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서사가 중요한 이유>
영화는 서사장르다. 아무리 컴퓨터나 CG의 발달로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라지만 기본이 서사장르이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는 서사를 우선 잘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주제가 이야기 속에 잘 녹아 있어야 함)를 잘 꾸며내고 인물들을 그 이야기 속에 잘 배치해야 서사장르는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 이미지를 잘 활용하면 금상첨화가 된다. 즉,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가 된다든지. 그러나 최근에 오랜만에 활약하고 있는 이명세 감독은 이 기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서사를 없애고 이미지만 좋게 만들어봐야 영화는 실패한다. 이명세 감독은 이 사실을 왜 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광고가 아니다. 의도적 외면인지 실력부족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서사의 측면에서 영화 두 편을 간단히 분석하고자 한다.
<글래디에이터2>
24년 만에 속편 <글래디에이터2>가 개봉하였다. 80대의 리들리 스콧감독의 역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1편과 비교해 아쉬운 건 사실이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는) 노감독의 역작에 박수를 보내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일단 이 영화의 장점은 콜로세움에서의 검투장면인데 정말 대단하다. 사람 대 사람의 전투 장면도 그렇지만 코뿔소나 살인원숭이와 인간의 대결, 특히 모의 해상 전투는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화려한 볼거리를 던져준다. 다만 여기에서도 조금 아쉬운 건 검투장면 횟수를 조금 줄이고 한 번의 검투장면 시간을 늘려야 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콜로세움 모의 해상 전투 씬의 시간이 조금 짧다. ‘와’, 하다가 ‘뭐지? 왜 벌써 끝나?’ 하는 느낌이 든다.
1편에서는 러셀 크로우의 카리스마가 영화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웅 서사(대단한 재능을 타고 났으나 악인의 방해로 고생하고 위험에 처하다 이겨내고 결국 성공하여 영웅이 돼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는 모든 인류의 문학에서 보이는 전형이다. 1편에서 서사는 이 전형적인 영웅서사를 따랐다. 거기다 러셀 크로우의 대단한 연기가 한 몫을 한 것이다. 그러니 한국관객들도 무리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주인공과 대적하는 로마 황제 역의 호아킨 피닉스의 악역 연기도 주인공 못지않았기에 영화는 더 좋았다. 그런데 2편에서는 서사가 꽤 많이 아쉽다.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의 아들 루시우스(폴 매스칼)는 콜로세움에서 검투장면만 실컷 할 뿐 큰 역할이 없다. 그러다 영화 끝 부분에서 느닷없이 공화정을 하자고 외친다. 실컷 검투장면만 하다가 느닷없이 공화정을 하자고 하니 설득이 안 되는 것이다. 그에게 막시무스 같은 서사를 부여했어야 했다. 어떤 서사 끝에 왕정이 아닌 공화정을 하자고 외쳐야 설득이 될 것 아닌가, 고대 왕정 시대였는데. 그러다 보니 악역인 마크 리우스(덴젤 워싱턴)만 영화에서 돋보인다. 형편없는 왕을 몰아내고 자신(흑인인데도 불구하고)이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진 악역이 오히려 더 돋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에 왜 황제가 두 명인지, 악랄한 황제를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는 로마 전쟁영웅 아카시우스(실제 인물인지 허구의 인물인지 헷갈림)의 역할도 있는 듯 아닌 듯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한국 영화관객이 고대 로마 역사까지 알아야 더 재밌게 볼 수 있는데 그렇게 공부해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거의 없다. 가령, <서울의 봄>이 유럽에서 개봉한다면 인기가 있을까? 장담하는데 참패할 것이다. 유럽사람들이 전두환과 한국의 현대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영화(역사영화지만 허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모 아니면 도다. 그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독은 모든 문화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서사를 따랐어야 했다. 아니면 더 설득력 있게 묘사하든지. 결국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콜로세움에서의 검투 장면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노감독의 역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흥행은 참패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개인별점: ★★★☆
다음은 <히든 페이스>다. 김대우 감독은 한국영화에서 아주 독특한 한 측면을 점하고 있는 감독이다. A급 상업영화에서 성적인 면, 즉 에로티시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방자전>, <인간중독>, <음란서생> 등을 만든 감독이다. (이전에 영화 공부할 때 에로티시즘으로 유명한 외국 감독들 영화도 공부했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이 잘 안 나서 생략하고) 에로티시즘을 전면에 내세운 감독 한 명 쯤은 한국에서도 있어야 하기에 소중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뭔가 아쉽다.
이번 작품 <히든 페이스>는 원작이 있다고 하는데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비교는 힘들고 김대우 작품만 분석하면, 섹스 장면 수위를 문제 삼는 건 하위 평가고 이 영화에서 충분히 가능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성행위 수위가 아니라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밀도 있게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한국 영화에서 봇물 터지듯 끼워 넣는 동성애 코드를 슬쩍 집어넣고 만다. 그 동성애 코드조차 주제를 진지하게 드러내는데 사용되지 못하고 일회용으로 소모되고 마는 느낌이 든다. 즉 동성애를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감독은 동성애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든 동성애든 사랑은 결국 한낱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사랑, 또는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이 주제를 말하기 위해 동성애도 가지고 오고 이성애도 가지고 오고 불륜도 가지고 오고 만다. 영화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떤 서사가 상당히 부족하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에 서사를 더 부여했어야 했다.
이 무슨 이렇게 쉬운 도구(?)가 있는가! 사랑이, 인간관계가 도구로 취급되는 현 세태를 비판하고 싶다면 조금 더 진지하게, 밀도 있게 다가갔어야 했다. 너무나 쉽게 동성애 코드, 불륜 코드를 주제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관객은 섹스 수위에만 골몰하고 마는 것이고 영화가 끝나면 이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관객은 결코 수준이 높지 않다. 감독이 영화수준을 높게 만들어서 그 부수 효과로 관객수준 또한 덩달아 높여야 한다. 그런데 감독의 수준이 그리 높지가 않다. 관객 또한 수준이하인데 이 영화를 어떻게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만큼 영화 서사는 힘들다. 서사가 주제와 잘 어울려야 하고 또한 서사가 주제와 어울린 채 진지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면. 그래야 좋은 영화, 훌륭한 영화가 되는 것이다. 말이 쉽지 결코 쉽지 않다. 영화에서 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개인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