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현재, 현재의 과거
8월 31일 (일) 서울 모처
[그 시절의 나는 이제 없음]을 인정하기.
찾으려 할 필요 없다. 못 찾는다.
과거에 갖고 있던 가능성에 기대지 말기.
후회, 박탈감이 무슨 소용일까.
과거에 숨는 건 또 다른 오류.
과거는 늘 골칫거리야.
많은 것들을 흘려두고 왔으니까.
뒤에 남겨진 것들은 힘은 세지 않아도, 수명이 길지.
중요하지 않아서 두고 떠나왔다고 할 수도 있지만, 들고올 수 없어서 남겨뒀다고도 할 수 있어.
그곳에서만 가능한 것들, 이란 말이지. 그래도, 종종 그것들에게 집착하게 돼.
과거의 나는 이랬다, 과거의 나는 이런 걸 할 수 있었다,
과거의 내가 이런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같은 가정법을 수없이 반복하는 거지.
그런 가정은 위안이기도 했어. 어느 순간까지는.
현재 내가 박혀있는 땅이 굳기 전까지는, 과거를 끌어와 현재의 불합리를 전복하는 상상을 할 수 있었으니까.
저 일기를 쓰는 너도 아직 과거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 예전의 네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가능성에 집착하는 거지. 그런데,
과거에 어떤 삶을 살 수 있었건, 지금의 삶은 다른 종류야.
오랜 시간 동안 만든 지금의 내 일상은, 과거의 네가 갖고 있는 상상 속의 삶보다 더 우선이야. 과거에 숨는 건 이제 지겨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따분하기도 하고. 한번도 제대로 살아지지 못한 과거의 삶들은 이제 별로 의미가 없어. 그래서,
요즘은 절연을 상상하곤 해. 과거의 사람들, 과거의 기억들, 과거의 조건들, 과거의 실수들, 과거의 말들... 그것들을 깨끗이 들어낸 무균 상태의 현재. 그런데 말이야,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한테서 도려내는 게 가능할까?
현재는 늘 전격적이야.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들이닥친다는 거지. 밀려드는 현재의 것들 앞에서 과거는 일종의 필터야. 바로 지금 해야 하는 행동의 기준이자, 지금 느끼는 감정의 근거 같은 거지. 그런 상황에서 과거를 도려내 스스로를 무균 상태로 만드는 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 더 피곤해지는 길이지.
과거의 자신은 집착의 대상도, 절연의 대상도 아니야.
결국 남은 문제는,
뒤에 남겨진 것들과 현재의 나 사이에 있는 이음새가 아닐까.
현재가 과거 없이 존재하지 않듯, 과거는 현재 없이 성립하지 못해. 과거와 현재는 분리된 게 아니라, 약간의 각도가 틀어진 채 이어져있는 거야. 우리는 그 이음새를 들여다봐야 해. 그게 너무 꽉 조이거나 헐겁지 않도록.
현재와 과거를 이은 지금 나의 이음새가 너무 작다는 생각을 해.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관계가, 하나의 여지없는 형태로 굳어버린 게 아닐까.
그 경직성 때문에, 현재가 이리저리 뻗어나갈 각도가 정해져버린 게 아닐까. 그러니,
이음새를 적당히 풀어야 해.
비교적 자유롭게 현재의 각도를 틀 수 있도록.
과거의 현재가 낡지 않도록.
현재의 과거가 소외되지 않도록.
<언젠가 나였던 나에게>는
여행수첩과 일기장에 남아 있는,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거는 시도입니다.
지금의 내가 더 나아졌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