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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an 02. 2018

둔식가의 모로코 음식

모로코 #4

# 둔식가(鈍食家)

    1.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의 반댓말

    2. 맛에 둔한 취향을 굳이 장점으로 포장하기 위해 지어낸 말



10일은 짧은 시간이다.

특히 유럽이나 다른 가까운 곳이 아닌 한국에서 바로 간 여행이라면, 앞 뒤 비행시간을 빼면 더욱 짧다. 모로코에 머문 시간은 정확히 8일하고 반나절이었다.


단기 여행자에겐 한끼 한끼가 소중하다.

한정된 시간에 그 나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그 나라 음식을 먹는 것이니까.

그 나라를 위장에 넣어야 비로소 그곳에 온 걸 실감할 수 있으니까.

나같은 둔식가에게도 그건 진실이다. 미식으로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을 뿐.



8일하고 반나절 동안 먹은 음식은 아마 다른 여행자가 올려놓은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과 설명이 더 식욕과 여행욕을 자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byte를 낭비하며 내 하잘것없는 bite를 적어놓는 이유는,


둔식가에게도

이국의 음식을 맛보고 음미할 의욕이 있다는 걸 알려두고 싶어서다.




1. 올리브


모로코 여행을 하다 보면, 사막을 헤치고 나와 마주한 아라비아의 도시 같은 번잡함 때문에 가끔 이 나라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를 잊곤 했다.


이 곳은 지중해의 근처이자 대서양 연안이었고 유럽의 최근 거리에 있는 북아프리카 나라다.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에 남부는 프랑스에, 북부는 스페인에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말인즉슨, 이 나라의 섭생 취향에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지역이 반영돼 있다는 얘기다. 올리브는 그래서 당연하다. 올리브는 식전 빵과 함께 나오기도 하고, 메인디쉬에 곁들여 나오기도 한다. 샐러드에는 당연히 들어간다. 오일에 범벅이 된 올리브를 식전에 씹는 건 짠맛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동시에 목구멍에 기름칠을 하는 느낌이어서 매우 좋았다. 가끔은 올리브 덕에 아낌 없이 나오는 식전 빵을 너무 많이 먹게 돼 메인디쉬가 나올 즈음에 뇌에서 내리는 공격 신호가 약해져서 당황할 때도 있었다. 이 아까운 한끼를 남기면 안 되는데...하는.


마라케시에서 시작한 여정이 페스, 쉐프샤오엔을 거쳐 수도인 라바트로 갔을 때는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던 북부 지역이어서 스페인어는 자유로웠지만. 하지만 접시에 담아 나오는 올리브는 더 돋보였다. 우리가 먹은 식당에서는 전부 알이 큰 올리브를 통으로 내놓았다. 심드렁하게 작은 올리브 그릇을 툭 내어놓는 모습에서 익숙함과 자부심이 동시에 읽혔다. 12월의 여행이었지만, 봄여름가을 내내 따가웠을 볕을 그대로 맞고 자랐을 올리브 자체도 심상치 않았다. 그것은 열매이자 씨앗이었고, 음식이자 자존심이었다.



2. 식전 빵

페스의 메디나에서 빵을 굽는 가게를 구경했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 6개 국어로 가이드를 하는 요셉 씨는 골목에 있는 빵집 주인과 인사를 하다가 우리를 보고 구경하고 싶냐고 물었다. 단기 여행자인 우리로서는 '내실'을 보는 기회라면 늘 오케이였다.

 

벽 깊숙이 있는 화덕 앞에서 한 남자가 피자를 꺼내는 판과 같은 넙적한 판에 올려진 빵반죽을 들이밀고 다 구워진 빵을 내었다. 판에는 3~4 미터는 족히 될 장대가 연결돼 있었고 벽 쪽에 가깝게 선 우리 발 끝에 닿을 정도였다. 날이 더워 화덕 앞이 괴로워질 때 조금 떨어져서 장대를 이용하지 싶었다. 화덕 앞의 남자는 관광객이 익숙한지 묵직하게 미소지어주었다. 다른 남자가 회칠이 된 벽의 하얀 선반과 골목으로 향한 유리 진열장에는 다 구워진 원반 모양의 빵들이 차곡차곡 세우고 있었다. 한 개가 레귤러 피자 정도의 지름을 가진 두툼한 빵이 수십 개 한 자리에 세워져 있는 걸 보는 건 매우 흡족한 일이었다. 빵 가게 특유의 고소한 냄새와 더불어 시각이 즐거웠다.


좁은 계단으로 2층으로 올라가니 두 명의 남자가 반죽으로 빵을 만들고 있었다. 반죽이 발효되는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온 공간에 옅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없이 쌓인 포대가 이들의 노동을 대변하는 공간이었다. 곱게 갈린 가루가 반죽이 되고, 반죽이 빵이 되는 간결한 과정 안에 시간이 놓여 있었고 그 시간 안에 그들의 삶이 얹혀 있었다.



