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우민호 감독이 <하얼빈>으로 연말 극장가를 찾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미뤄졌다 이번에 개봉한 듯하다. 경기도 좋지 않고 극장가도 얼어붙은 데다 윤석열의 내란으로 사회가 더욱 어수선한 때 이 영화 흥행이 어떻게 될지 의문이다. 그런데 감독 자신이 원작 없는 각본을 썼을 때 그 영화의 평을 아주 좋게 받은 적이 별로 없다. 최고 좋은 평가를 받은 <내부자들>은 만화 원작이 있는 것이고 그 외 <남산의 부장들>은 그 각본에 있어 썩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일단 각본이 좋아야 영화 잘 찍을 것 아닌가. 물론 각본이 좋아도 못 찍는 감독이 있긴 하지만 그런 감독은 도태될 것이고. <하얼빈>도 <남산의 부장들>처럼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 경우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어떻게 조화롭게 편집할 것인지, 그리고 어디에 초점을 두고 밀도 있게 영화를 만들 것인지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결정된다. 거기다 (약간 결은 다르지만) 이번 영화는 윤석열의 내란ㆍ외란 폭동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때 개봉하여 그 시사하는 바가 조금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 점 또한 영화 스코어에 어떻게 작용할지 의문이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현빈)과 작전참모 우덕순(박정민) 등이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일본군에 큰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안중근은 당시 만국공법에 의거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풀어준다. 그러나 근거지가 발각되어 곧바로 일본군의 습격이 이어지고 동료들이 많이 죽고 만다. 겨우 살아 남은 안중근은 독립군 동료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을 절단하며 자신이 직접 1909년 러시아를 방문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죽이겠다고 한다. 그러나 최종 작전 회의가 일본군에 발각되어 동료 독립군(이동욱)이 죽자 밀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동료들에게서 퍼지게 된다. 그러자 동료들은 하얼빈에서 거사를 치를 것인지 다른 역에서 치를 것인지 혼돈에 빠진다. 그러나 결국 안중근은 밀정을 찾아내고 그 밀정을 역이용(가짜 정보를 일본에 흘리게 해서)해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사살한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거사는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빤한 사실을 상업영화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큰 돈을 들인 대작이라면 더욱. 너무 허구를 많이 넣으면 역사를 왜곡한다고 욕 먹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용이 너무 빤해 재미가 반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선‘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어떻게 적절히 배합할 것인가’이고, 다음은 ‘어떻게 압축적으로 사건을 밀도 있게 다루어 관객에게 긴장감을 선사할 것인가’인데, 감독은 비교적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였다고 생각된다. 단 대작치고 그만큼의 흥행(700만이 손익분기점이라고 함)이 될지는 의문이다.
안중근 역의 현빈과 우덕순 역의 박정민은 실제 인물이고 그 외는 가공의 인물이다. 특히 밀정으로 나오는 조우진 인물을 삽입하여 영화적 재미는 물론이고 당시 일제 치하 독립투사들의 어려움과 현실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하얼빈 거사에서 실제 밀정은 없었지만 일제 강점기 때 밀정으로 독립투사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감독은 공부인 역의 전여빈을 통해 일제 치하 여성 독립투사들의 역할도 잊지 말 것과, 독립운동은 한 인물의 영웅적 행동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피의 연대로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아무튼 감독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잘 배합해 영화적 재미는 물론이고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는데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하얼빈 거사와 안중근을 다루기 위해 시종일관 무겁고 비장한 톤으로 영화를 덧입혔다. 자세히 안 보면 배우들의 얼굴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영화의 톤이 어둡고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역사를, 결말을 알기에 더욱 비장하다. 이 비장미는 낮고 웅장한 음악으로 완성된다. 이런 영화적 장치를 통해 감독은 빤한 이야기를 강한 메시지로 치환하며 영화적 서사를 완주한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면 독립이 가능하다.”는 안중근의 말을 통해, 그리고 밀정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며 모두 독립운동에 연대해야 함을 감독은 강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면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감독의 의도는 내란ㆍ외란 수괴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사건과 맞물려 현재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결은 조금 다르지만 결국 같다)가 되기에 충분하다. 윤석열, 김건희, 김용현, 그리고 국힘과 그 동조 세력들은 내란의 정당성을 옹호하며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반민주주의적이고 독재적이고 매국적인 발상을 가진 악마들이 이 나라에 너무 많다. 이들과 맞서 이기는 방법은 ‘포기하지 않고 연대해 끝까지 나아가면서 싸우는 것’밖에 없다. 그러면 끝내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메시지와 상통한다. 100여 년 전 독립투사들의 행동이 현재 반민주주의, 헌법파괴 독재 세력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들을 구할 수 있는가.’라는 한강의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이런 소중한 가치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현재진행형 메시지이다.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단순한 구도라는 단점은 상쇄되고 울림이 큰 영화가 되고 있다.
개인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