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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an 13. 2019

실용주의 가득한 사찰,  개심사

#충남 서산 상왕산 개심사(開心寺)


성의 없는 검색 끝에 택한 목적지였다.

몇 시간 뜬 일정에 맞는 어느 곳이든 좋았다. 굳이 또 사찰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산 풍경이 보고 싶었는데 등산은 싫었고,

꽤 오래 놀고 있던 사진기에 뭔가를 담았으면 좋겠는데 사람이 많은 곳은 싫었다.


또 한 가지.

어느 절에서건, 불자가 아니면서도 불자인 척 둘러보는 나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첫 번째 산문을 지나 올라가는 길, 나무 위에서 새 한 마리가 굵은 나뭇가지에 부리를 치는 소리가 선명했다. 하도 높은 나무여서 새의 생김새는 보이지 않았는데, 부리와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는 일정하게 아래로 내려왔다.

뭐 하는 거지, 라는 생각보다, 열심이네, 라는 생각이 더 컸다.



다른 사찰에 비해 올라가는 길이 경사도가 있었고 길었지만 돌계단은 넓었다.


온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바람도 불지 않았다. 서울서 내려오는 내내 시야에 보이던 뿌연 풍경은 나무 사이로 숨어있어서 다행이었다. 숨 쉬기가 수월하게 느껴졌다. 얼음 위로 흐르는 계곡물의 수량은 많지 않았다. 굳이 손을 담그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기도를 위한 돌무더기 위에 솔방울을 올려놓았다. 밀도가 다른 것들은 나름 어울렸다.


길  끝, 축대 위에 종각이 있었다. 높이는 높았으나 위압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다.


종각의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갔다. 나무를 그대로 두고 계단을 만든 흔적이 보였다.

단순히 귀찮아서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일종의 유희 같은 게 아니었을까.

어딜 가나 비슷한 사찰 모습에 다들 지겨울 테니 이런 데서 숨은 재미라도 찾으세요, 라는 배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자연 속에 100% 완성도의 인공을 만드는 게 멋쩍었을 수도 있다.


'계단 중간의 나무둥치' 스타일은
사찰 건물 곳곳의 '휘어진 나무기둥'으로 이어졌다.


해탈문을 통해 들어간 안뜰의 종무 사무소부터 자연스러운 기둥이 도드라졌다. 눈에 띄지 않는 나무였기에 편하게 썼을 텐데 되려 그게 눈에 꽉 차게 들어오는 셈이었다. 다른 법당에서도 굵기와 휜 정도가 제각각나무 기둥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다른 사찰에서와 달리 시야에 들어오는 선이 정제돼 있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성의 없는 구경꾼인 나는 매우 편안했다.


하지만, 선(線) 몇 개가 맥락이 없어도 사찰의 정갈함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외려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이는 사찰의 운영 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하는 듯했다. 입장료가 전혀 없는 이곳은, 외부인을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그곳에 거하는 스님들과 기도를 하러 오는 신도들을 위한 사찰인 듯보였다. 법당에는 절을 올리는 사람이 많았고 대웅전 건물 뒤에건 어디에건 시야에의 정갈함을 목적으로 기도물품을 정리하려고 한 흔적이 없었다.



대표적인 게 대웅전 앞에 있는 거대한 ㄷ자 형태의 바(bar)였다. 행사에 따라 연등을 걸거나 다른 무언가를 걸 수 있는 실용적인 구조물로 보였다. 하지만 전체 규모가 아담하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대웅전 바로 앞에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절이라는 걸 뜻했다.


<종교>와 <실용주의>가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용주의적인 사찰>이었다.


돌계단이나 기와로 쌓은 담에서는 안정적인 조형미가 느껴져서 계속 눈이 갔다. 

나물을 말리던 한 법당에서, 기도의 효과가 크다는 명부전(冥府殿)으로 가는 곳의 돌계단은 방사형이었다. 기와를 엎어 경계를 치고 큼직한 돌들을 둘러놓았다. 그곳을 밟고 법당으로 가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기도 법당으로 올라가는 데에 있는 기와 담장 역시 무미건조함을 벗어나 있었다. 일자로 마감해도 무방할 담장을 세모 형태로 만들고, 사이사이로 건너편이 보이게 기와를 쌓아놓은 모양은 뭐랄까 다른 사찰에 비해 덜 딱딱하게 보였다.


조금 걸어올라 간 산신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기와 담장은 반원을 그리는 곡선이었다.

경계석 정도라고 해야 할 높이였으나 지형 상 축대 위로 보였기에 담장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일정한 간격으로 기와 위에는 비슷한 높이의 돌무더기가 있었다. 곡선은 낮은 산신각 건물과 어우러져 단조로움을 벗어나 있었다. 조형미만으로도 풍경을 보는 느낌이 다른 곳과 달랐다.



산신각 뒷벽에 기대어 놓은 빗자루에 쓰인 '소원성취'라는 글은 아마 이곳에 다니는 신자가 썼을 것이다.

이런 디테일 역시 실용주의적으로 보였다.



한 바퀴 돌고 다시 안뜰로 와 대웅전이 바라보이는 의자에 카메라를 두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끊이지는 않았으나 몰리지는 않았기에 거슬리는 건 전혀 없었다. 정리해야 할 생각은 늘 많았지만 딱히 어떤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불안해야 할 일들이 요즘 부쩍 늘었는데 이 역시 딱히 특정되지 않았다.


내가 불자는 아니기에 기도를 한 건 아닌데 뭔가 기도를 한 듯한 기분이었다. 가뿐했다.

어쩌면 그런 면에서도 실용주의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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