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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pr 04. 2018

봄 여수에 다녀오면, 꽃나무를 심고 싶어진다

#여수

봄은 늘, 전폭적으로 온다.

별다른 전조 없이, 특별한 미적거림 없이.


그러한 갑작스러움은 나무가 제일 잘 드러낸다.

두 계절 동안 한껏 움추렸던 나무들은,

서로 조용히 시기를 맞춰, 한순간에 봄꽃나무가 돼버린다.


봄 여수엔 그런 꽃나무가 여기저기 서있었다.



#돌산행 버스

여수 시내에서 돌산으로 가는 버스는, 봄이라고 붐비지 않는다.  

그럼에도, 버스는 수많은 봄을 가로지르면서 달린다.

바다와 산이 빠른 속도로 창밖을 지나가며, 먼 길을 온 시선을 달랜다.


봄과 무관한 사람들도, 봄이어서 달라보인다.




#승월마을 벚꽃길


승월마을은 돌산 초입과 신기항(금오도로 가는 배가 운행하는)의 중간에 있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작은 저수지 옆 가지런한 벚꽃길에 한 눈에 들어온다.


봄에 내뱉는 탄성만큼 흔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굳이 참을 필요는 없다.

길지 않은 벚꽃길에,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많지 않은 사람들의 표정은 꽃으로 인해 여유롭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떨어질 때면, 햇빛이 잠시 숨을 고른다.

떨어지는 꽃잎은 그로 인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금오도 직포마을 해무

봄 해무 안에서 마음은 급하다.

곧 없어질 듯한 저 유려함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하지만, 해무는 오전 내내 마을에 머무른다.


짧은 것보다야 넘치는 것이 좋지만, 어딘가 아쉽다.

부족함에 애달아하는 것, 그것에 너무 익숙해졌나보다.


짙은 안개 속에서, 파도 소리와 새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끊이지 않는 소리 안에 서 있으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기억이 몽환적인 성질로 바뀐다.


그런 느낌으로, 오전을 보낸다.




#금오도-신기항 배 위


해무로 배가 뜨지 않을까 마음을 조금 졸이며 선착장으로 간다.

원경이 보일 즈음, 선착장에 출항 대기 중인 배가 보인다.


출발 7분 전이라 매표소로 뛰어들어갔다가, 다시 배로 뛰어간다.

놓치면 1-2시간 기다리면 되는 것을...바쁨에 익숙한 몸은 자동반사적이다.

2층 난간에 가서야 숨을 헐떡이면서, 어쩌면 하루 더 발이 묶일 수도 있었는데,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안개는 높지 다. 바다 위에서는 근경과 원경의 차이가 의미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안개 안에 있지만, 시야는 안개로 인해 막히지 않는다.

그게, 출항이 가능한 이유인 듯하다.


25분 동안 안개 낀 바다를 건넌다.

육중한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를 빼면 모든 사위가 평온하다.


해무는 어쩌면, 바다가 스스로 쉬기 위해 잠시 피워올린 것일 수 있다.





#여수 시내 꽃길


여수 연안에서 기차역으로 걸어 가는 길, 벚꽃은 만개해 있다.

꽃이 피면, 사람의 공간과 꽃의 공간이 하나가 된다.

그게 사람들이 꽃나무를 길 가에 심고, 마당 안으로 들이는 이유다.


벚꽃은 한 시절 길의 주인이 되고,

전선과 건물과 차들은 꽃잎 사이로 공간을 확보하려 애를 쓰는 듯하다.

짙은 인공의 색은 옅은 벚꽃색 가운데서 어색하다. 하지만,


벚꽃은 어느 무엇도 내치지 않는다.

단지 봄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봄 여수에 다녀오면 봄꽃나무를 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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