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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an 12. 2018

이동과 음악에 대한 짧은 에세이

 #로드뮤직

이동은
여행에서 버리는 시간이자
채우는 시간이다.

급하게 진행되는 여행에서도, 느리게 흘러가는 여행에서도

이동은 종종 말줄임표나 괄호 혹은 느낌표가 되기도 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내 취향으로는 굳이 뭔가를 일부러 진행해야 하는 시간은 아니기에,

본질적으로 쉼표이다.


말하자면, 여행의 대부분이 불투명한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정물화라면,

이동시간은 물을 많이 푼 수채화 물감으로 슥슥 그려 낸 풍경화에 가깝다.


이동은 각기 다른 풍경을 가진 도시와 도시(혹은 마을과 마을)를 점프하는 행위이자,

그 사이의 공간을 빠르게 지나가는 행위이다.

한 도시에서의 여행이 끝난 후에 겨우 맞이하는 휴식시간이기도 하지만,

이동시간이 길 경우, 온몸의 근육이 찌뿌드드해지면서 배배 꼬게 만드는 고통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에서 이중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볼거리와 만질거리에 지친 몸을 정상으로 회복하는 동시에,

버스나 기차의 진동에 시달리며 다음 도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겨우겨우 버텨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로드 뮤직이 필요하다.

재생 매체가 뭐가 됐건, 음악이 귀로 흘러들어오는 순간

이동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밟는 길은 풍경이 된다.


여행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저장 용량을 늘인 심상이

풍경에 묻고 풍경은 음악에 스며든다.

풍경이 스며든 음악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으며,

그 음악을 다시 들을 때마다 풍경은 길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날 일이 있을 때는 음악을 최대한 준비해간다.

장르와 음악가 불문하며 쟁여놓은 것들을 그때그때 길의 모습에 맞게 튼다.

그런 로드 뮤직을 듣는 동안, 풍경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길 위의 풍경은 음악에 들어맞는 배경이 되며, 길 자체가 뮤직로드로 바뀐다.




이런 생각을, 얼마 전 다녀온 여행지의 버스 안에서 메모했고,

회사에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걸 읽었다.

그리고 문장을 적어놓는 지금,


<여행>이라는 단어를,
<일상>으로 바꿔도 뜻은 매한가지이며
<포기>라고 바꾸면 전체 문장은 슬퍼지지만
여전히 사실이라는 걸 깨닫는다.

<연인>이나 <인연>으로 바꾸면, 반은 애절해지고 반은 희망적이 된다.

(이럴 경우에 <버스>나 <기차>는 <소맥>이나 <막걸리>로 치환해야겠네)


<혼란>이라고 바꿔 칭하면,

이동 시간은 평화로운 시간으로만 바뀌어지니 얼핏 오류가 있는 듯하지만,

혼돈 속에서 기억의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게 삶이라는 점에선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결국, 여행은 떠나지 않아도 여행이다.



얼마 전 여행 갔을 때, 버스에서 메모를 하면서 들었던 음악들


지혜 - 가을방학

https://youtu.be/eGvnR0ZiCMc


두 손, 너에게 - 스웨덴세탁소(feat. 최백호)

https://youtu.be/eFdlvZR8b-8


가을인사 - 루시드폴

https://youtu.be/wuy6YyUMcx0


편지 - 랄라스윗

https://youtu.be/nshZmjmQh3U


바람과 나 - 한대수

https://youtu.be/hpTAtsnErQM


I started a joke - Bee Gees

https://youtu.be/b3kBDtjRtB0


Sahanaa Vavatu - Ravi Shankar

https://youtu.be/xkucMgiOF4E


One Fine Spring day-심성락

https://youtu.be/TgwAjqwC-os


평정심 - 9와 숫자들

https://youtu.be/CBdz2rOeUQY


그대에게 -강아솔

https://youtu.be/i-XwbvBhoDw


Holding on - Gregory Porter

https://youtu.be/OlwceBF-2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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