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 속의 오래된 나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있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안', 알랭 드 보통
의자에 온 몸을 의탁하듯 앉아서 벽에 붙여놓은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한 장의 사진에 눈이 갔다.
몸을 일으켜 사진에 묻은 먼지를 휴지로 닦아내고 다시 봤다.
2005년 3월 어느 날 중국 뒷골목에서 찍은 사진이다.
저녁 어스름에 거리로 나온 좌판이었다. 잔 숯이 들어있는 화로는 좁고 길었다.
꼬치에 끼워놓은 양고기는 두툼하지 않고 얇았다. 나무 꼬챙이 역시 가느다랬다.
어린 주인은 꼬치를 뒤집을 때마다 엄지와 검지로 양념을 아낌없이 뿌렸다.
한 꼬치에 0.5위안이라고 했다. 6개인가 8개인가를 달라고 했다.
주인이 만족할 정도로 꼬치들이 익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사진은 그 사이에 몰래 한 장만 찍었다.
그 자리에 서서 먹었는지, 숙소로 들고 와서 미지근한 칭다오 맥주와 먹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입 안의 감각이 순간 무뎌질 만큼 짰다는 건 확연히 기억난다.
공사장 앞에 펼쳐있던 이 풍경이 변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도 선명하다.
주인은 이미 나이가 꽤 들었겠지만, 시간이 되면 준비한 꼬치와 화로를 들고 적당한 자리를 찾을지 모른다.
숯을 잘게 부수어 길게 늘어뜨리고 손님의 유무에 따라 꼬치 양을 달리하여 화로에 얹을 것이다.
별다른 흥정을 할 필요도, 별다른 불평을 들을 이유도 없는 일일 게다.
숯과 고기 사이의 거리를 시시때때로 가늠하고, 고기가 익으며 내는 익숙한 소리와 향에 집중하면 될 것이다.
파는 입장에선 나처럼 돈도 안 되는 여행객이건, 수십 개씩 사가는 동네 사람이건 상관없을 것이다.
유일한 목표는, 가지고 나온 모든 꼬치를 구운 상태로 만들어 소진하는 것일 테니까.
거기에만 신경을 쓰면 될 테니까.
이상하게 그런 이유로, 꼬치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익고 있을 것 같다.
졸업 이후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태로 떠난 여행이었다.
특이점이 있는 풍경은 아니었으나, 특이점이 없다는 이유로 멍하니 바라볼 수 있었다.
나 자신이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였기에,
불안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변할 것 같지 않은 풍경에 나를 묻혀두고 왔다.
이 사진은 그 증거다.
그 시절 나는, 온 시야를 채우는 단단하고 명료한 사물들 앞에서 늘 작았다.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상상력보단 조바심이 컸기에 불안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이 여행 때의 사진들엔 풍경만 가득하다.
하지만, 사진을 볼 때마다 그 풍경 옆에 서 있는 나 자신이 보인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 한 장 한 장에 의탁해놓은 과거의 나는 왜소하지만 선명하다.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잠시 떠나 있었던 것이.
하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