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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07. 2018

과거를 모르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 분노 ] 이상일 감독 / 2016년 作

나는 다시 여자와 나란히 서서 걸었다. 나는 갑자기 이 여자와 친해진 것 같았다. 다리가 끝나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그 여자가 정말 무서워서 떠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바래다주기를 청했던 바로 그때부터 나는 그 여자가 내 생애 속에 끼어든 것을 느꼈다. 내 모든 친구들처럼, 이제는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때로는 내가 그들을 훼손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더욱 많이 그들이 나를 훼손시켰던 내 모든 친구들처럼.


-소설 '무진기행', 김승옥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모든 관계는 선의에서 시작한다. 시간이라는 괴물에 익숙해져 낡은 몸과 마음으로 끊임없이 나의 부품들을 길에 흘리고 다닐 때, 누군가가 그걸 주워 들고 나에게 말을 건넨다. 혹시 이거 당신 꺼 아니냐고. 그렇게 서로의 생애 속에 끼어든 두 사람은 행여 내 사람의 부품이 또 길에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서로를 안고 있으면 내 부품도, 연인의 부품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이 사람을 전부 알고 있을까?



(왼쪽부터 극중 이름) 타시로, 나오토, 타나카


영화의 시작, 교외의 한 주택에서 부부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현장의 지문과 혈흔으로 한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경찰은 물론 방송까지 나서서 남자를 지명 수배하지만 남자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리고 1년 후, 영화는 각기 다른 지역에 나타난 세 남자를 교차해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과거를 숨긴 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촌에서 수산물업체에서 일을 시작한 타시로는 직원을 해 볼 생각이 없냐는 사장 마키의 말에 아르바이트로 충분하다고 대답한다. 게이바에서 만난 부유한 남자의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나오토는 별다른 직업 없이 낮시간을 보내고 밤에 다시 남자의 집으로 돌아온다. 오키나와의 작은 섬, 버려진 건물 안에서 지내는 장기 배낭여행자 타나카는 우연히 섬을 찾아온 여고생 이즈미에게 자신의 존재를 함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이후 영화는 이 세 남자의 일상을 보여주며 과연 누가 1년 전의 '하치오지 살인사건'의 범인인가를 관객들로 하여금 추리하게 한다. 자칫 산만하게 분산될 수 있는 시선을 일관되게 살인사건으로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세 남자와 그들이 새로 시작한 관계에 깊숙한 시선을 보내며, 관객들에게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과연 우리는 과거를 모르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세 남자는 각기 새로운 연인을 만난다. 수산물업체 아르바이트 청년 타시로는 섹스숍에서 일하다 귀향한 사장의 딸 아이코와 동거를 시작하고, 나오토는 게이 연인 테츠야의 시한부 어머니까지 돌보며 관계를 이어간다. 섬에서 지내는 타나카는 이즈미와 이즈미를 좋아하는 남고생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알아간다. 일본 영화 특유의 '무리하지 않지만 솔직한' 관계 맺음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이들의 관계 모두를 애정이라고 특정하지는 않는다. 극 중 대사처럼, '한숨 돌리는 관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서 도망친 세 남자와 그들에게 마음을 주는 세 연인 모두 각자의  신산한 삶에 지쳐있기에,


한숨 돌리는 이 관계야말로
그들이 일상을 지탱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흐를수록, 그러니까 세 사람 중 살인범이 과연 누구인지를 천천히 쫓아가면서 이들이 쌓아가던 관계에 선명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살인사건의 범인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새로운 보도와 공개수배 전단이 뿌려진 후, 세 사람의 연인(그리고 연인의 가족과 친구)은 자신들이 모르던 '연인의 과거'에 의심을 보낸다. 세 사람이 의심을 대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누군가는 솔직하게 신분을 감춘 이유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둘러대고, 누군가는 끝까지 함구한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방식은 한결같다.


또 다른 의심이다.

결국, 영화의 후반부 범인은 세 사람 중 한 명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그 사이 모두가 한숨을 돌리던 관계들은 모두 무너져 내린다. 훼손의 정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일단 훼손이라는 방향으로 흘렀으므로.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은 머리에서 만들어진다. 반대로 '지금, 이곳'에 관해서 서툴러서 바르게 파악하지 못한다. (...) 마음은 이유나 의미, 의의 같은 것은 일일이 따라붙지 않는다. 그저 돌연 결단만을 말한다. 시간 공간 인식에서는 머리와 달리 '지금, 이곳'에 초점을 맞추고 날카롭게 반응하다. 따라서 매우 즉흥적이다.


-심리에세이 '눈물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실마리를 찾을지도' , 이즈미야 간지



자신이 사랑하기 시작한 이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매우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궁금증이 '이 사람을 더 알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이 사람을 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따라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위의 에세이를 차용하자면, 욕구는 마음에서 나오고, 강박은 머리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알고 싶다는 욕구는 친절하고 속도가 느리다.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과거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고 고마워하면서 답을 듣는다. 지금의 애정을 딛고 선 상태에서 새롭게 알게 된 과거를 바라본다. 하지만 강박은 다르다. 모든 과거를 명확하게 알기 전까지 초조하게 채근한다. 연인과 함께 하는, 직관적인 몸과 마음의 교류가 훼손되면서 지금의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그 과거로 인해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이와 멀어지게 된다. 말하자면, 문제 하나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가 나머지 문제는 풀지도 못하고 시험시간이 끝나버린달까. 


어쩌면 본인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미지의 과거'가 만들어낸 불신은 갓 관계를 시작한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애정의 막을 사정없이 녹여낸다. 


우리의 생애 속에 가까스로 끼어든 인연을
스스로 밀어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상황은 폭주한다.

살인범의 정체가 드러나고 살인의 이유가 부가된다. 살해 현장에 범인이 피로 적어놓은 '분노(怒)'라는 말은 본질적인 감정 중의 하나이다. 범인이 부부를 죽인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얘기하진 않겠지만, 분노에 대한 리액션 중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범인 이외의 주인공들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닥쳐온 '怒'를 대한다. 영화를 보게 된다면, 무방비 상태로 분노를 상대해야만 하는 인간이라는 연약한 존재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시간과 관계의 힘으로 분노를 잠재우는 인간이라는 놀라운 존재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스릴러 장르의 서스펜스와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굳이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모든 장르에서 드라마적 요소를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추천한다.   


*남성들에 의한 여성의 집단성폭행에 대한 묘사와 동성애 성관계의 묘사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영화의 특정 부분이 매우 불편할 수 있으니 보지 않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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