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인 것처럼 살아볼까

#나이 든 싱글로 사는 것에 대하여

by 너무 다른 역할


적당한 나이에, 무리 없는 상대와
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리는 것.

이걸 따라가는 게 편하긴 하다. 아니 편하긴 했을 것이다.

많이 생각하지 않고, 기존의 습성을 탑재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 습성을 뒷받침해줄 제도와 주위의 공감 어린 눈빛은 차고 넘치니까.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이상신호를 주위에 주기 시작한 후부터, 매우 귀찮아진다.


사람들은 (심지어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왜 결혼을 안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은연중에 요구하고,

난 그 설명을 위해 몇 마디라도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 논리를 말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도 일이다.


갓 결혼을 한 사람들의 은근한 자랑과 되도 않는 고민에 대해 공감하는 척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육아를 시작한 이들의 목소리 큰 대화를 묵묵히 따라가는 것도 힘들다. (특히 아기 사진이라도 보여줄라치면 얼마나 과한 리액션을 보여줘야 하나 늘 고민......)


많이 적응되긴 했는데, 나 스스로 떠올리는 조바심도 귀찮다.

지금보다 어릴 때, 이 나이에 싱글이더라도 난 불안하지 않을 줄 알았다.

혹여나 그런 감정이 생기더라도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적당히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흔에 가까워지면서 결혼이라는 선택지가 내 인생에서 아예 사라질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슬쩍 생겼다.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가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건 다른 일이다.

일부러 맞춰보지 않고 미루던 권을 누가 대신 맞춰보고 꽝이라고 말하는 걸 듣는 기분이랄까. 여하튼 나 스스로 나를 귀찮게 한다.

그러다 문득,


차라리 일찍 결혼해서 이혼했으면
지금보다 속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을 할 때의 고통과 이혼 후의 현실적인 괴로움 같은 것들은, 주위에서 들어서 간접적으로 익숙하다. (물론 익숙하대서 그게 별 게 아니란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적응이 된 후라면 어쩌면 나이 든 싱글이 겪어야 하는 귀찮음과 불안감 같은 건 없지 않을까. 주위 사람들의 채근과 선택지가 없어진다는 조바심 같은 건 필요 없는 상황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혼남인 것처럼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혼 쪽으로 꽤 많이 마음이 기운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물론 주위 사람들이 귀찮게 구는 걸 다 막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 쪽에서 '이혼남 마인드'를 세팅한다면, 들리는 말 하나하나에 대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 번 해봤으니 결혼 따위 뭐 의미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버리면

결혼을 해봐야 한다는 이유 모를 강박도 없어지지 않을까.

남들의 결혼생활과 육아 얘기도 별다른 짜증 없이 들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이혼남을 혼자서 가장하면 나이 든 싱글로 사는 것이 조금은 덜 피곤하지 싶다.


물론......

이렇게 끄적이는 중간중간,

곧 마흔인 아들을 둔 엄마의 얼굴이 미안함처럼 슬쩍 떠오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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