가이드 요셉 씨의 말에 따르면 메디나(구시가지) 안에서도 구역이 나뉘어지는데 한 구역 당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건물이 반드시 있다고 한다. 모스크, 공용 식수대, 하맘(목욕탕), 학교 그리고 빵집이다. 모든 식당에서 식사를 시키자마자 이 두툼한 빵을 가득 담아 내어오는 것이 이해가 됐다.


 이 식전 빵은 그냥 식전에 먹는 빵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와 물과 교육과 청결과 같은 레벨의 무엇이었다.

물론 모든 배경을 떠나 이 빵은 매우 담백하고 맛있다. 가끔 메인 디쉬의 적이 될 정도로.



3. 꼬치구이

해가 강하고 물이 적고 가축이 많은 나라에서 꼬치는 일상적이다. 중국 위구르 지역이 그랬고,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 그랬다. 화덕에서 나오는 그곳의 꼬치들은 덩어리가 크고 퍽퍽하다. 더 퍽퍽한 빵과 함께 그걸 씹고 있으면 내가 흙먼지가 되는 기분이랄까. 모로코의 꼬치는 화덕이 아닌 철판에서 구웠다. (물론 화덕에서 굽는 데가 있을 텐데, 내가 주방을 본 곳들은 대개 철판에서 조리했다.) 고기 덩어리는 적당한 크기였고 수분은 적당히 남아 있다. 중국의 꼬치와 다른 점은 소금을 포함한 양념을 거의 안 한다는 점이다. 거의,라는 말을 쓴 이유는 아예 소금간조차 안 한 곳도 있었고, 약간의 소금간을 한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금 외의 향신료는 뿌리지 않는다. 적어도 난 보지 못했다. 중국과 인도, 터키 심지어 러시아나 동남아를 여행할 때 먹었던 음식보다 훨씬 더 담백하다. 테이블에는 몇 통의 양념통이 놓여져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과하게 쳐서 먹지 않는다.


이국,이라는 단어와 이국적,이라는 단어에서 상식적으로 떠오르는 수많은 향신료와 그것으로 범벅이 된 음식은 적어도 모로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메디나에 있는 시장에서도 향신료를 파는 가게가 간간이 있지만(종류도  많다) 이상하게 우리가 먹은 음식에는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말하자면, 우리의 '상식 속 이국(異國)'이 해체되는 요리이다. 한 시골 의사에 대한 에세이인 존 버거의 '행운아'의 한 구절을 굳이 가져오자면, 모로코의 담백한 음식을 먹는 건 "수년 동안 상식이라는 말이 저에게는 매우 지저분하게 느껴지게" 되는 경험이자, "상식에 따라서 행동할 때는 거의 모두 실패를 맛봐야 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간이 안 된 꼬치는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꼬치와 같이 나오는 감자칩과 밥 역시 간간하다. 참고로 같이 여행한 친구는 모로코의 갓 튀긴 감자칩을 최고로 꼽았다.




4. 베르베르 오믈렛


Berber라는 말은 북아프리카의 토착민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쓰자니 제국주의 국가 팜플릿에 적힐 멘트인 듯싶다. 누군가를 지칭하는 건 늘 타자이고, 아마 베르베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사용한 타자는 베르베르에게서 이득을 취한 제국주의 유럽 국가일 것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 추측 가득한 잡설을 생각하다보면 베르베르라는 단어를 멀리하고 싶지만, 그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여기저기 적어놓은 말이라 그냥 쓸 수밖에 없다. 굳이 나 혼자 베두인을 고집해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블루맨(blue man)이라는 매우 마블스러운 단어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튼 모로코에서 먹은 오믈렛은 두 가지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두툼한 오믈렛(메뉴판에서 앞에 아무런 수식어가 붙지 않는)과 베르베르 오믈렛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은 '노 브랜드' 오믈렛이었다. 그게 양도 많고 익숙한 맛(밍밍한 맛)이었다.


베르베르 오믈렛은 계란물에 약간의 치즈를 넣어 얇게 부쳐낸다. 김밥 말 때 쓰는 지단 정도의 두께다. 역시나 간은 소금간이 옅게 돼 있다. 그게 끝이다. 풍성한 식사를 원한다면 피해야 할 메뉴이자, 다이어트를 원한다면 택할 법한 메뉴이다. 일행이 있어서 이것저것 시켜는 와중에 하나로는 나쁘지 않다. 먹다 보면, 이국적인 메뉴를 원하면서도 익숙한 맛을 찾는 서양 관광객을 위해 대충 개발한 음식이라는 생각도 조금 든다. 물론 매우 비(非)베르베르적인, 개인적인 의견이다.



