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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n 19. 2018

공허미(空虛美)를 지닌 고찰, 무량사

 #충남 부여 무량사


매표소를 지나고나서부터 여름 볕은 현격히 적어진다.


길 주위로 크게 자란 나무들 덕분이다. 관광객이 적어서 눈에 보이는 색깔이 몇 개 되지 않는다. 땅색, 나무색, 이파리 색 그리고 하늘색. 광명문이라는 현판이 붙은 산문(山門)의 기와 위로 풀 몇 포기가 자라 섬을 이뤘다. 산문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산문에는 화려한 덧칠 같은 게 없다.


덕분에 처음 만나는 절의 표정이 요란하지 않다.



일주문에서 본 사찰까지의 거리는 200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산 색이 짙은 시냇물 위에 놓인 다리 하나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바로 천왕문이 나온다. 다리 옆에 비석 몇 개가 서 있다. 돌에 세월이 적당히 내려앉아 보는 시선이 편하다. 절로 가는 내내 나무들은 오래되고, 평화롭다.


별다른 이음(異音) 없는 공간을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겨우 채운다.



천왕문에 들어가기 전 잠깐 서서 대웅전의 사진을 찍는다.


몇 번 반복해서 찍으며 수평을 맞춘다고 했는데, 돌아와서 보니 바닥이 비뚤어져있다. 사천왕의 기세에 눌릴 일 따윈 없었으니 내 미숙함으로 탓을 돌린다.



천왕문을 지나 펼쳐진 공간은 이제껏 본 사찰 중에 제일 너르다.


오른쪽에 서 있는 고목 몇 그루는 그 울창함에도 불구하고 위세를 내보이지 않는다. 평생 심통 한 번 부리지 않고 웃기만 한 사람 같다. 나무 뒤에 석등과 5층 석탑이 서 있고, 그 뒤로 대웅전이 있다. 모두 나무를 닮아 겸손해 보인다. 뒤로 보이는 산도 마찬가지다.


풍경 안의 것들이 풍경을 고요하게 만든다.



가까이서 본 석탑은 만지고 싶을 정도로 친근해 보인다.


정밀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조그만 표지판이 하단부 앞에 세워져 있다. 탑에 대한 설명을 보니, 탑 안에서 귀중한 것들이 많이 발굴됐었다고 한다. 낮은 탑 안에 열망을 봉인해놓은 이들은 어떤 생을 살다가 어떤 죽음을 맞이했을까. 안정감 있게 쌓아 올린 5층의 돌들은 애초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무리가 없다. 앞으로도 꽤 오래 돌과 돌이 마찰되는 소리 같은 건 탑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문득, 탑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가 녹을 때 어디에 있던 눈이 가장 늦게 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은 나무 색이다. 


원래 칠했던 색이 벗겨진 듯한데 새로 입히지 않아서 나무 색이 대부분이다. 억지로 말을 늘이지 않고 간결하게 말하는 사람이나, 비싸지 않아도 깔끔하게 옷을 다려 입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크기가 꽤 큰데도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땅의 색과 닮아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대웅전 옆에는 유리로 문을 짜넣은 건물이 하나 있다.

댓돌에 신발이 한 켤레 있길래 차마 정면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고 옆에서 얼른 한 장 찍고 만다.


신앙에 무지한 사람이 늘 불경에 민감하다.



뒤로 돌아가니 또 나무들이 있다.

새 줄기가 오르고 있는 나무 둥치를 찾아 렌즈의 앞에 세운다.

뒤로 물러난 건물과 앞에 나온 나무줄기가 한 색으로 보인다.



돌아 나오기 전, 너른 공간을 다시 찍는다. 대웅전 앞 고목들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위로만 향하지 않은 모습에 나까지 자세가 편해진다. 법당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온 몸을 슬쩍 기울인 모습이다. 세월에 따라 그 소리들은 달라졌을까. 고요함이 법음(法音)의 본질이겠지만, 그 안에서도 더 고요할 때와 조금 요란할 때는 있을 테다. 고목 아래에 앉아있던 어머니와 다시 절을 나선다.


오늘 하루가 세월로 덧입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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