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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l 12. 2018

탁월한 형사물의 조건

[ 탐정 : 리턴즈 ]  이언희 감독 / 2018년

아이는 자라나 어른이 되었고, 부모의 의견에다 자신의 의견을 첨가했다.

(...)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은 과일 주스를 마시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에는 여전히 동감이었다. 또 사람이 가끔 술을 한잔할 수는 있지만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에도 공감했다.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 약간의 스포일러만 있습니다.


형사물의 긴장을 만드는 건 늘 의외성이다.

그래서 무리해서 사이코메트리를 도입하고, 기이한 캐릭터를 가진 천재를 소환한다. 일반인(관객 및 영화 속의 보통 수사관들)이 가질 수 없는 '비상함'으로, 범죄의 배경이 되는 '평범한 현실'을 커버하는 것이다. 영화와 TV시리즈를 막론하고 오락물이라면 더더욱 그 방법을 따른다. 하지만, 국내외의 수많은 형사물을 접하게 된 요즘, 의외성을 생성하는 그러한 장치들은 클리셰가 돼버렸다.


[탐정] 시리즈는, 의외성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여러 가지 클리셰들을 채택하지 않았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탐정사무소라는 틀 정도겠지만, 이는 오락적인 요소를 강화할 뿐, 형사물의 본질은 사건이나 사건 해결에서의 긴장감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노말한 접근방식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체하는 몇 가지의 장점으로 형사물로서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오락영화에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의외로 거대한 서사'다.

코미디 형사물이라는 장르에서 관객들이 별로 기대하지 않을 정도의 규모다. 형사물 전체를 기준으로 봐도, [탐정]의 서사는 특별하다. 이 영화는 사건의 참혹함이나 범인의 극악성 혹은 비정상성(사이코패스 류의)에 기대지 않는다. 전편인 [탐정 : 더 비기닝]도 그렇고 [탐정 : 리턴즈]도 그렇다. 두 영화에서 다루는 건 모두 살인사건이다. 전편에서는 아파트에서 한 여자가 죽고, 이번 편에서는 한 남자가 기차에 치여 죽는다.


이 살인사건들은 그다지 눈길을 끌 만하지 않다. 살인의 형태는 평범하고 살인의 묘사는 과하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히려 이 평범함을 역이용한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건을 두 주인공이 따라가면서, 스토리를 끊임없이 넓히는 식이다. 결국 영화가 끝날 즈음에 전모가 드러나는 서사는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매우 거대하다. 사건의 참혹함, 범인의 비정상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수많은 형사물보다 더.



두 번째 미덕은 의외로 정교한 구성이다.

이는 앞서 말한 거대한 서사와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사건의 시작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기에,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잇따르는 수사 과정과 그로 인한 사건의 전개가 더 정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토리의 전개를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그 구조에 대해선 말할 수 있다.


[탐정] 시리즈의 사건 구조는 단순해 보이면서도 단순하지 않다. 전편과 이번 편 모두, 연쇄살인이라는 구조를 따른다는 점에서 단순하다고 할 수 있지만, 범인의 정체와 사건의 동기를 던져주는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영화는 단선적인 반전과도 거리가 멀다. 벌어진 사건이 센세이셔널할 경우 획기적인 반전으로 스토리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평범한 살인사건이 가지를 쳐가면서 이중, 삼중의 반전, 크고 작은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 두고 있다.



마지막 미덕은 버디무디라는 구조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탐정]은 버디무비의 강박을 교묘히 피해, 부담 없는 두 캐릭터를 조합한다.

대개의 버디무비에서 전반부를 할애하는 건, 두 사람이 '버디'가 돼가는 과정, 그러니까 버디로서의 끈끈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많은 영화에서 나오는 이러한 시도는 그 과정의 어설픔이나 진부함으로 인해 영화 전체를 지루하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의 필연적인 접합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는 전편이자 시리즈의 처음인 [탐정 :  더 비기닝]부터 그랬다. 탐정물 광팬인 만화가게 사장과 노(老) 형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방식을 지키며 투닥거린다. 중간중간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긴 하지만, 각자의 캐릭터는 전혀 변질되지 않는다. [탐정 : 리턴즈]에서도 이는 계속된다. 탐정사무소를 차린 두 사람에게 끈끈한 동지애 혹은 동업자 의식을 부여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는 영리하게 그러지 않았다. 덕분에,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감을 올려주며 자신의 역할을 지킬 수 있었고, 관객들은 늘 보던 친숙한 버디를 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버디무비의 경우 두 사람의 케미가 잘 부각되지 않으면 전체적인 힘이 빠질 수 있다. 다행히, 영화는 끈끈하지 않은 두 사람을 잇는 장치를 전면에, 그리고 전반적으로 깔아놓았다. 바로 둘 다 아내에게 구박받는 남편이라는 설정이다.


대개의 형사물에서 주인공, 특히 남자 주인공들의 배우자는 분량이 매우 적은 조연 중의 조연이다. 사건에 직접적으로 얽히는 일이 없을뿐더러, 스토리에의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두 남자의 두 배우자는 꽤 자주 등장한다. 재밌게도, 사건의 해결 과정엔 그다지 관계가 없지만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두 주인공은 가정에서 받는 구박 덕분에 비슷한 처지의 버디로 보인다. 부가적인 효과로, 관객들은 돈에 쪼들리고 아내에게 쥐어터지는 그들을 보며, 뛰어난 형사 캐릭터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친근함을 느끼며 시종 편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탐정 : 리턴즈]는 만화방 주인에서 탐정이 됐지만 여전히 일반인 신분인 권상우와 광역수사대 베테랑 수사관이면서 탐정사무소 일을 하는 성동일 두 사람의 능력을 각기 부각한다. 


이는 맨 앞에 인용한 소설에서의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 분리와 비슷하다. 권상우는 '믿을 만한 사람은 과일 주스를 마시지 않는다' 류의, 매우 직관적이지만 빈틈이 많아 보이는 판단기준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성동일은 '가끔 술을 한잔할 수는 있지만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오지만 다시 답답하고 뻔한 판단기준을 견지한다.


하지만 이런 두 사람의 다름은 내내 영화에 유쾌한 리듬과 탁월한 오락의 시선을 만들어낸다.

이 정도 흥행이면 시리즈가 죽 만들어질 것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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