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리 소비돼야 할
꽤 오래, 통상적인 연애를 하지 않았다.
<언젠가 만날 필연>은 미신이나 자위에 불과하다고 믿는 편이어서,
그만큼 게을렀다고, 그렇게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반성 아닌 반성을 하고 있다.
연애를 하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싶진 않지만,
연애를 하며 천천히 늙어가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뚜렷한 연애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도,
내 안의 <애정이라는 자원>은 늘 넘쳤다.
타고난 소심인(小心人)인 까닭에
애정을 쏟아부을 상황에서 애써 삼킨 적도 많지만,
반대로 그걸 드러내지 않아야 될 상황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슬며시 흘러나올 정도로 애정은 넘쳤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이 자원을 처리하는 데에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정상일까.
확실한 호감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더 다가가도 될까.
너무 앞서 말을 꺼내면 부담스러워서 멀어지지 않을까.
날아다니는 듯한 애정이 당연했던 20대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애정을 받아줄 상대를 바라고
누군가의 안에서 생겨난 애정을 만지기를 원하면서도
정체도 모르는 타인들의 시선을 지레짐작하면서
정작 나 자신을 애정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나와 비슷한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오류를 저지르기에
우리의 애정은 어딘가에서 낭비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기에 결국 우리는
<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철없어 보이더라도,
다소 거칠어보이거나 두서 없게 느껴질지라도,
그래서 호감을 가진 상대 앞에서 민망하기 그지 없거나
오랜만에 온 얼굴이 화끈거릴지라도,
우리가 가진 애정이라는 자원을 써버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