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2월 19일(금) 제주
재선충 방제작업 중인 숲.
숙청된 나무가 타며 내놓는 연기, 전기톱, 포클레인, 트럭 소리...
숲은 감내한다.
선인장도 썩는다.
아무리 날카로워도.
세상 안에 들어와 있다고 느낀 적이 많지 않다.
세상은 거의 3인칭이었고, 막이 오르기 전의 무대 같았다.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술자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부피가 작아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세상의 어느 한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대개 세상과 나 사이엔, 일단 멈춤 표시와 차단바가 내려져 있었고
나를 보호하려는 건지 세상을 보호하려는 건지, 일정한 거리가 유지됐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 행동의 결과물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남겨졌음을 보았을 때
내가 세상 안에 살고 있다는 걸 문득 알았다.
그리고 세상 안에 자리 잡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세상의 눈치를 보게 됐다.
옷을 개고 칭찬을 기다리는 여섯 살 아이처럼,
유독 시험을 잘 친 후에 두근대며 성적표를 기다리는 중학생처럼.
나에게 세상은, 보상과 채찍을 주며 격려와 종용을 반복했고
세상에게 나는, 언어와 시간을 내어주며 불평과 관조를 반복했다.
숨이 헐떡댈 때도, 무료할 때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구성원으로서 꽤 열심히 세상에 맞춰 살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젠가 겪은 듯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와 세상의 친절함이 동등하지 않고 세상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걸 느낄 때,
내가 느끼는 계절이 어쩌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떠오를 때
어쩌면 세상은 내가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관심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와 세상은 애초부터 그런 관계일 뿐이다.
그리하여, 바라는 건,
벌레 한 마리로 초토화되는 나무가 되지 않길,
격리되고 베이고 태워져도 감내하는 숲이 되지 않길,
속이 썩어가도 내색하지 않고 애써 단단해 보이려 하지 않길...
세상은 너의 내연기관에 관심이 없다.
<언젠가 나였던 나에게>는
여행수첩과 일기장에 남아 있는,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거는 시도입니다.
지금의 내가 더 나아졌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