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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30. 2018

여백을 채우는 여백, 직지사

#경북 김천 직지사


계획에 없던 목적지였다.


함양에서 1시간 30분 거리, 잘 닦인 도로 몇 개를 지난 후, 내비게이션은 산길로 안내한다. 10km 넘게 이어진 산길은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듯, 도로변에서 크게 자란 풀들이 도로를 일상적으로 침범하고 있다. 풀들로 인해 좁아진 도로였기에, 한쪽 바퀴로 풀들을 이기며 갈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풀들을 피해 중앙선을 살짝 넘게 된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다음 날, 마주 오는 차가 거의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풀들은 온전했고 우리도 온전하다. 비가 계속 내려 풍경의 색들이 진하다. 운전은 왠지 모르게 수월하다.


산길이 끝나는가 싶더니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대단지가 펼쳐져 어리둥절하다. 직지사 앞은 크게 조성된 공원과 식당 단지로 번화하다. 비 오는 평일 점심이어서 다행히 사람들은 거의 없다. 주차가 편한 아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절로 오른다.



동행을 한 엄마는 이미 와본 적이 있는 절이었으나 다시 가도 좋을 곳이라고 했다.


대형 산사의 번잡함이 사찰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주차장-매표소-첫 산문(山門) 초입까지의 길은 빨리 지나치는 게 낫다. 초입은 널찍하다. 공부를 하러 오는 사람들의 차량과 공사 트럭이 몇 대 지나가도 길 옆으로 몸을 부러 피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천천히 숨을 고르며 걸을 길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차가 다니는 길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리며, 길은 사람만 다니게 돼 있다. 길의 폭은 좁아지고 나무들은 양 옆으로 가까워져서 비로소 산사에 다다른 느낌이 든다.



오른쪽 소나무 숲에 풀들보다 웃자란 꽃대가 군데군데 보인다. '아마도, 상사화'라고 엄마가 말한다. 굳이 검색을 하진 않고 그 꽃을 100% 확실한 상사화라고 생각한다. 


꽃의 색은 옅고 꽃잎이 구부러진 모양은 우아하다. 꽃의 색을 명명할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상사화 색이라 명하고 그 투명한 색을 바라본다. 온통 녹색인 곳에서 꽃들은 여기저기서 겸연쩍게 화려하다. "녹색 꽃은 없다. 꽃은 잎의 색을 침범할 수 없다"는 에세이 구절이 떠오른다. 검은 나비들이 여남은 마리 날아다니다 꽃에 앉는다. 우리 근처에서 날아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곳은 꽃이 있는 숲이다.


나비와 꽃 사이에 느리디 느린 장력이 가느다란 고무줄처럼 연결된 느낌이다.



산문(山門)은 여러 개다.


사대천왕이 있는 문까지 합쳐 4개의 산문(山門)은 완만하게 휘어진 산길에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다. 직선에의 강박을 이긴 누군가 덕분이겠다. 대형 사찰이지만 문들은 평범하다. 신자는 아니기에 문을 지날 때마다 특별히 경건해지진 않는다. 다만, 낮게 이어지는 빗소리에 더해지는 내 발자국 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린다.


호우주의보 다음 날, 평일 점심에 이곳에 온 걸 새삼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느 절처럼 대웅전을 스치듯이 지나치다가 대웅전 앞에 붙은 현판 아래의 연꽃무늬에 눈길이 간다.

현판의 검은색에 더해진, 간결한 선의 연꽃 색이 강렬하다.

아래를 한참을 보다 눈을 들어보니 바로 앞 대웅전 문의 나무 창살, 문고리 모두에 세월이 잔뜩이다.



사람이 만든 것들은 자연이 만든 것들 앞에서 공평하다.

비, 바람, 눈, 햇볕을 고스란히 받는 것들은 공평하게 늙어가고 낡아간다.

그래서, 천천히 낡아가는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평온하다.  



대웅전 왼쪽으로 건물들이 이어진다. 대웅전 옆의 작은 건물 담 앞의 나무가 카메라 앵글에 안기듯 들어온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나무다. 나무가 가지를 키운 선(線)들은 경박하지도 않고 심심하지도 않다. 조금씩 가지가 자란 데에 분명 법당의 음(音)들이 도움을 줬을 것이다. 꽃은 그렇게 자란 가지 위에서 안온하다.


나무 옆 법당의 이름은 굳이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았다. 게으른 여행자 역시 경박하지도 심심하지도 않기에.



나무 사이에 끈을 매달고 누군가들의 기원문을 걸어놓았다. 애써 글귀를 읽지는 않았다.

실로 짠 조그만 연꽃 봉우리들이 선명하다.


그 아래 흙길을 따라 돌로 만든 작은 수로가 이어진다.

수로의 선 역시 기교는 없으나 투박하지 않다. 수로의 시작점에 있는 돌단지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표현대로, '규모는 큰데, 어딘가 여성스럽고 예쁜 절'이다.



다음 법당이 보이는 문 아래에서 다리 쉼을 한다.

무심하게 잘라 무심하게 여기저기 던져둔 듯한 통나무 의자들은 의외로 편하다.


비는 세(勢)를 줄였으나 지치지 않고 내린다. 한참을 그 자리에 있으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는다. 새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게 적다는 걸 느낀다. 흙담의 질감도, 비가 떨어져 생긴 돌계단 아래의 웅덩이도, 먼 산의 가득한 운무도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 빗줄기 사이로 흐르는 바람도 마찬가지다.


재게 셔터를 누르다 말고, 그냥 자리에 앉는다.



[나가는 길] 표지판 옆 법당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굴뚝에선 연기가 나오고 뭔가를 태우는 냄새가 매캐하다. 나 같은 여행객에겐 보는 절이겠지만, 신도들에겐 사는 절이다.


객은 산사(山寺)의 산(山)에 방점을 찍으며 풍경을 유영하지만,

그곳에 다니는 사람들은 사(寺)에 방점을 찍고 기원을 한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물소리가 가득하다. 며칠간 내린 큰 비에 계곡의 물들은 정신없다.


평소에 물은 아래라는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불어난 물은 사방으로 튀고 빗나가며 아래로 흐른다.

순간순간의 방향은 여러 갈래다. 하지만 정신없이 사방팔방을 휘저으면서도 큰 흐름은 아래로 향한다.


그런 데서 지나가는 여행객은 위안을 얻는다.



다시 차가 다니는 초입길로 나온다.

들어갈 때 우리 뒤에 왔던 두 중년 부인이 앞에 걷고 있다.

그 둘이 어디서 다리 쉼을 하고 어디를 한참을 쳐다봤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왠지 알 듯도 하다.


그런 절이다. 직지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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