5. 오렌지 주스

이곳의 오렌지 주스는 노동집약적 음식이다. 주문을 받으면 일단, 수북이 쌓이 오렌지 더미에서 오렌지를 들어 칼로 반으로 자른다. 그리고 단순한 구조의 기계에 얹어 손으로 힘껏 누른다. 이걸 반복한다. 한잔의 오렌지 주스에 5-6개의 오렌지가 소모된다. 사하라 사막 투어를 가는 휴게소에서 친구가 두 잔을 시켰을 때, 거의 차가 출발할 준비를 할 때에야 나왔다. 시간집약적인 음식이기도 한 셈이다. 가격은 매우 싸다. 식당에 따라 10~20디르함(1000~2000원)이니 한국에서 원액으로 먹는 오렌지 주스를 생각하면 매우 흡족한 가격이다. 그래서, 많이 마셨다. 식당마다 주스 메뉴에 석류주스, 아보카도 주스, 바나나 주스 등이 있었고 가끔 아보카도나 바나나를 택하기도 했지만, 제일 싸고 제일 만족스러웠던 건 역시 오렌지 주스였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델몬트 훼미리 주스의 선진성에 포섭당한 영향일 수도...)


손으로 눌러짜지 않고 전기 믹서를 이용하는 노점을 수도 라바트에서 딱 한 군데 봤는데, 재밌게도 그곳은 관광객이라고는 1도 없는 현지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장이었다. 나무 뒤쪽 어디서 끌어온 전기로 믹서를 돌려 주스를 만들던 그 좌판의 청년은 우리에게 플라스틱 테이크 아웃잔과 유리잔 중에 선택하라고 했다. 이것도 다른 데선 보지 못한 광경이어서 놀라다가 얼결에 플라스틱 잔에 달라고 했는데, 택시 못 잡고 길을 알려준다는 삐끼한테 30디르함을 뜯긴 직후여서 세 명 일행 모두 거의 원샷을 했다. 지금도 그냥 유리잔에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그곳의 오렌지 주스는 한 잔에 7 디르함이었다.


6. 달팽이 찜

여기에 쓸까 말까 고민했는데 껴준 음식이다. (쓸까 말까 할 때는 써라,라는 구절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모로코 여행기에 보면 꽤 많이 등장하는 아이템이기도 한다. 식재료의 특이성 측면에서 이국적,이라는 상식에 매우 부합하고 사진으로 찍어도 그림이 좋다. 수북한 달팽이와 하얀 김이 어우러지고 그 뒤에 하얀 가운을 입은 숀 코너리 같은 주인이 있는 사진은 대충 찍어도 만족스럽다. 마라케시의 제마엘 프나 광장에 밤에 가면 음식포장마차 존이 넓게 형성되는데 그 한쪽에 달팽이 찜 포장마차가 일렬로 죽 서 있다. 그 광경만으로도 일단 '먹고 들어가' 준다. 어떤 여행기에 달팽이의 더듬이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서 거부감이 든다고 했는데, 직접 먹어보니 그 부분은 나한테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니 그냥 몸통의 일부일 뿐이었다. 달팽이를 뽑아 먹으며 떠올렸던 건 (아마 양식당했음이 분명한) 달팽이들이 물기 가득한 입사귀들위에 빼곡이 둘러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이었다. 물론 그걸 볼 기회는 없었다.


이쑤시개로 찍고 살짝 스냅을 줘서 뽑아 먹는 건, 고둥이나 소라 먹는 거랑 같다. 같은 계열의 애들이니 맛도 비슷하다. 특유의 향미가 있진 않다. 다만 이곳의 찜에는 역시나 간이 거의 없었다. 소금간이 좀 더 진했으면, 날씨도 쌀쌀했겠다, 국물을 들이키고 싶었을 텐데 밍밍해서 그닥 의욕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빙 둘러 앉아 먹던 모로코 사람들은 국물을 원샷하고 더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고혈압이 적은 나라일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제마 엘 프나의 달팽이 포장마차는 관광객에게 매우 유명해서 이게 혹여나 자국의 이국스러운 아이템을 관광객 용으로 심화 발전 시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잠깐 했는데, 관광객 외에 현지 사람들이 훨씬 많은 상황에서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다. 그리고 마라케시 이후 다른 시장을 다닐 때도 간간이 어둔 골목에 조그만 수레 위에 수북이 쪄지고 있는 달팽이들을 목격했으니 서민적인 음식임이 틀림없다.




전통 음식인 타진(tagine)이나 꾸스꾸스(cuscus)는

구글이나 네이버에 쳐보면 매우 자세한 설명과 고화질의 사진이 있어서 굳이 여기서 첨언할 필요는...


잠깐 덧붙이자면, 혹시 모로코에 여행가서 타진을 시켜서 사진을 찍고 싶으면, 서빙돼 나올 즈음에 종업원이나 사장이 '아 저 놈 관광객이구나'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사진기를 눈에 띄게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테이블에 접시로 놓고 바로 타진 뚜껑을 가져가지않는다. 뚜껑이 닫힌 상태를 못 찍은 타진 사진은...뭐랄까 눈코입 따위 없는 눈사람과 마주한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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