체다. 그런데 왜 전문가들은 이 영화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영화 발전사에서 사사와 함께 이미지가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게 된 것은 분명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서사장르다. 서사가 기본이다. 이 영화는 전개도 느릿느릿한데다 정말 별 서사가 없다. 장치만 굉장히 복잡하게 해놨을 뿐 우리가 수천 번은 더 봐왔던 서양의 중세이야기다. 일군의 사람들이 주인공을 메시아라고 부르짖고, 부모의 복수를 하고, 종교 전쟁ㆍ영토 전쟁을 하는데 그것도 칼싸움만 3시간 동안 한다. 영화의 배경이 만년대인데 말이다. 만년 대에 인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류라는 말이 나온다. 다른 행성의 외계인도 나오지만(외계인과 인류가 똑같은 모습이라는 설정도 너무 무성의하다). 만년대에 과연 칼싸움을 할지는 의문이다. 한 마디로 새로운 서사가 하나도 없다. 영화의 배경만 만년대이고 다른 행성이지 사실 중세 서양의 이야기다(심지어 영화 중간에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에서의 검투사 장면도 나온다). 이야기 전개는 느리고 그 얼개는 너무 많이 봐왔던 것이다. 모래행성과 모래괴물이라는 이미지만 약간 새로울 뿐이다. 이런 영화에 전문가들이 왜 이리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전문가적 허영이다. 이미지만 약간 새로울 뿐 새로운 서사가 하나도 없는 영화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말 그대로 서사가 전혀 없다. 허구적 서사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민 간 여자와 한국에 남은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려면 허구적 서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기게 되고 인연과 관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을 텐데 전혀 그런 것이 없다. 굳이 이민이 아니라도 한 번 이상은 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약간 서로 좋아했던 남녀가 십여 년 이후 인터넷 영상으로 만나서 대화하다 다시 헤어진 경험 말이다. 이게 과연 영화가 될까? 영화가 되려면 여기에서 바로 허구적 서사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말 인생에 대해 성찰할 것이 아닌가! 영화는 초등학교 졸업 후 12년 만에 인터넷 영상으로 만나 설레다가 다시 헤어진다. 그 후 다시 12년이 지나 실제 만나는데 아무 일이 안 벌어진다. 어색하게 만나서 몇 마디 주고 받다가 바로 헤어진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자주인공이 인연, 전생 같은 말 몇 마디 하는 것이 전부다. 솔직히 내 인생보다 더 드라마틱하지 않고 재미없다. 위에서 말했듯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로는 관객에 재미는커녕 감동도 줄 수 없다. 한 번 더 말하지만 누군가의 1년 간의 생활을 요약해 보여준다면 거기에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자기는 경험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경험했을 허구가 들어가야 거기서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다큐보다 재미없고 KBS 인간극장보다 재미없다. 감동도 성찰도 느낄 수 없다. 윤회, 인연, 전생 같은 말 몇 마디 나누는 것으로 인생을 성찰한다면 이것이 코미디다. 미국 전문가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자기들의 문화에서 볼 수 없는 불교의 인연, 전생, 윤회 같은 말이 나와서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최근 한국문화가 뜨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슬쩍 넣었을 것이다. 차라리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들었으면 더 재미있고 인생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여운 것들>은 그나마 볼만한 영화다. 감독의 영화가 굉장히 독특해서 그 정신세계를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다. <더 랍스터>에서도 그랬지만 인간의 본질을 캐묻는 영화다. 피조물인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 창조물과 피조물은 무엇이며 그 관계는 어떠한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남성성, 여성성, 계급, 제국주의, 과학, 인간의 윤리를 비판, 성찰하고 있다. 굉장히 다층적이라 간단히 분석하기도 힘들 정도다. 이 영화의 허구는 고전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판타지 리얼리티’ 내지 ‘영화적 허구’로 보아야 한다. 과학이 사람과 동물을 육체적으로 결합한다는 설정 또는 어른의 몸에 아이의 뇌를 이식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점은 역시 서사가 조금 딸린다. 죽은 여성을 과학자가 되살리는데 어린 아이의 뇌를 이식시킨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이 여자는 굉장히 빨리 진화하는데 그러면서 세상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위에서 말했듯 남성성, 페미니즘, 윤리 등을 비판ㆍ성찰하고 있다. 문제는 이 여성이 세상을 알아가는데 거의 대부분을 성적으로 알아가는 것이다. 굉장히 야한 부분도 많이 나오는데 아주 선정적이지는 않다. 크루즈 배에서 흑인, 부유한 백인여성과 나누는 대화와 경험 서사만 인간본성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있고 그 외 나머지 서사는 대부분 여성 주인공이 성적 경험을 하는 것으로 채운다. 이 부분을 조금 다층적 서사로 채웠다면 거의 완벽한 영화가 될 뻔했다.


아무리 변해도 영화는 서사장르다. 서사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서사를 어떻게 새롭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달려있다. 감독은 이 서사에 더 집중해 주기 바란다. 영화전문가들도 이 점 명심하면 좋겠다. 괜한 (영화의)지적 허영심에 집착해 서사가 엉망인 영화를 이미지만 보고, 또는 아주 독특하기만 하면 과하게 칭찬하는 우를 범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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